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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심화학습(2)

칼의 노래

by going solo

-권위

좌고우면 하지 마라.


칼을 다오.
군관이 칼을 나에게 건넸다.... (중략) 종사관 김수철이 내 팔을 잡았다.
나으리, 어찌 손수...
비켜라, 피 튄다.(189쪽)


군령을 거스르는 자, 아군을 배신한 자, 내 백성에 위해가 되는 자, 원칙의 선을 넘는 자, 균열을 조장하는 자, 혼란을 야기하는 자의 명백한 과오를 주저 없이 베어버리는 지도자는 부하나 조직원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저런 짓 하면 안 되겠네. 이런 짓 하면 너 또한 이리된다. 메시지가 각인됩니다.


아 근데, 군령은 당연한 것이니 따르면 되고, 아군은 당연히 배신 안 하면 되고, 원칙은 선 안에서 지키면 되고, 균열이야 일으킬게 뭐 있어 구구로 가만히 다들 가는 데로 나도 가고 하는 대로 하고 그러면 되지. 어떻게 우리 편을 배신해, 뭐 더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배신은 뭐 아무나 하나. 난 영원히 우리 편이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감행할 경우 그것에 대한 명확한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부하나 조직원들로 하여금 할 것에 대하여 또한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하여 단순 명료하게 해 줍니다. 지도자에게서 느껴지는 두려움의 메시지는 부하나 조직원들의 심리적 물리적 행동반경을 지정하는 표지석으로 존재합니다. 그들의 의식 속에서요. 반면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안정감을 갖게 됩니다. 조직원의 과오에 대한 처벌은 본질적으로 아군의 안녕을 도모하는 것임을 조직원들이 직관적으로 느끼게 되지요. 지도자의 정의로운 권위는 그 자체로써 통합을 위한 직접적인 말이나 물리적 시도보다 훨씬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또한 개별 조직원들의 역량을 반드시 해야 할 것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는 구심점으로써 조직원들의 심리적 결집도를 높여 가시적 성과를 이루는 기반이 되어줍니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얻게 되는 효능감은 결국 권위자에 대한 신뢰와 존경으로 이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순신님이 마키아벨리가 역설했던 백성들에게 ‘두려움이 포함된 존경을 받는’ 지도자의 표상인 것 같네요.

뿌듯합니다.


-균형감각.

판을 뒤집는 역량


내가 입각해야 할 유일한 현실은 바다...(245쪽)

뛰어난 균형감각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양식

➀ 그들은 정신이 차갑습니다, 이김과 짐에 매몰되지 않을뿐더러 흥분하거나 위축되지 않습니다.

➁ 위기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일단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판을 조망합니다.

그리고 이때에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묵묵히 있는 것 같이 보일지는 모르나 그의 정신만은 완전 정지의 상태에서 충만함을 유지하고 있다. (復歸의 ‘창조적 천재’ 중/ 황산덕 지음/ 삼성 문화문고, 1988)


➂ 무엇보다 판 전체를 주도하는 세력의 의도를 파악합니다. 그것은 수를 선점할 수 있는 전략의 핵심 바탕이 됩니다.

➃ 미래에 전개될 판의 양상을 예측하여 자신의 위치를 설정합니다.

⓹ 비로소 자신이 활용할 인적 물적 자원의 분배 및 배치 등 전략 전술을 세웁니다.

⑥ 가장 중요한 것, ‘명분’에 대한 신념이 확고합니다.


시대를 바꾸는 위대한 지도자의 역량은 균형감각과 선견지명 그리고 정책 실행력이라고 하던데.

왜란이 발발하던 임진년 그 시점에

순신님은 전쟁은 여차저차할 것이고 서해를 우회해 영산강을 거슬러 한양에 이르는 물길이 왜군에게 결정적 보급로가 되리라고 예측했을까요? 자신이 위치한 서쪽으로 깊숙한 남해가 최종적으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선견지명 했을까요?

다만 순간순간 입각해야 할 바다에 집중함으로써 결국 판의 주도권을 갖게 된 것일까요.


-미움,

씨를 말려야 할 종자들에 대한...


고향이 이미 없다고 써라. 기어이 원수를 갚겠다고 써라. 적의 종자를 박멸할 것이라고 써라. 간략히 써라.


남의 나라, 남의 땅에 무력으로 도발한 자들, 이유를 알 수 없고 그것의 밑도 끝도 모를 살기를 품고 달려와 내 나라를 갈아엎고 내 백성의 삶을 산산조각으로 깨부순 자들이 스스로 전쟁을 종결하고자 하는데 임금은 그들에게 길을 내주라 합니다. 공연히 더 분란 일으킬 것 없다면서. 분산되는 정신,

누구를 더 미워해야 할지. 미운 걸로 치면 덜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순신님은 타격방위를 집중합니다. 무도하게 이 땅에 발을 들인 자.

전쟁을 끝내기를 원해 자신들의 군대를 거두어 돌아가겠다면 그건 니들 맘이고. 그런 니들을 살려 보낼지 종자를 박멸해 니들 시체로 바다를 덮을 것인지는 순신님과 그의 군대가 결정할 것이다.


그리하여 순신님은 수영을 또 버리시는 거냐는 물음에 그것을 버리는 대신 물로 나아가는 것이라며 발진합니다. 또다시 입각해야 할 바다, 또다시 마주 서야 할 적의 적의에 맞서 죽기를 원합니다. 이 원수를 기어이 갚으리라, 더욱 간절히 원합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미운 자들에 대하여 죽기까지 그 종자를 박멸합니다.


-죽음,

유의미하게 죽는 법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 낼 수 없었다.(79쪽)
나는 나의 자연사로서 적의 칼에 죽기를 원했다.(313쪽)


유의미한 죽음이라니, 그게 뭘까요. 섬광처럼 번뜩이는 순간일 뿐일 텐데. 죽음의 순간이라는 것이요. 죽음의 의미를 굳이 찾자면 차라리 그 순간보다 억겁만큼 길었던 삶의 시간 속에 있는 건 아닐까요. 칼 찬 무인으로서 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무 내용과 무의미가 극도로 싫었던 순신님은 적에 의한 죽음을 자신의 자연사로 규정합니다. 어깨에 얹혀 있는 나라의 존망, 홑껍데기 차림으로 적의 칼을 받아내야 했던 안쓰러운 백성들, 그것 모두를 살리는 자리에서 살리는 자로 살다 동일한 자리에서 맞는 사멸의 순간, 그것이 순신님에게 의미 있는 자연사였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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