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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ing solo Mar 15. 2024

<풍경>

〔소설〕결국 해피엔딩


별채에 나란히 붙어 있는 우리 방

좁다란 툇마루가 있고 장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맞은편 쪽문은

꽤나 널찍한 텃밭으로 이어져 있다.


할아버지에게 이어받은 한의원에

아버지는 한의사로

작은 아버지는 사무장으로 함께 운영하신다.

아버지는 텃밭에 도라지랑 작약, 뭐 그런 걸 손수 키워 약재로 쓰셨다.


한쪽 엄마 밭에는

상추랑 쑥갓이랑 들깨랑 가지 오이 호박 토마토 열무 얼갈이,

우리 식구 골고루 먹을 만큼 가꾸셨다.


습기 가득한 이른 아침

아버지는 텃밭에 나가 약초를 돌아보고 풀도 뽑아주고

가물 때는 물도 퍼다 뿌려주고

뒷짐 지고 물끄러미 내려다보실 때

아버지의 표정과 몸짓이 제일 평온해 보인다.


오빠도 그랬다.

학교 다녀오면 가방 던져 놓고 텃밭으로 달려간다.

엄마랑 풀도 뽑고 토마토도 따먹고 오이도 하나 먹어보고 그렇게 논다.


“엄마 가지 좀 딸까요?”

“우리 아들 오늘 가지 먹고 싶어?”

“엄마가 해 주시는 건 아무거나 다 맛있어요.”

“그래 가지찜 해 줄게.”

모냐 지금 두 사람 대화가 맥락이 안 맞는 거 같은데.

나는 뒷문의 쪽 마루에 비스듬히 누워 오빠가 따준 오이를 먹으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사람의 행복한 풍경을 본다.


오빠는 가지를 따고 고추도 따 바구니에 넣고 쭈그려 앉아 풀을 뽑는다.


“엄마, 잡초 뽑는 건 힘드니까 제가 할게요.”

“아니야, 엄마 하나도 안 힘들어.”

“그래도 힘든 건 하지 마세요.”

“알겠어요. 힘든 건 우리 아들이 다 해주세요.”

“흙이 좀 마른 거 같은데 물 좀 줄까요.”

“그래, 요새 좀 가물 긴 해.”


모자 사이에 오가는 말들

밭에 있을 때 우리 가족은 

다 똑같아진다.


“어허,

거기서 뭐 하냐. 들어가 공부 안 하고.”


심술쟁이 아버지 또 또 훼방 놓으시네.

하루종일 공부하고 왔는데 요만큼도 못 놀아요?

꽥 소리치고 싶지만, 그래 내가 참자. 

당신도 텃밭에서 노는 거 그렇게 좋아하시면서

아들도 좀 놀게 두면 안 되냐고요, 맨날 공부만 하라고 난리야.


풀썩 꺼진 오빠는 들고 있던 물조리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달팽이 등껍질 같은 지방으로 들어간다.

엄마는 귓등으로 들었는지 눈길도 안 주신다.


애들 좀 냅두면 안 되냐, 

엄마의 마음이 훤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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