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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심화학습(1)

칼의 노래

by going solo

김훈 지음/ 생각의 나무, 2010




-분노조절,

화는 ‘나’로 다스린다.


나으리, 오래오래 사십시오.
알았다. 내 그럴 작정이다.( 142쪽)


‘免死’,

인색한 임금의 교지에 분노가 솟네요. 그러고 싶지 않지만 억지로 뭐 때문에 죽지 않게 해 주니 감읍하라는 건가. 알량한 두 글자에 영혼은 1도 없고.

불처럼 치미는 화에 차라리 그 불 다 뒤집어쓰고 싶은 순간, 그렇다고 진짜 나에게 불을 지르는 건 쫌 아닌 거 같고 누구든 걸려만 봐라.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차원이 다른 창조적 소수라 그런가, 우리의 순신님은 오히려 자신에게 집중합니다.

‘자의식’으로 화의 온도를 낮추지요. 임금의 칼에 죽고 싶지 않은 자, 그런 죽음의 무내용을 견딜 수 없는 순신님의 직함은 ‘삼도 수군통제사’, 오로지 한 몸에 얹혀 있는 사직의 명운을 끝내 지켜 내리라. 자신의 정체성에 걸맞은 존엄의 방식으로 분노를 승화시킵니다. 훌훌 공기처럼 가벼워진 정신으로 타인이 면해 주는 죽음이 아닌 스스로의 삶을 선택합니다.



-애민,

마음이 어질어 칼을 찬다. 내 나라 내 땅 구석구석 도사리고 있는 적을 찾아 끌어내 깨뜨리고 깨부순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모든 터가 내 백성의 삶의 자리이므로.


먼저 도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랬지요. 우리 민족의 유전자 목록에 공격성, 도발성 그런 거 없습니다. 그 대신 우리에겐 자족하는 비법이 있습니다. 남의 것이었는데 일단 우리 땅으로 들어오면 신토불이처럼 됩니다. 원본 생산자 보다 더 훌륭하게 손질해서 우리 손에 맞게 우리 기질에 딱 맞게 원래 우리 것이었던 것처럼 그럴싸하게, 말하자면 효율적이고 합리적이고 더 과학적으로 고쳐 씁니다.


그런데 순둥순둥 잘 살고 있는 우리의 코털을 누가 건드렸다, 인격에 생채기를 낸다, 존엄을 짓밟는다, 그래? 그럼 드루와 봐!

맨날 흰 옷만 입고 다니니 풀만 먹는 토낀 줄 알았냐? 아우 씨, 겸손에 능숙한 백범이었단다. 딱 기다려라, 범 내려간다. 안 살면 안 살았지 내 이렇게는 못살아.... 완전 흥분 돋네, 갑자기 쌈닭 본능 솟구치는..... 아,

맥락이 산으로 가고 있네요. 캄다운 하고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너희가 백성으로서 어찌 싸우는 수군을 따라나서느냐?
나으리, 이제 우수영을 버리시면 적은 곧 들이닥치리다. 백성이 수군을 따라가지 않으면 적을 따라가리이까? 수군 또한 백성의 자식이 아니고 무엇이오? 내 아들놈 조카 놈들도 임진년 싸움에서 다 죽었소.
노인의 울음이 악으로 바뀌어갔다.(중략)
따르게 하라. 허나, 뗏목으로는 고하도까지 갈 수가 없을 터이니..(175쪽)


인간애로 가득한 휴머니스트의 싸움엔 어딘가 애수가 깃들어 있습니다. 순신님의 전쟁이 그러합니다. 그토록 마음에 사무치는 슬픔과 시름은 한없이 가난하고 어리석은 백성에게서 온 것일 겁니다. 승패는 고사하고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빈곤한 싸움. 조국의 존망이 걸린 전쟁의 사령관이 무지렁한 백성이 떼쓴다고, 무섭다고 그러니 버리지 마라고 울고불고 하니 못내 떨쳐내지 못합니다.

이 싸움의 본질은 백성의 삶을 지키고자 함이거늘. 수군으로 죽은 자식들의 늙은 부모들, 가진 것 없는 그들의 빈 몸을 향해 코를 베겠다 달려드는 왜군의 야만에 어린것들을 내놓고 싶지 않으셨던 걸까요. “질긴 생명력으로 또다시 살아나거라.” 수영 뒤편에 터를 마련해 줍니다. 우리의 미련함과 가난함과 시름과 슬픔을 내 것처럼 품고 사는 지도자의 이런 사랑이면 족합니다.


백성의 온갖 시름을 칼끝에 수렴해 적의 종심을 찌르는 순신님의 무력엔 힘이 있습니다.



-그 와중에 낭만,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면 꼭 있는 것.


백성들은 다투고 웃고 욕지거리를 하며 하루의 거래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밥이 익는 향기 속에 시장기가 솟아났다.
그리고 노곤한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장터 멍석 위에서 잠들었다.
봄볕이 이불처럼 따스했다.( 220쪽)


아직은 날이 찬데, 봄은 좀 더 기다려야 하나 하던 참에 ‘저게 뭐야?’

매일 오가는 길인데 어제도 안 보이던 것이

부스러질 듯 메마른 블록 틈, 알량한 흙을 딛고 선 제비꽃, 봉오리에 묻어있는 보랏빛을 보던 순간 훅, 마음에 온 것은 무엇일까요?

다 겨울인 것 아니고 다 행복이 아니듯 다 불행인 것도 아닌 것이 우리 인생 아니던가요?


어디든 삶은 있습니다. 전쟁도 사람이 하는 것이니 숱한 죽음의 그곳에 위태하게 라도 삶은 있기 마련이지요.

왜군에게 밀릴 국면에서 예상되는 적의 보급로를 거슬러 탐색하는 영산강변, 이 길이 뚫리면 너 나의 삶은 기약할 수 없을 게다. 엄중한 순간에 들려오는 욕지거리에 웃음과 다툼이 어우러지는 소리는 어찌 들렸을까요.


채 수습도 못한 시신이 널브러져 있는 저쯤 너머 장터에 여상한 백성의 삶이 소란스럽습니다. 달콤 고소하게 밥 냄새도 나고요. 이불처럼 따스한 봄볕 속 잠시라도 삶은 여전합니다. 전쟁은 멀고 평안함으로 밀려드는 잠.

바람처럼 사라질 낭만의 순간입니다.





며칠 후

이순신 심화학습(2)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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