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복룡 역주/ 을유문화사, 2010
몇 년 전, 둘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이는 저도 읽어보겠다며 군주론을 들고 다녔다. 어느 날 아이는 주변의 어떤 어른이 군주론을 읽고 있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보더라고 했다. “군주론을 읽어?”라고 물었지만 사실은 “그런 거 왜 읽어, 별로 안 좋은 책이잖아?”라고 쓰여 있는 그 표정이 훨씬 진심에 가깝게 느껴지더라면서 읽으면 안 되는 거냐고 했다.
흠, 그러게.
“군주로서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자신의 위치를 지탱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가 오명을 써야 한다면 그것을 가지고 마음 상할 필요가 없습니다.”(군주론, 을유문화사, 신복룡 역주, 120쪽)
많은 사람들은 이런 논조의 글로 가득한 이 책에 대해 불온한 소문으로 먼저 듣게 된다. 가벼운 상처를 주면 복수의 표적이 될 수 있으니 이왕 해야 한다면 그런 것은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짓밟으라는 둥
“왜냐하면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착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은 착하지 못한 숱한 사람들 사이에서 파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부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모름지기 악을 행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며, 그것이 언제 필요하고 언제 필요하지 않은 가도 알아야 합니다.”(군주론, 을유문화사, 신복룡 역주, 119쪽)
마키아벨리는 맞긴 한데 너무 뼈아파서 감히 입 밖으로 내놓을 수 없는 말을 가차 없는 직설화법의 방식으로 나열한다.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그 과격함에 차라리 덮어버리고 싶은, 인간에 대한 진실이 가득하다.
이 책 속에는.
나 역시 그렇게 들었다. 마키아벨리라는 사람이 권력을 위해서 악행도 주저하지 마라고 했다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권모도 술수도 불가피한 것이니 괜찮다고 했다고. 사람이 그러면 되겠냐고. 그렇게 말한 사람은 사악한 거 아니냐고. 그 책은 절대 읽지 마라고. 나쁜 말에 정신이 물 들면 큰일 난다고.
그런데 그럴수록 호기심에 불이 붙었다. 도대체 뭐라고 쓰였는지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내 나이가 우리 아이가 처음으로 군주론을 읽던 그 나이쯤, 오래전에 처음 군주론을 읽었다. 그러니 어떤 주변인이 우려한 대로 아이가 그 책에 영향을 받아 과격한 통치자의 길을 가게 될 거라는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랬듯 마키아벨리의 말에 감동해서 주저 없이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르거나 권모술수에 눈이 열리기엔 아직은 고난도 일 테니. 이해를 해야 영향도 받는 거지. 그 후 나는 지금껏 이 책을 너 댓 번 아니면 대 여섯 번 정도 읽은 것 같다. 지금은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가 되었다.
아직은 어리던 그때 처음 군주론을 읽고 수십 년의 시간 동안 권력자들을 지켜본 유권자로서 결코 가볍지 않은 권리행사를 위해 관련 책도 읽어가며 나름 공부도 했거니와 현실정치를 보고 겪으며 살아온 이즈음 비로소 마키아벨리가 진짜 말하고자 했던 진실에 닿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이라는 책을 통해서 그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것은 아닐 것이다. 일상적으로 대면하는 평범한 누군가와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라면 그런 말은 진짜 하면 안 되지. 그는 특수 관계에 있는 절대적 다수의 사람들과 한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한 상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당사자 간 수의 압도적 불균형이 이 관계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전제다. 이른바 군주라 지칭하는 권력자와 그 대척점에서 권력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이다. 절대적 다수의 상대를 인격의 카테고리에 담을 수 있는 것인가.
어쩌면 군주론은 사람이라는 인격체를 다루는 텍스트가 아닌 게 아닐까. 아마도 그는 권력이라는 추상의 언어가 지극히 개별적인 삶에 구현되는 방식에 대해 말하려 했던 것일 것이다. 이른바 권력의 속성에 대해서 말하려 했던 본래의 의도가 너무도 과격한 논조에 매몰돼 그토록 모진 오해와 비난을 받은 것은 아닐까.
권력자는 국가를 이끌어 감에 있어 주어진 권력으로 무엇보다 국가의 실체라고도 할 수 있는 백성의 호의(두려움이 포함된 존경)를 얻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권력자는 그 권력의 크기와 무게감에 대한 엄중한 인식에 입각하여 권력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필요한 경우 단호하며 과감하게 권력자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역량 또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권력자는 국가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다만 소양, 성품, 역량, 등 권력자 개인의 캐릭터에 의해 국가의 나아갈 방향성에 극명한 차이가 발생하는 난제가 존재하는 것, 그것이 현실권력의 치명적 한계라고 할 것이다.
계속 읽어도 되냐는 아들의 물음에 그러라고 했다. 결코 위험한 책이 아니니 읽어도 된다고 했다. 한 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읽을 만하면 더 읽으라고 권하기도 했다.
이 책에 대해 소문으로만 들은 사람은 진실에 닿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