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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책갈피 10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by 황쌤

들어가며 : 우리는 사랑에 목마른 존재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노래에서도 ‘사랑 이야기’는 빠지지 않습니다.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 이유는 우리가 사랑을 본능적으로 갈구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소개할 다섯 번째 책갈피,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우리가 사랑을 갈망하는 이유를 ‘고독’에서 찾습니다.


인간에게는 이성이 부여되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아는 생명’이다. (중략) 분리되어 있는 실재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자신의 생명이 덧없이 짧으며, 원하지 않았는데도 태어났고 원하지 않아도 죽게 되며,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보다 먼저 또는 그들이 자신보다 먼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의 인식, 자신의 고독과 분리에 대한 인식, 자연 및 사회의 힘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인식, 이러한 모든 인식은 분리되어 흩어져 있는 인간의 실존을 견딜 수 없는 감옥으로 만든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 이성 덕분에, 인간은 삶의 불확실성과 필연적인 고독을 자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탄생했습니다. 반드시 맞이할 죽음이 언제인지도 모릅니다. 탄생과 죽음 사이,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지만,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우리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자연과 사회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에 홀로 있다고 ‘이성’으로 인식할 때, ‘고독(불안)’을 느낍니다. ‘이성’을 마음대로 포기할 수도, 불확실한 상황을 바꿀 수도 없으므로 인간이 느끼는 고독은 ‘근원적 고독’이며, ‘견딜 수 없는 감옥’이지요. 인간은 고독감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거나, 극단적으로는 마약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술과 마약은 일시적 방편일 뿐, 그 효과가 끝나면 더욱 큰 공허함과 불안함이 뒤따릅니다. 삶을 망가뜨리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가 이 ‘근원적 고독’에서 벗어날 올바른 방법이 무엇일까요? 프롬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프롬이 ‘사랑’을 설명하기 전, 현대인이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부터 조명합니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중략) 두 번째 전제는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또는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중략) 세 번째 오류는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 지속적 상태, 혹은 좀 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사랑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혼동하는 것이다.


프롬에 따르면, 우리에게 사랑은 주는 것이 아닌 받는 것입니다. 즉 ‘어떻게 더 사랑해 줄 수 있는가?’보다는 ‘어떻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가?’에 초점을 둡니다. 우리에게 사랑은 쉬운 일입니다. 아직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 대상만 찾는다면, 사랑은 식은 죽 먹기죠. 무엇보다 우리에게 사랑은 폭발적 감정입니다. 처음 누군가와 사귀게 됐을 때 경험하는 설렘입니다. 프롬은 이러한 사랑에 대해 단호히 말합니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현대인의 사랑은 시간 앞에서 무력합니다. 하루하루 지나감에 따라, 상대가 내게 매력으로 느꼈던 장점은 시들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시들해진 상대 반응을 '사랑이 식은 건가?'라며 의심하곤 하죠. 마찬가지로 내가 상대에게 끌렸던 상대의 조건도 무색해집니다. 혹여나 상대가 그 조건을 잃게 되면, 관계는 망가지고 맙니다. 더 이상 사랑할 이유(=조건, 매력)가 없기 때문이죠. 시간 앞에서 무력한 것이 어디 매력과 조건뿐인가요? 설렘도 시간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상대를 이전보다 더 알아갈수록 설렘은 빠르게 사그라듭니다. 오히려 내 예상과는 다른 상대 모습에 실망이 커지죠. 설렘을 사랑으로 착각한다면, '난 더 이상 그/그녀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단언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으러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각을 바꾸지 않는 한, 새로운 사랑이라도 같은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숙한 사랑 : 의지적 결단과 실천


프롬은 조건적이며 감정에 집착하는 사랑을 미성숙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숙한 사랑은 '인간을 향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시작한다고 주장하지요. 만약 서로가 서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상대의 개성을 존중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있는 그대로 보려 합니다. 상대의 단점까지 이해하고 포용하려 합니다. 상대의 성장에 관심과 책임감을 느끼고, 상대가 성장하도록 노력합니다. 반면에 서로가 서로를 주관적으로 바라본다면, 내 기대, 욕망, 편견에 따라 상대를 판단합니다. 상대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려 하거나,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실망하는 일이 반복되지요. 결국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정한 사랑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성경은 사랑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4.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히 행동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쉽게 성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며, 모든 것을 견뎌 냅니다._[고전13:4-7, 쉬운 성경]


성숙한 사랑은 설렘과 같은 저절로 일어나는 감정이 아닙니다. 한 인간을 보호하고, 그 사람의 성장을 책임진다는 의지적 결단이자 실천입니다. 아무나 도달하기 쉬운 수준이 아니지요. 그래서 프롬은 사랑은 평생을 걸쳐 관심을 가지고 훈련해야 하는 능력이며, '기술'이라고 역설하는 것이죠.


사랑은 본질적으로 의지의 행위, 곧 나의 생명을 다른 한 사람의 생명에 완전히 위임하는 결단의 행위여야 한다. (중략)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만일 사랑이 감정일 뿐이라면, 영원히 서로 사랑할 것을 약속할 근거는 없을 것이다. 감정은 생겼다가 사라져버릴 수 있다. 내 행위 속에 판단과 결단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내가 이 사랑이 영원하리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나가며 : 나부터 사랑하자.


타인을 사랑하려면, ‘자기애’, 곧 나부터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자기애’와 ‘자아도취’를 헷갈려서는 안 됩니다. 자아도취는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으로, 자기애가 왜곡된 형태입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타인을 도구로 취급하거나 무시하죠. 그러나 자기애는 내 자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내 속에 있는 비루함을 수용하는 건강함입니다.

만일 나의 이웃을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것이 덕이라면, 나 역시 인간이므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어야 한다. 나 자신이 포함되지 않은 인간 개념은 있을 수 없다.

인간으로서 나의 나약함을 인정해야 타인의 나약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조차 나를 공감하지 못하는데, 타인의 삶을 어떻게 공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이웃 사랑과 자기애는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의미지요.

프롬이 강조한 사랑의 기술은 결국 ‘자기애’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남을 배려하고 헌신하는 행위를 덕목이라 믿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에는 소홀합니다. 사랑은 베푸는 것이지만, 비어 있는 마음에서 나눌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연습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나의 감정을 존중하고, 나를 소중히 대하는 노력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건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나 자신을 돌보는 데서 출발합니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타인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먼저, 나 자신부터 사랑합시다.


[참고 자료]

<사랑의 기술>_에리히 프롬, 문예출판사


11화는 '여섯 번째 책갈피 :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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