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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ing solo Mar 07. 2024

<은밀한 미움>

〔소설〕결국 해피엔딩


아닐 걸,

그건 아니라는 걸 난 안다.

엄마 마음에 사랑만 있던 건 아니라는 걸

미움도 있었다는 걸


우리가 누구에게든 인사를 제대로 안 하거나

버릇없어 보이거나

이것들이  사람노릇 할까 싶으실 때

나는 그렇다 치고 특히 완이의 성적이 못마땅하실 때도

아버지는 주로 종아리를 때리신다.


그렇게 우리가 매질을 당하는 동안

엄마는 무슨 돌덩이처럼

마루 끝에 쭈그려 앉아 계신다.

방문이 열리면 조용히 일어나 우리를 보신다.


한없이 애처로운 눈빛에

우리 너머에 있는 사람을 향한 원망도 섞여있다.

아니, 이 아까운  새끼들 어디 손댈 데가 있다고 저러냐.

마음으로만 들리게 그렇게 말하면서

엄마의 그 눈빛에 서러움이 치밀어 나는 철퍼덕 주저앉아 울음을 내지른다.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그래도 잘한 거잖아. 그게 왜 맞을 일이냐고,

칭찬은 못해줄 망정 종아리는 진짜 아니지.”

신경질이 불같이 치밀어 오른다.


“어허, 이 녀석 아직도 매가 부족하냐. 무슨 버르장머리야.”

아버지가 방문을 열어제치신다.

엄마는 후다닥 내 손목을 잡고 오빠 방으로 끌고 간다.

오빠는 조용히 뒤따라온다.


엄마는 뻘건 줄이 그려져 있는 우리 종아리를

보다가 쓰다듬다 주무르다 문지르다 그러신다.

“엄마, 아버지 진짜 왜 그래. 점수 좀 떨어지면 어때, 그래도 잘한 거잖아. 칭찬해 줘야지. 무슨 아버지가 저러냐고. 칭찬할 일이랑 혼낼 일이랑 분간도 못하면서. 아버지 진짜 이상해.”

우리 딸, 아프지?그래도 마음풀어, 아버지 또 회초리 들고 오실라. 엄마 저녁 차려 올 테니까 오빠랑 조용히 있어.”


오빠는 맞을 때도 내가 내 성질에 지랄을 떨 때도 엄마가 종아리를 문지르고 주물럭거려도 암말 안 한다. 조용히 무표정으로.


“미안해 은아. 오빠 때문에 괜히 너까지 맞게 하고.”

“아냐, 오빠. 난 오빠 혼자 매 맞는 게 더 싫어. 그리고 내가 잘못해서 맞을 때도 오빠랑 같이 맞으면 얼마나 든든한데. 오빠랑 같이 맞는 게 맘 편해. 오빠만 매 맞는 거 보고 있으면 더 신경질날 거 같아. 그리고 내가 막 지랄하고 엄살을 떨면 아버지도 좀 누구러지는 거 같지 않아?”

“그래도 너도 아프잖아.”

“아프지 당연히. 근데 난 괜찮아. 엄마 땜에 괜찮아. 우리한텐 엄마가 있잖아. 아버지가 좀 이상할 때가 있긴 해도 엄마가 있으니까 괜찮아. 오빠도 그렇게 해. 엄마 생각해서 엄마가 있으니까 종아리만 아파해. 마음까지 아프면 안 돼. 그러면 엄마가 더 슬퍼. 알겠지 오빠.”


난 그랬다. 아프고 억울해서 뚜껑이 열릴랑 말랑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에 엄마의 눈빛을 보면 솟구치던 불기가 피식 꺼져버린다. 얼굴이 녹아내릴 것처럼 축 쳐져서 나만큼 억울해하고 아파해 주는 엄마 때문에 엄격하기만 한 아버지도 사실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더 잘되라고 그러시는 거지 뭐. 짜증 나긴 해도 설마 자식인데 미워서 그러겠어. 그런 아버지가 무섭고 둘이 있을 때는 솔직히 좀 불편하기도 하고 그러긴 했어도 미움은 아니었는데.


오빠는 아니었다. 엄마의 사랑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풀어지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살얼음 같은 인색함에 받은 상처가 엄마의 사랑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오빠의 결핍은 아버지의 것으로만 채워질 것이었다. 아마 그랬을 거다.


그런 아들 때문에 엄마는 아버지를 못마땅해하셨고 조용히 미워했다.

완이 오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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