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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ing solo Mar 21. 2024

<무궁화나무>

〔소설〕결국 해피엔딩


오빠랑 나는 싸리 빗자루에서 세 개씩 빼들고 아버지 방으로 갔다.


이걸로 안 될걸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다른 걸로 가져와라.”

나는 짜증이 확 났다.

“아버지,”

“잔말 말고 다른 걸로 가져와.”

아버지의 음성이 더욱 낮아진 만큼

냉기도 더해졌다.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한 엄마 얼굴에 그늘이 가득 담겨있다.

“왜, 무슨 일인데?”

“엄마 그냥 계세요.”

완이의 목소리에도 냉기가 서려있다.


우리는 텃밭 담장에 둘러 서있는 무궁화나무를 세 개씩 꺾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엄마도 한쪽에 앉아계신다.

“무슨 일이에요? 잘 시간에 애들이 뭘 어쨌다고 또.”

“당신 나가 있어요. 은이도 나가라.”

“네? 저는 왜요?”

“엄마 모시고 나가.”

“싫어요, 아버지.”

“엄마랑 나가라고.”

“은아, 오빠 괜찮아. 엄마 모시고 나가있어.”


매질이 시작됐다.

휙휙 감기는 소리,

싸리나무는 단단해서 살에 닿는 만큼만 아프지만

무궁화나무는 회초리가 아니고 사실은 채찍이다.

저것이 다리에 휘감길 땐, 왠지 마음 아니면 정신에도 금이 가는 것 같은데.


“엄마, 그만하시라고 해. 왜 말도 안 하고 때리기만 하냐고. 왜 그랬는지 물어보기라도 해야지, 엄마.

엄마, 아버지 좀 말려요.”


“나쁜 자식,

니가 이 애비를 이렇게 실망시켜?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선 채로 죽어있는 오빠.

그런 아들을 더 죽이려는 아버지의 손에 무궁화나무 두 개가 쥐어져 있다.

오빠 종아리에 그어진 빨간 금들.


“그만하세요 아버지.”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채찍을 휘둘렀다.

“그만하시라고요. 뭐가 나쁜 자식에요. 아버지맨 날 뭐만 하면 실망 이래. 담배 좀 피면 나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아들이 담배 피면  왜 그랬냐고 물어봐 주셔야죠. 왜 그 험한 담배를 피냐고, 무슨 힘든 일 있는 거냐고, 말해보라고. 아버지가 도와준다고 하셔야죠. 물어보고 들어주고 그래야죠. 왜 우리 아들이 힘드냐고.”


두세 번 더 휘둘렀다.

완이 종아리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결국 주저앉았다.

아버지는 일어나 완이의 등짝에 채찍을 휘두른다.

“아버지 그만하라고요.”

나는 오빠의 몸을 감쌌다.


내 등짝에 두어 번 불길이 그어졌다.

그 뜨거움에 데인 나는 이성을 잃었고

끓어오르는 화에  사로잡힌 아버지에게 맞섰다.


“진짜 나쁜 사람은 아버지라고요. 뭐가 그렇게 잘나셔서 맨날 혼내고 때리고 그러려고 아버지가 된 거예요? 아버지 나빠요. 진짜 나쁜 아버지예요.”


얼굴로 번지는 불길,

나는 후끈한 열기에 내동댕이쳐지듯 쓰러졌다.

“완이 아버지!”

문간에 서있던 엄마가 풀썩 주저앉았다.


오빠와 눈이 마주쳤다.

물에 잠긴 그 눈빛에 어린 슬픔과 두려움,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있다.

저건 분노인가.


완이는 울고 있었다.

흐느껴 울고 있다.

맞은 데가 아파서는 아닐 터였다.


“담배는 더는 피지 마라, 알겠어?”

공허한 물음에 대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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