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익의 <공감의 반경> (2)
6화에 이어서 진행되는 글입니다!
유튜브 쇼츠(Shorts), 자주 보시나요? 무한 스크롤링을 하며 순식간에 흘러버린 시간에 놀란 경험을 다들 해봤으리라 생각합니다. 주지하다시피 끝없는 스크롤링을 이끄는 메커니즘을 ‘알고리듬(Algorithm)’이라 부릅니다. 알고리듬의 작동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여러분이 과거에 오래 시청했거나 ’좋아요‘를 누른 영상을 고려하여 그와 비슷한 영상을 제공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여러분과 유사한 성향을 지닌 사람이 ’좋아요‘를 누른 영상을 추천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쇼츠에서 못 헤어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었네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상이 계속 제공되니 빠져나오기가 여간 쉽지 않았던 거죠. 이렇게 쇼츠에 허비하는 시간도 아깝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알고리듬의 치명성은 따로 있습니다.
문제는 이 추천 시스템들은 사실상 사용자의 과거 행동과 성향을 ‘넘어서는’ 추천은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기반한 추천이 아니라 과거에 ‘갇힌’ 추천인 셈이다. 선택하면 할수록 내 과거와 내 성향에만 맞는 추천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중략) 기존 SNS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끼리만 공감하는 구조를 만듦으로써 사용자의 기존 성향을 증폭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알고리듬은 과거 내가 ‘좋아요’를 누른 영상과 비슷한 영상을 추천합니다. 이에 따라 알고리듬에 갇혀서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질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댓글을 보니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이 참 많습니다. ‘역시 내가 맞아.’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알고리듬이 비슷한 성향의 사람에게는 유사한 영상을 추천하기 때문이죠. 이런 식으로 비슷한 인간은 부족을 이루고, 서로에게 동조합니다. 타인의 동조는 내 신념에 확신을 심어주고, 나와 다른 신념은 틀린 신념이 됩니다. ‘21세기형 부족 본능’의 발현입니다. 부족 간 싸움은 살벌하기 그지없습니다.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는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뚱뚱하다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인간은 ‘벌레’가 되고 있습니다. ‘벌레’에게 '역겨움'을 느끼고, 이를 서슴없이 표현합니다. 수렵·채집 시기에는 부족 본능은 죽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여전히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아가나요? 틀렸다고 판단한 그 '벌레들'과의 접촉이 생존에 문제가 되나요? 과거에는 부족 본능이 생존을 위한 전략이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유효할까요? 반성과 함께 수많은 생각이 스치는 하루입니다.
정서적 공감이 생물학적 특성이라면, 암울한 현실을 바꿀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다행히 우리 뇌는 다른 공감 능력도 탑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지적 공감'입니다. 사회진화론은 다른 영장류와 달리 인간이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비결은 사회 구성원 간 정교한 협력이라고 말합니다. 이 협력은 타인의 관점에서 타인의 의도를 추론하는 능력으로부터 나옵니다. 이 추론능력을 가진 구성원이 다수인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보다 생존 경쟁에서 유리했을 거란 예측을 쉽게 도출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유전자에는 정서적 공감 능력뿐만 아니라 인지적 공감 능력도 새겨져 있다는 겁니다. 다만 인지적 공감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치러야 하기에 쉽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나와 다른 입장을 추론하려면 타자 또는 외집단의 편견, 고정관념을 깨야 합니다. 인지적으로 다시 평가해야 하는 인지적 부담을 안게 되지요. 인지적 공감은 자연스럽지 않기에 귀찮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필자는 귀찮음을 감수하고라도 인지적 공감을 촉구합니다. 인지적 재평가를 실시함으로써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말이죠. 이를 뒷받침하는 한 실험이 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이스라엘 국민의 정치 성향 분포를 반영하여 선정한 39명의 유대계 이스라엘 대학생이었다. 실험군에게는 분노 유발 사진들을 보여준 후 인지적 재평가 훈련을 통해 냉정하게 사고할 것을 주문했다. 즉 마치 과학자인 것처럼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반응하게끔 요청했다. 반면에 대조군에게는 동일한 사진들을 보여준 후 자연스럽게 반응하도록 했다. (중략) 결과는 어땠을까? 인지적 재평가를 실시한 실험군은 성별, 종교적 신념,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대조군에 비해 팔레스타인인에 대해 분노를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다른 부정적 감정도 없었다. 또한 실험군은 대조군에 비해 회유책을 더 많이 지지하고 공격적인 정책을 덜 지지했다.
실험자는 피실험자에게 단지 '냉정하게 사고할 것을 주문'했을 뿐입니다. 그 결과는 어떤가요? 실험군은 대조군보다 외집단에게 '분노'를 덜 느꼈고, 외집단을 포용하는 '회유책'을 선택했습니다. 실험 결과는 우리에게 성급한 판단을 잠시 미루라고 요청합니다.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냉철하게 판단하라고 요구합니다. 이 요청에 응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즉각적이고 쉬운 감정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타인의 상황을 이성으로 이해하는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아무리 감정이 불꽃처럼 일어나도 차분히 사고하지 않으면 상대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법입니다. 이제 우리는 느낌의 공동체가 아니라 사고의 공동체로 향해야 합니다.
[참고 자료]
<공감의 반경>_장대익, 바다출판사
8화는 '네 번째 책갈피 :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으로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