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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책갈피 8화

로버트 치알디이의 <설득의 심리학 1> (1)

by 황쌤

배달 앱 자주 사용하시나요? 저는 자주 사용하는 편인데요. 주문 목록에는 단연코 ‘치킨’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늘 먹던 치킨 가게 말고 새로운 가게에 주문하고 싶어요. 주문 과정을 잠깐 볼까요? 배달 앱에 접속합니다. 치킨 목록을 눌러요. 다양한 치킨 가게가 등장합니다. 치킨 가게 이름 옆에는 ‘별점’이 매겨져 있습니다. 높은 별점을 받은 지점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지점도 있어요. 어느 지점에 주문할까요? 고민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죠? 자연스럽게 낮은 별점을 받은 가게는 배제하고, 별점 높은 지점에 주문할 겁니다. 여러분도 같은 과정을 거치리라 보는데요. 우리는 별점 등 타인의 판단에 쉽게 의존합니다. 이는 인간 본성에 내재한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성향입니다. 거부하기 쉽지 않죠. 마치 ‘누르면 작동하는’ 버튼과 같습니다. 오늘 소개할 ‘네 번째 책갈피,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1>’은 ‘누르면 작동하는’ 여러 가지 버튼을 알려 줍니다. 이 버튼들이 일상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이제 함께 살펴봅시다.


1. 상호성 원칙 : Give and take


상대방에게 호의를 받으면, 이에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런 의무감을 일으키는 버튼을 ‘상호성 원칙’이라 부르는데요. 쉽게 말해 ‘Give and take’입니다. 마트 시식 코너에서 공짜 샘플을 시식하고 매몰차게 돌아서기 어려웠지 않나요? 왜 어려웠을까요? 바로 상호성 원칙에 따라서, 우리에게 공짜 샘플에 대한 부채의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일상 곳곳에서 상호성 원칙은 강력하게 작용하고 거부하기도 어렵습니다. 로버트 치알디니는 부채의식이 거스르기 힘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인간 사회는 상호성 원칙을 통해 상당한 경쟁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고, 그 결과 사회구성원들은 상호성 원칙을 신뢰하고 따르도록 훈련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부터 상호성 원칙을 지키도록 교육받았으며, 이를 어길 경우 사회적 제재와 비난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받기만 하고 내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체로 혐오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파렴치하고 배은망덕한 인간, 무임승차자 등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항상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혼자서는 나약하기에 타인과의 관계성이 중요하죠. 이때 관계를 공고히 구축하기 위해서는 ‘Give and take’가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쌍방향으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함께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만약 어느 한쪽이 이 균형을 깨뜨리면, 손가락질을 받으며 ‘혐오의 대상’이 됩니다. 배척당하지 않으려면, 어릴 적부터 ‘은혜를 갚는 행위’를 ‘훈련’해야 합니다. ‘파렴치하고 배은망덕한 인간, 무임승차자 등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훈련과 노력은 상호성 원칙을 우리 본성에 각인시켰습니다.

상호성 원칙은 인간 간 관계를 끈끈히 만들어주며 인간 특유의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상호성 원칙의 약점은 원치 않은 호의에도 반응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원해서 요청한 것을 제공받았을 때에만 부채의식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중략) 갚을 의무가 상호성 원칙의 핵심이라면, 받을 의무는 상호성 원칙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받을 의무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빚을 지고 싶은 사람만 선택해 빚을 질 수 없다. 결국 호혜적 관계의 주도권은 남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 상황을 과격하게 단순화하면 이렇습니다. 나에게 바라는 바가 있는 사람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을 줍니다. 나는 얼떨결에 선물을 받습니다. 그 순간 내 머릿속 상호성 버튼이 눌러지고, 부채의식이 촉발됩니다. 그자는 원하는 바를 나에게 밝히고, 부채의식이라는 불쾌한 감정을 지우려 부탁을 받아들입니다. ‘결국 호혜적 관계의 주도권’이 ‘남의 손’에 넘어간 것이죠. 여러분이 “인간 사회를 너무 각박하게 바라보는 거 아니냐? 인간 특유의 협력 네트워크를 만든 동인이 상호성 원칙이라 하지 않았냐?”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도움받은 적 있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하나씩은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그 마음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안타깝게도 어디를 가나 교활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세상은 따뜻하지만은 않습니다.


2. 사회적 증거 원칙 : 야, 너도? 야, 나도!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 우리나라 국민의 방역 수칙 준수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내·외부 가릴 것 없이 마스크 착용은 철저히 지켜졌죠. 일본 국민도 우리나라 국민 못지않게 마스크 착용을 준수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조사가 있는데요. 한 번 볼까요?


2020년 코로나19가 유행하던 동안 연구자들은 일본 보건학자들의 요청을 받고 일본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는 이유에 대해 조사했다. 일본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유는 질병의 심각성, 마스크가 감염을 막아줄 가능성,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차단할 가능성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이유는 다른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전염병이 창궐할 때, 마스크는 감염을 막아주며, 전염을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자체로 마스크 착용에 동기 부여될 수 있지만, 조사결과는 다른 동기를 가르킵니다. 바로 ‘타인의 행동‘이지요. 일본 국민은 ’다른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에 ’압도적‘으로 영향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어땠을까요? 여러분은 거리를 걸을 때,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혼자 쓰지 않을 수 있었나요? 이 질문에 답해보면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습니다.

인간은 특정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때, 다른 사람의 행동을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경향이 ‘누르면 작동하는’ 두 번째 버튼, ‘사회적 증거 원칙’입니다. 마스크 착용과 마찬가지로, 거리에서 다수의 사람이 허공을 보고 있다면,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봅니다. 왜죠? 단지 다수의 사람이 허공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근거로 자신의 행동을 자동적으로 결정합니다. 치알디니는 사회적 증거 원칙이 강력한 원인을 다음처럼 설명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는 행동을 옳은 행동으로 보는 경향은 대체로 유익하게 작용한다. 사회적 증거에 부합하는 행동을 할수록 실수할 확률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다수가 하는 행동은 올바른 행동인 경우가 많다.


삶은 탄생과 죽음으로 이뤄져 있으며, 우리는 그 사이에서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모든 선택을 하나씩 고민하면서 결정을 내린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저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사회적 증거 원칙은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도록 유도하기에 이러한 부담을 줄여줍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다수가 하는 행동은 올바른 행동’일 확률이 높아서 ‘실수할 확률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다시 말해 사회적 증거 원칙은 판단에 지름길(타인의 행동)을 내어주어 우리에게 편의를 제공하죠. 다수의 타인과 같은 생각을 가진다는 안정감은 덤입니다. 이것이 사회적 증거 원칙이란 버튼이 강력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 버튼의 밝은 면만 보고 타인을 맹목적으로 믿기에는 위험부담이 존재합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반응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기 쉽다.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처럼 사회적 증거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모호한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상황 판단을 위해 서로의 행동을 관찰하다 보면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라는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맞닥뜨린 상황이 불확실하거나 모호하면,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봅니다. 내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저 사람도 나에게서 제 판단 근거를 찾습니다. 상황에 ‘무지’한 사람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죠. 당연히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고 우물쭈물 망설이게 됩니다. 이를 ‘다원적 무지’라 부르는데, 다음과 같은 참극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시카고 유명 관광지 근처에서 한 여대생이 대낮에 폭행 후 교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금요일 현대미술관 옆 관목숲에서 놀던 열두 살 소년이 숲에서 나체 상태로 버려져 있던 스물세 살 리 알렉시스 윌슨의 시체를 발견했다. 경찰은 윌슨이 미술관 남쪽 광장 분수대 옆에 있다가 공격을 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 후 범인은 그녀를 숲으로 끌고 들어가 성폭행한 후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 따르면 범행 현장 근처에는 왕래하는 사람이 수천 명에 달했고, 오후 2시경 한 남자가 비명을 듣기도 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없어서 자신도 주변을 살펴보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은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면,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의 반응에서 단서를 찾습니다. 다른 목격자의 대응 방식을 보면 응급 상황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가 있죠. 여기서 잊기 쉬운 점은 그 목격자도 사회적 증거를 찾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타인에게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주변을 곁눈질하며 은밀히 실마리를 찾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에는 아무런 일이 아니라는 듯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죠. 사회적 증거 원칙에 따라 응급 상황도 위급하지 않다고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사회적 증거 원칙은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지만, 맹목적인 신뢰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행동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며, 그들도 우리처럼 불완전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증거에 의존하되, 때로는 ‘이 행동이 정말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또다시 '윌슨 사건'과 같은 비극을 막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실수를 줄이려다 오히려 더 큰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사회적 증거를 참고하되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9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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