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버지 진짜 왜 그래. 점수 좀 떨어지면 어때, 그래도 잘한 거잖아. 칭찬해 줘야지. 무슨 아버지가 저러냐고. 칭찬할 일이랑 혼낼 일이랑 분간도 못하면서. 아버지 진짜 이상해.”
“우리 딸, 아프지?그래도 마음풀어, 아버지 또 회초리 들고 오실라. 엄마 저녁 차려 올 테니까 오빠랑 조용히 있어.”
오빠는 맞을 때도 내가 내 성질에 지랄을 떨 때도 엄마가 종아리를 문지르고 주물럭거려도 암말 안 한다. 조용히 무표정으로.
“미안해 은아. 오빠 때문에 괜히 너까지 맞게 하고.”
“아냐, 오빠. 난 오빠 혼자 매 맞는 게 더 싫어. 그리고 내가 잘못해서 맞을 때도 오빠랑 같이 맞으면 얼마나 든든한데. 오빠랑 같이 맞는 게 맘 편해. 오빠만 매 맞는 거 보고 있으면 더 신경질날 거 같아. 그리고 내가 막 지랄하고 엄살을 떨면 아버지도 좀 누구러지는 거 같지 않아?”
“그래도 너도 아프잖아.”
“아프지 당연히. 근데 난 괜찮아. 엄마 땜에 괜찮아. 우리한텐 엄마가 있잖아. 아버지가 좀 이상할 때가 있긴 해도 엄마가 있으니까 괜찮아. 오빠도 그렇게 해. 엄마 생각해서 엄마가 있으니까 종아리만 아파해. 마음까지 아프면 안 돼. 그러면 엄마가 더 슬퍼. 알겠지 오빠.”
난 그랬다. 아프고 억울해서 뚜껑이 열릴랑 말랑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에 엄마의 눈빛을 보면 솟구치던 불기가 피식 꺼져버린다. 얼굴이 녹아내릴 것처럼 축 쳐져서 나만큼 억울해하고 아파해 주는 엄마 때문에 엄격하기만 한 아버지도 사실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더 잘되라고 그러시는 거지 뭐. 짜증 나긴 해도 설마 자식인데 미워서 그러겠어. 그런 아버지가 무섭고 둘이 있을 때는 솔직히 좀 불편하기도 하고 그러긴 했어도 미움은 아니었는데.
오빠는 아니었다. 엄마의 사랑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풀어지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살얼음 같은 인색함에 받은 상처가 엄마의 사랑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오빠의 결핍은 아버지의 것으로만 채워질 것이었다. 아마 그랬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