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 부음
온 국민이 감금 조치에 들어가고 일주일쯤 지난 3월 말이었다. 하루 종일 아니 일주일 있어 보아야 전화벨이 울릴 일이 없는데 의외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때 벌어지던 일은 초현실적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사라졌던 국경이 다시 생기고 하늘 길도 하나둘씩 끊어졌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여도 전 세계 대부분 국가들이 전 국민을 감금하는 현대사 초유의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그즈음 프랑스의 하루 사망자는 5백 명을 훨씬 웃돌았다. 전쟁을 쳐도 하루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 않는데! 나는 생필품을 사려고 슈퍼에 가는 것 빼고는 꼼짝 않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일주일에 한 번 외출할 때면 거리를 오가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도로를 달리는 차량도 뜸했다. 차도를 건널 때 신호등 볼 필요가 없었다. 봄꽃들이 다투어 피고 부서지는 햇살은 눈부시기 그지없는데 발걸음을 옮기면 자꾸 허방다리를 짚는 것 같았다.
내가 사는 곳은 원래 조용한 동네라 아파트 바깥이 수선스럽지 않지만 오가는 사람 보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오전이면 때 맞추어 아파트 관리하는 깡마른 흑인 아저씨가 마스크 끼고 청소하러 나타나고 역시 안전모에 마스크 착용한 우편배달부가 자전거를 세웠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자연 거실 창문 밖을 자주 내다보게 되었다. 이전에도 오며 가며 몇 번 보아 낯익은 앞동의 노인네가 젊은이 둘을 대동하고 오른편으로 서서히 나타났다. 우주인 같은 슬로 모션으로 스텝을 밟는 90대 노인의 템포에 맞추어 20대 청년과 여인이 정상 발걸음으로 뒤따라간다. 밀대를 앞세우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노인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왼쪽 저편으로 멀어질 때까지 이 셋의 행렬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사람 소리보다는 간간이 배달 차량의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오후 네 시가 지나면 침실 바깥 월계수가 서 있는 공터에 아빠와 고만고만한 어린 딸 셋이 깜짝 출현하여 한참 놀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저렇게 활발한 애들을 온종일 집에 가둬두어야 하니… 우리 집 고양이 보슬만이 유일하게 감금 조치에 아랑곳없이 늘 하던 대로 침실 창문을 통해 마음대로 외출하였다. 고요한 밤하늘을 앙칼지게 가르며 잦게 울려 퍼지는 앰뷸런스 소리가 그렇게 음산할 수 없었다. 도저히 믿기 힘들고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에서 남한테 말걸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나 자신도 누구한테 전화를 하지 않고 그러다 보니 자연 걸려오는 전화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이 전화는 아주 뜻밖이었다. 자주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어서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였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혹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까 보아 소개까지 하였다.
« 어떻게 건강은 괜찮으시죠? »
« 네, 그런대로. 일단 살아남자는데 초점을 맞추고 살아요. »
« 참, 루브르에서 일하던 앙드레 아시죠? 폴란드 사람. 저는 개인적으로 잘 모르기는 하지만… »
« 잘 알죠. »
« 돌아가셨다는 소식 들으셨어요? 중국 가이드도 이름은 모르지만 몇 명 죽었대요. »
« 아뇨. 저도 3월 11일까지 위험한 줄도 모르고 일했는데… 목소리 보세요. 감기 끝에 목소리가 이렇게 돼버렸어요. 걸리지 않은 게 정말 용하다 싶어요. »
« 참, 국가 보조금을 준다는데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셨어요? »
« 아뇨. 아직 구체적인 건 발표하지 않았잖아요.»
« 그렇구나. 저도 알아보고 알려드릴게요. 건강 잘 지키세요. »
« 고맙습니다. 전화 주셔서. »
둔탁한 물건으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휑해졌다. 관절염을 앓아 걸음이 자유롭지 못하던 폴란드 친구 앙드레였다. 한국 사람 덕에 집도 사고 스포츠카도 샀다고 만족해하며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바캉스 떠나던 앙드레, 주로 태국으로 바캉스를 가곤 하였다. 부인이 프랑스 사람이라는데 이렇게 오래 살았어도 프랑스 말을 그렇게 못 해! 이것은 나의 힐난이다. 말수가 적은 친구여서 그렇게 느껴져서 일지 모르겠다. 담백한 성격이라 과장되거나 허풍 떠는 말을 절대 하지 않았다. 아주 성실해서 늘 약속시간보다 미리 와서 기다리곤 했는데…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으려고 할 수 있으면 루브르의 모든 엘리베이터는 다 타는 편이었다. 무릎이 좋지 않아 한쪽 다리를 실긋하고 빨리 걸으면 숨 가빠하였다. 3월 초까지 마스크 끼고 일하던 그를 마주쳤는데… 한편 나는 의사들이 환자나 의사가 아니면 굳이 마스크 착용할 필요가 없다는 말만 철석 같이 믿고 마스크 낀 사람들을 가소롭게 바라보기까지 하였다. 앙드레가 죽다니…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목청을 높이면서 쉰 목소리가 되어 "그건 말도 안 돼."하고 되뇌던 모습이 선한데… 늘 미디어를 통해 이미지나 소리로만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소식을 접하다가 앙드레의 죽음은 피부로 와닿았다.
죽음은 참 우리 가까이 있어. 어쩌면 삶의 일부일지 몰라. 사망자 숫자로 환원된 죽음이나 화면을 통한 간접화된 죽음만 대하다가 가까이 알던 사람의 부음은 충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