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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으로부터

(21) 자작시, 무모한 결심

by 예쁨


<무모한 결심>


한낮에 별을 세겠다며

햇살 아래 누운 사람처럼


뙤약볕 가뭄에

씨앗 한 움큼 더 심는 농부처럼


거센 물살 거스르며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처럼


네가 탄 기차를 놓쳐버린 내가

너를 따라 달려간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까


흔들리는 마음을 묶어두고

흐름에 지지 않고 헤엄치는

너를 향한 착심으로 달려가는 일

굳게 마음먹은 무모한 결심


2020, 능내역



종종 책을 읽고 시를 쓴다.

책은 나를 조금 더 풍부한 경험 속으로 이끌어주니까-


수능시험을 앞둔 딸은 평소라면 한 권도 읽지 않던 책을 읽기 시작했고,

시험이 끝나니 또다시 책을 놓았다.

(언제나 반대로구나)

한 권이라도 같이 읽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그녀가 읽었다는 <모순>을 다시 잡고 읽어 내려갔다.


분명 읽었던 책이었지만 처음 읽는 것 같은 생경한 느낌은 읽을수록 결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더 그랬나 보다.

같은 책이어도, 언제 읽느냐, 어떤 감정일 때 읽느냐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다르니까.

아이가 형광펜으로 표시한 곳을 보면 어떤 마음으로 읽었는지 엿볼 수 있어 그 또한 재미다.


<그녀가 표시해 둔 곳>

모순 발췌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너는 말보다 돈을 좀 아꼈으면 좋겠다만)

모순 발췌2
영악함만 있고 자존심은 없는 인간들

(가끔은 스스로를 돌아봐야..)

이십 대의 젊음이라는 것은 어떤 조건과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천하무적의 무기이니까.

(천하무적 무기 중에 쌍수가 포함되는 것이니?)



<내가 표시한 곳>

모순 발췌3
남김없이 다 솔직해버리면 사랑이 누추해지니까, 사랑은 솔직함을 원하지 않으니까.

그렇다,

사랑은 솔직할 때 위험하다.

건강한 사랑은 서로를 성장시키지만, 누추한 사랑은 각자가 스스로를 보호하려고만 하게 해서 성장과 연결을 막기 때문이다.


나처럼 결혼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나라고 해서 다른 길들에 대해 충분히 사색하지 않았겠는가.

결혼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다.

모순 발췌4
이름 앞에 ‘안’이 붙는다는 사실까지는 유념하지 못했을 것이다.
평생 자신의 이름을 부정하며 살아가야 할 운명인 것.

나도 안 가(家)다.

어려서부터 성(姓)씨 때문에 놀림받는 일이 제법 있었다.

그러므로 주인공 ‘안진진’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으며, 사실 필명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예쁨인 줄 알았다고? 사실 나는 안 예쁨이야, 모모…어쩔꼰데? ‘ㅅ’ )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철학자라 하지 않았던가,

경험과 성찰을 통해 얻은 삶은 언제나 새롭기 마련이다.

하지만 안진진에게 친히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안진진 씨에게,

당신은 이름부터가 모순이더군요.
세상은 당신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고, 당신은 어떤 기대와 맞서고 있는 걸까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 그것이 얼마나 힘겹고 고단한지 이해합니다.
하지만 혹시 아시나요?
그 흔들림 자체가 당신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요.

인생은 생각보다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과연 ‘무덤 속 같은 평온’을 당신이 잘 견딜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무모한 결심’이라 할지라도 당신의 선택을 응원하겠습니다.
장담할 수 있는 미래란 없으니까요.

안진진 씨에게 쓴 편지는 어쩌면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고,

혹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나영규가 아닌 김장우에게 달려가는 안진진을 상상해 봤지만 역시나 인생은 모순덩어리다.

앞으로도 해답이란 없다.

비록 ‘무모한 결심’일지라도 당신이 선택한 모든 것을 응원할 준비가 되어있다.






내 모든 말을 의심하라,

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으니.


- 어슐러 K. 르 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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