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1> (2)
8화에 이어서 진행되는 내용입니다!
혹시 '리미티드 에디션(limited edition)‘이라는 말을 들어봤나요? 우리말로 바꾸면, '수량을 제한하여 판매하는 상품'입니다. 같은 제품이라도 'limited edition'이라는 문구가 붙으면, 가격과 인기가 동시에 오릅니다. 다른 소비자와 구매를 경쟁하는 상황이라면 이 제품의 가치는 더 뜁니다. 이러한 소비 심리는 희소한 대상을 사용하는 데서가 아니라 소유하는 데서 느끼는 기쁨입니다. TV나 SNS 등에서 한정판 신발을 사서 전시용 유리통에 고히 넣어 집에 비치한 광경을 본 적 있죠? 입수하기 힘든 대상에게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 이것이 ‘누르면 작동하는’ 세 번째 버튼, ‘희소성 원칙’입니다.
수완 좋은 판매가는 소비자의 세 번째 버튼을 효과적으로 공략합니다. 공급량을 ‘일부러’ 제한(한정 판매 전략)하기도 하고, 판매 시간에 ‘일부러’ 기한(마감 시간 전략)을 두기도 합니다.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가치 있는 제품을 잃을 수 있다는 듯이 말이죠. 우리는 조급해집니다. '지금 안 사면 다른 사람이 먼저 사겠지', '곧 판매 마감인데!' 같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결국 구매합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고, 여전히 판매되는 그 상품을 목격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희귀한 대상에 열광할까요? 치알디니는 ‘심리적 반발 이론’을 해답으로 제시합니다.
선택의 기회가 줄어들면 우리의 자유가 축소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갖고 있는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의 특권을 보존하려는 욕망은 심리적 반발 이론의 중심이다. 심리적 반발 이론이란 심리학자 잭 브렘이 통제권 상실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설명하려고 개발한 이론인데, 이 이론에 따르면 자유로운 선택이 제한되거나 위협을 받으면 자유를 유지하려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자유(그리고 그와 결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더 갈구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제품이 희귀해지거나 다른 이유로 접근 가능성을 떨어지게 되면, 그런 제한에 대한 심리적 반발로 그 제품을 전보다 더 소유하고 싶어진다는 뜻이다.
인간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예민합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상실을 회피하려 하죠. 이를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고 하는데, 손실 회피 성향을 자극하는 전략이 ‘한정 판매’와 ‘마감 시간’입니다. 의도적으로 선택의 폭을 줄이고 선택 시간을 규정하는 순간,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이 제한되거나 위협’받았다고, 그리하여 자유를 뺏겼다고 느끼죠. 이에 반발하여 ‘자유(그리고 그와 결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더 갈구‘하고, ‘전보다 더 소유하고 싶어’집니다. 예를 들어, 모 인기 신발 브랜드의 한정판 스니커즈는 ‘이번 주말 단 1,000켤레만 판매’라는 문구를 내걸며 소비자의 선택에 한계를 둡니다. 소비자는 자유가 위협받았다고 느끼고, 반작용으로 제품을 갖고 싶다는 심리적 반발을 경험합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소비자는 불필요한 소비를 하거나, 웃돈을 지불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재화의 사용 가치와 소유 가치를 구별해야 합니다. 정말 나에게 쓰임새가 있는지를 반문해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임을 인정합니다. 판매자가 우리의 욕망을 의도적으로 조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일관성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중, 사람들은 누가 더 괜찮다고 평가할까요? 아마 대부분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전자를 고르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일관성이 없는 성격을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으로 여긴다. 신념과 행동, 말 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엉뚱하거나 표리부동한 사람, 심지어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반면에 수준 높은 일관성에서는 대개 뛰어난 인격과 지성이 연상된다. 일관성은 논리와 합리성, 견실함과 정직함의 핵심이다.
우리는 일관성이 없는 사람에게 ‘쟤는 말뿐이야.’, ‘참 위선적이네.’라고 말하며, 그 사람을 부정적으로 인식합니다. ‘신념과 행동, 말 등이 일치하지’ 않기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이죠. 반면, 매사 일관성 있는 사람에게는 ‘뛰어난 인격과 지성’을 겸비했다고 칭찬합니다. 즉 일관성은 사회적으로 ‘논리와 합리성, 견실함과 정직함’이라는 미덕과 연결됩니다. ‘언행일치’, ‘초지일관’을 긍정적으로 간주하는 우리의 인식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런 사회적 압력이 있기에 우리는 유년 시절부터 ‘일관성’을 교육받고, 일관성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합니다. 사회구성원으로부터 ‘엉뚱하거나 표리부동한 사람’으로 평가받아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지요. 인간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이것이 ‘누르면 작동하는’ 네 번째 버튼, ‘일관성 원칙’입니다.
‘일관성 원칙’을 기가 막히게 활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 중국 공산당이 미군 포로를 세뇌한 전략이 바로 그것인데요. 한번 읽어볼까요?
수용소에서 정치 백일장도 자주 실시했다. 상품은 담배 몇 개비, 과일 몇 개로 보잘것없었지만 수용소에서는 워낙 귀한 물건이라 포로들의 관심이 무척 높았다. 보통은 친중국적 태도를 확실하게 표현한 글이 수상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공산당 찬양문을 써야만 상을 받는다면 대부분의 포로들이 백일장에 참가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중국인민해방군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포로들의 마음속에 공산주의에 대한 호의적인 입장이라는 작은 씨앗을 뿌려 두면 씨앗이 점점 자라 꽃을 피우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대체로 미국을 지지하면서도 한두 번가량 중국의 시각에 찬성하는 글에 상을 줬다. 이 전략은 정확히 중국이 원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미군 포로들은 미국에 대한 호의적인 글로도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자발적으로 백일장에 참가했다. 그러나 수상 가능성을 높이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약간씩 공산주의에 유리한 내용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정치 백일장’에는 두 가지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 비밀은 ‘글’인데요. 미군 포로는 ‘공산주의에 대한 호의적인 입장’을 글로 남겼습니다. ‘글’은 내 생각의 증거가 됩니다. 내 생각을 문서화 하면 망각하거나 부인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내가 쓴 글이 내 앞에 놓이게 되면, 내 머릿속에서 ‘일관성 원칙’ 버튼이 작동합니다. ‘내가 직접 쓴’ 글은 바꾸기 어렵지만, 내 생각은 바꾸기 쉽습니다. 내 생각으로 바꿈으로써 스스로 떳떳해지는 걸 택하게 되는 거죠. 더군다나 이 글이 타인에게 공개되면 파장은 더욱 커집니다.
중국인민해방군은 미군 포로들이 작성한 친공산주의적 문서를 다른 포로들에게 끊임없이 공개했다. 수용소 주변에 게시하기도 했고, 토론회 등에서 작성자에게 직접 낭독하라고도 했으며, 심지어 수용소 라디오 방송에서 읽어주기도 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그 문서를 더 많이 공개할수록 더 유리했다. 왜 그랬을까? 다른 사람 앞에서 일단 어떤 입장을 취하면, 일관성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그 입장을 고수하려는 욕망이 생긴다. 일관성 있는 것이 사회에서 얼마나 바람직한 특징인지 앞서 설명한 바 있다. 일관성 없는 사람은 변덕스럽고, 불확실하고, 귀가 얇고, 경솔한 사람으로 매도되는 반면 일관성 있는 사람은 이성적이고, 확실하고, 신뢰할 만하고, 건전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신이 일관성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행위를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중국 공산당은 미군 포로가 쓴 글을 다양한 경로로 ‘끊임없이’ 공개했습니다. 글이 타인에게 공개되는 순간, 사람들은 글을 글쓴이의 입장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제 자신이 스스로 떳떳해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타인에게도 당당해져야 합니다. 따라서 ‘일관성 원칙’ 버튼은 ‘일관성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그 입장을 고수하려는 욕망’을 만듭니다. 이 욕망은 입장을 글에 동일시하도록 하죠.
다음으로 두 번째 비밀은 수상 상품에 있습니다. ‘중국인민해방군’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미군 포로가 정치 백일장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공산주의에 대한 호의적인’ 진술을 해주기를 원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담배 몇 개비, 과일 몇 개’보다 더 매력적인 보상을 내거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요? 왜 보잘것없는 상품을 보상으로 제시한 걸까요?
참가자들이 자신의 선택을 ‘온전히’ 책임지기를 바란 것이다. 어떤 핑계나 변명도 허용되지 않는다. (···) 작문에 반미적인 내용을 덧붙인 미군 포로도 그것이 대단한 상품을 받기 위한 위장술이었다고 둘러댈 수 없어야 한다. (···) 억지로 상대의 입장 정립과 헌신을 짜낸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내적 책임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 사회과학자들은 “우리는 강력한 외부 압력 없이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행동에 대해서만 내적 책임을 느낀다.”라고 주장한다. 큰 보상 역시 그런 외부 압력 중 하나다. 큰 보상에 따라 특정한 행동을 할 수는 있지만 그 행동에 대해 내적 책임을 느끼지는 못한다.
미군 포로는 백일장에서 ‘반미적인 내용’을 쓰면서 죄책감이 들었을 겁니다. 죄책감을 씻으려 제 행동을 합리화할 구실을 찾겠죠.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상품이었을 테지만, ‘담배 몇 개비, 과일 몇 개’는 ‘핑계나 변명’으로 대기에는 궁색합니다. 그러니 본인 의지로, 곧 스스로 선택한 것이 되지요. 스스로 선택한 거니 내적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내적 책임’은 일관성을 어기지 못하도록 매섭게 몰아붙이고, 원하는 바를 이룹니다.
요컨대 미군 포로는 무심코 쓴 자신의 글로 인해서, 내면의 목소리(‘나는 일관성 있는 사람이어야 해!’), 타인의 시선(‘저 사람은 일관성이 있는 훌륭한 사람인가 봐’)과 싸우게 됐습니다. 결국, 이 싸움에서 투항하여 친공산주의적 입장을 제 생각으로 받아들이게 되죠. 한국전쟁 직후 송환 포로 심사를 담당했던 신경심리평가단 단장 헨리 시걸(Henry Segal) 박사는 다음처럼 보고했습니다.
“많은 포로들이 중국 공산당에 반감을 표시했지만, 동시에 중국 공산당이 ‘중국에서 이룩한 성과’에 대해서는 찬양했다. 일부는 ‘공산주의는 미국에서는 효과가 없지만 아시아에서는 괜찮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Segal, 1954, p. 360).”
중국인민해방군의 진짜 목적은 최소한 당분간만이라도 포로들의 감성과 지성을 바꿔놓는 것이었다. 그들의 성과를 ‘변절과 배신, 태도와 신념의 변화, 규율, 사기, 활력의 저하,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의심’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하자면, 시걸은 “그들의 시도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중국 공산당은 미군 포로들의 내적 책임과 사회적 압력을 교묘히 활용해 그들의 신념과 태도를 바꾸는 데 성공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일관성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며, 타인의 시선과 내적 정체성 모두를 유지하려는 심리적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관성 원칙은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강력한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작용합니다.
<설득의 심리학>은 제가 소개한 ‘누르면, 작동하는’ 버튼 외에도 다양한 버튼을 싣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설득의 달인’이 이 버튼을 악용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이를 방어할 전략을 알려준다는 데 이 책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고사성어가 나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의 싸움에서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죠. 우리는 자신이 어떤 버튼에 반응하는지 인식하고, 상대가 이를 이용하려 할 때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설득의 힘은 올바르게 사용될 때 가치가 있습니다. 내 선택이 나의 것이 되도록, 그리고 누군가의 조작에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설득의 심리학 1>_로버트 치알디니, 21세기북스
10화는 '다섯 번째 책갈피 :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으로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