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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Mar 01. 2022

갇혀 지내는 사람의 하루

 덧창과 커튼 사이로 줄을 그으며 빛이 번진다. 

 

 일하러 가지 않아도 정상 리듬은 유지해야지. 웬만하면 일할 때처럼 정상으로 살도록 해보자. 생활이 흐트러지면 건강도 나빠질 테니까. 맞아, 정상 리듬을 유지하는 게 좋아. 수도원이나 학교 생활처럼 수칙을 정해야 돼. 쇠창살만 없다 뿐 감옥 생활과 다름없으니까. 


 신분증과 이동 증명서를 갖추면 매일 슈퍼에 장 보러 갈 수 있다. 또 하루에 1킬로 반경에서 한 시간 산책이나 운동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슈퍼는 일주일에 한 번만 가고 야외 운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3월 중순 감금 생활 초기에는 으레 먼저 한국 소식을 인터넷 뉴스를 통해 보았다. 그때는 아직 한국이 감염자 숫자가 수그러들지 않아 어려운 시점이었다. 그러다가 프랑스가 더 심각해지면서 한국 소식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났다. 4월이 되자 프랑스 언론은 일제히 한국이 코로나 방역 모범 국가라고 띄우기 시작했다. 4월 14일 한국의 코로나 대책과 관련해서 강경화 외교장관의 미국 텔레비전 방송과 인터뷰한 것을 통역해 [프랑스 24]란 국제뉴스 TV 채널에서 내보내고, 4월 16일 [프랑스 앵테르 France Inter] 라디오에서는 한국의 질병대책 본부장 정은경을 아주 짧은 시간에 전염병을 잡아낸 영웅처럼 보도하였다. 


 먼저 휴대전화기로 시간을 확인하고 새로 올라온 기사를 살펴본다. 라디오를 듣는다. 듣기 좋은 남자 진행자의 목소리가 나오고 몇몇 고정 패널도 뒤따라 나온다. 경제, 정치, 건강, 유머, 일기예보… 8시 20분 유명인사들 주로 정치인들과의 인터뷰가 진행된다. 무슨 무슨 장관, 국회의원, 의사, 경제 학자, 배우, 작가… 전 국민 감금이 시작되는 3월 16일부터 모든 미디어는 일제히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나오지 말고 집에 계세요."를 외쳤다. 


 "규칙적으로 손을 씻으세요."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는 팔꿈치에 대고 하세요."

 "휴지는 한 번 쓰고 버리세요."


 "혹 기침하고 열 있으면 코로나인지 의심해야 합니다. 주치의한테 연락하십시오. 다른 사람과 접촉을 피하고 집에 머무세요. 보통 며칠 휴식을 취하면 회복됩니다. 그래도 증세가 심해져 가슴이 가빠지고 숨쉬기가 힘들면 15번으로 곧바로 전화하세요. 아니면 Covid-19 정부 사이트로 알아보세요. 이것은 보건부의 메시지였습니다."


 4월 25일부터 보건부의 메시지가 바뀌었다. 남자 성우의 가라앉고 중후한 목소리가 경고음으로 흘러나온다. 


 "코로나는 비말을 통해 전염됩니다. 한 사람이 세 사람한테 전염시키고 세 사람이 다시 세 사람씩 전염시킬 수 있습니다. 서로서로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주세요." 


 얼기설기한 줄무늬 사이로 햇빛이 번지면서 창문이 더 환해진다. 이젠 일어나자.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책상에 앉는다. 컴퓨터를 켜거나 책을 편다.


 먹먹하다.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떻게 되려는지…? 그래 일단 코로나에서 살아남는 게 최우선이지. 나중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맞아. 예상보다 훨씬 오래갈 모양이니…

 막막하다. 당장 몇 달은 먹고살게 있지만 그 이상 가면 힘들어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러다간 바이러스로 죽는 게 아니라 굶어 죽을 거야. 입버릇처럼 이렇게 되뇐다. 전염병의 두 동반 기사는 기근과 전쟁이니까.


 습관처럼 휴대 전화기는 늘 곁에 둔다. 일할 때처럼 전화받을 일이 없는 줄 알면서도. 문자도 거의 오지 않는다. 광고 메일을 얼른 지운다. 처리해야 할 메일은 거의 없다. 전화기는 신체의 일부처럼 늘 곁에 붙어 있다. 으레 인스타를 눌러보고 카톡을 켜본다. 쓸데없는 메일은 여지없이 지운다. 르몽드 머리기사를 본다. 구글 편집 기사도 훑어본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건강란을 날이 갈수록 더 많이 읽는다. 외출하지 않지만 기상 관련 앱을 열어 날씨와 기온을 알아본다.


 덧문을 올리고 커튼을 연다. 해드는 시간이 고작 두어 시간이라 기필코 베고니아 화분에 햇빛을 쪼여주어야 한다.


 나도 모르게 창문가로 바싹 다가간다. 어떤 때는 창문을 열고 또 어떤 때는 닫은 상태로 창밖을 내다본다. 창턱에 설치해둔 화분에 심어둔 제라늄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 춥지 않은 겨울을 잘 넘기고 살아 남아 한 줄기에서 새빨간 꽃 한 송이가 피었다. 다른 녀석들은 꽃피우려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눈을 들어 우리 동과 맞은편 동 사이에 자리잡은 키 큰 단풍나무를 바라본다. 바깥에는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나뭇잎이 돋아난다. 가끔 주민 한둘이 지나가고 배달차량이 드나들기도 한다. 우리 아파트 단지의 수위가 청소하러 들어오고 우편배달부가 자전거를 세워두고 우리 동으로 온다.


 밖으로 나가 운동하는 대신 거실에서 십 분쯤 스트레칭을 한다. 한 시간 동안 외출이 허락되지만 왠지 나가고 싶지 않다. 


 우리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감금 수칙을 어기는 일원은 바로 우리 집 고양이 보슬이다. 늘 자기 하던 대로 변함없이 생활한다. 낮에는 잠자고 밤이면 활동을 시작한다. 때가 되면 먹을 것을 요구하고 나가고 싶으면 창문을 열어달라고 온다.


 생활에 다시 혼란이 생겼다. 3월 29일부터 서머타임이 시작된 것. 잊어버린 나쁜 기억들이 되살아나듯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 시간을 실시한다. 유럽연합에서 올해부터 서머타임을 없앨 거라는 움직임이 활발했는데 코로나의 공격을 받고 그 논의가 쑥 들어가고 말았다.


 의존한다는 것은 참 서글프다. 양로시설의 노인들은 치료는커녕 검사도 못 받고 전염을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가족과 단절되어 마지막 순간 가족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쓸쓸히 홀로 죽어간다.


 마스크 때문에 난리다. 코로나 초기에는 정부에서 마스크 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의사들도 환자나 의료진이 아니면 굳이 마스크를 끼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했다. 어느 날 의사학회에서 말을 바꾸어 마스크가 전염병 방지에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얼마 더 지나 4월 말 의사학회에서 전 국민 격리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부터 바로 마스크를 껴라고 권고했다. 오월 초 마스크 사건이 터졌다. 대형 유통업체에서 5월 4일부터 마스크를 대중한테 판다는 발표를 하자 7개 의료 단체에서 항의문을 발표하고 미디어에서는 마스크 문제가 활화산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보건부 보건국 본부장이 발표하는 숫자로 우리는 코로나의 공포를 체험한다. 예전에는 모든 사건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지금은 미디어를 통해 이미지만 반복해서 본다. 죽음도 그렇게 간접화되어 남의 일이 되고 만다. 현실은 급박한데 화면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은 그냥 숫자로만 사태가 정리된다. 


 집에만 틀어박혀 사는 생활은 오늘은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기 쉽다. 


 5월 11일이면 감금 해제다. 55일간 격리생활의 막이 내린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나다닐 처지는 아니다. 서점과 작은 도서관, 일부 학교, 거의 모든 가게들이 문 연다. 큰 미술관, 카페, 레스토랑, 영화관, 공연장 등은 6월 2일을 기약하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또는 인터넷의 뉴스란 뉴스는 온통 코로나 일색이다. 프랑스의 하루 사망자가 하루에 오백 명대를 헤아리자 텔레비전 뉴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코로나 관련만 보도하였다. 침울한 기사들만 반복되는 뉴스를 보기가 언짢아서 어느 때부터 텔레비전을 켜지 않았다.


 저녁 여덟 시. 

 하루 동안 숨죽이고 사라졌던 사람들이 되살아나서 창문을 열고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어떤 때는 거실에서 어떤 때는 부엌에서 맞은편 아파트를 보며 박수를 친다. 아이들과 젊은 친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고 아마추어의 악기 연주도 뒤따른다. 부엌 쪽 맞은편 4층에서는 어김없이 프로 색소폰 연주자가 날마다 곡을 바꿔가며 4-5분간 멋지게 연주한다. 연주가 끝나면 한 중년 남자가 길게 여운을 남기며 "메르으시이!"( Merci! : 감사합니다.)로 누구는 냄비를 두드리며 박수 행사를 마감한다. 거실 쪽은 박수가 끝나고도 우리 동의 젊은 청년이 맞은편 젊은이들을 향해 뭐라고 뭐라고 장광설로 웅변을 토해낸다. 맞은편에서 추임새인 양 환호와 함께 박수가 뒤따른다. 이들의 연설과 박수도 막을 내리면 다시 무덤 같은 적막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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