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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ing solo Mar 23. 2024

<김치찌개, 된장찌개, 소고기 미역국, 콩자반, 김>

〔소설〕결국 해피엔딩 1


그날 이후

오빠는 흡연하지 않았다.

아니, 들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아버지는 더 이상 우리에게 매를 대지 않으셨다.

더욱이

아버지에게서 풀풀 풍기던 냉기도 훨씬 누그러졌다.


아침마다 오빠 방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는 말간 얼굴로 텃밭을 둘러보신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버지.”

“그래 잘 잤니?”

“네.”

“아침 먹고 학교 가라.”

“네.”

아버지가 변했다. 뭔가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면 다행이지.


오빠는 변하지 않았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에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말들

엄마와 텃밭에서 보내는 시간을 제일 좋아하는 것도 변함없었고

연애는 이상 무,

하교 길에 미영이 언니랑

얼굴 가득 웃는 것도 몇 번 봤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눈부시게 손질해 주신 교복을 입고 학교 갈 때,

무슨 생각을 하실까

거의 매일 대문 밖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셨다.

모퉁이를 돌 때쯤  뒤돌아 보면 어여 가라고 손 흔들어 주시는 게

난 정말 얼마나 좋았다고.


토요일 오후엔 운동화며 실내화며 바득바득 빨아 댓돌에 세워 놓으시고

김치찌개, 된장찌개, 소고기 미역국에, 콩자반, 김,

우리가 먹는 걸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길로 지켜봐 주시고


“맛있어요, 엄마.”

“그래? 맛있게 먹어 주니까 엄마도 행복해요.”

엄마의 온 영혼은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그날 무궁화나무에서 나온 울음은

지나간 모든 것이 그랬듯 흐르는 시간에 덮였고

우리는 또 다른 일상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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