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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책갈피 6화

장대익의 <공감의 반경> (1)

by 황쌤

들어가며 : 혐오의 시대


혐오’의 사전적 정의가 무엇일까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싫어하고 미워함.’이라 실려 있습니다. 우리는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뉴스나 기사로 접하는 정계 현실을 예로 들 수 있죠. 좌우 진영은 다른 진영을 깎아내리는 데 혈안입니다. 서로를 진심으로 ‘극혐(극도로 혐오함)’합니다. 우리 일상도 예외가 아닙니다.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젊다는 또는 늙었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충’이라 부르며 ‘극혐’합니다. 저도 혐오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나와 다른 타인의 행동과 생각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할까?’라는 불편함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우리는 왜 서로를 이토록 싫어하고 미워할까요? 이 질문에 참신한 답변을 내놓은 책이 있는데요. 바로 세 번째 책갈피 ‘장대익의 <공감의 반경>’입니다. 장대익은 서문에 이렇게 못 박습니다.


오늘날 가속화하는 혐오와 분열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 부족해서라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감은 만능 열쇠가 아니다. 오히려 공감을 깊이 하면 위기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우리의 편 가르기는 내집단에 대한 과잉 공감에서 온다.


혐오는 무공감이 아니라 과잉 공감에서 온다고 천명합니다. 그리고 과잉 공감의 방향은 ‘내집단’이라 지적합니다. ‘우리 편’에게만 공감하고, ‘다른 편’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죠. 여기서 ‘그렇지 않다’라는 문장은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다른 식구에게 ‘무관심’하다는 게 아닙니다. 무관심을 넘어 싫어한다는 거죠. 어째서 내 식구 챙기기가 남의 식구를 ‘극혐’하는 것으로 이어지는지, 이제부터 살펴봅시다.

공감의 종류 : T도 공감할 줄 안다!

필자는 공감과 관련된 통념을 바로 잡고 시작합니다. 사람들에게 ‘공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감정이입’ 정도로 답합니다. 즉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상태로 보통 생각하고 있죠. 이러한 공감은 ‘정서적 공감’입니다. 익숙하고 쉽고 자동적인 ‘느낌’이지요. 그러나 공감에는 ‘정서적 공감’뿐만 아니라 ‘인지적 공감’도 존재합니다. ‘인지적 공감’은 ‘역지사지’입니다. 타인의 관점(입장, 생각)을 이해하고 추론하는 능력이죠. ‘사고’의 영역이라 자동적이지 않아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쉽게 말하면, ‘정서적 공감’은 MBTI의 F, ‘인지적 공감’은 ‘T’에 해당해요. ‘T’는 먼저 ‘이해’한 뒤 공감하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타인의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편이라 공감하지 못한다고 오해를 받습니다. 이제는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겠네요. ‘T’는 공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F’에 비해 공감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으로요.

필자가 지적한 과잉 공감은 정서적 공감에 해당합니다. 정서적 공감을 좀 더 깊게 파헤치려면, 두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타인의 행동을 보게 되면 그 행동이 어떤 방식인지, 어떤 목표를 가지는지, 어떤 의도인지를 자동적으로 판단합니다. 타인의 마음을 ‘미러링(mirroring)’하는 것이죠. 이 ‘미러링’을 하는 뇌 신경을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라 하는데, 이 뇌 신경이 정서적 공감의 핵심 기제입니다. 예컨대 드라마나 영화 속 슬픈 장면에 눈물을 흘릴 때, 타인의 고통에 안타까움을 느낄 때 거울 뉴런이 작동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감정이 내 마음으로 전염되는 거예요. 문제는 ‘거울 뉴런’이 일으키는 공감의 반경입니다.

가족과 친지의 고통에 대해서는 자동으로 공감하지만 그 이상의 범위에서는 자동적으로 감정이입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감정의 전염에 의한 공감의 힘은 강력하긴 하지만 힘이 미치는 반경이 충분히 넓지 못하다.


필자는 정서적 공감은 내집단으로만 향하고, 동시에 외집단을 혐오하게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내집단을 향한 공감이 깊어질수록, 외집단에 대한 혐오도 커집니다. 이 설명에는 ‘왜?’라는 빈칸이 남습니다. 이 빈칸을 채우기 위해서 인간의 본능을 하나 알아보죠.

부족 본능 : 우리가 남이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 가르기’를 좋아합니다. 이 본능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습니다. 한 번 볼까요?

피험자들에게 동전 던지기를 하라고 하고 그 결과 앞면이 나오면 X집단으로 뒷면이 나오면 W집단으로 편을 나눠보자. 이런 경우에도 내집단에 대한 편애가 생겨날까? 결과는 놀라웠다. 사람들은 동전 던지기라는 정말 우연한 방식으로 한 집단이 된 구성원들에 대해서도 마치 친구나 친척을 대하는 듯이 행동했고 외집단의 구성원들보다 더 좋아했으며 성격과 업무 능력도 더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같은 집단에 속하게 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경제적 보상을 줘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실험에서 놀라운 점은 피험자들이 편을 가른 기준입니다. 서로의 특성이 아닌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었습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우연한 기준이라 할지라도 집단이 나누어지면 내집단 선호가 발동한 겁니다. 그러니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마주했을 때 반가움을 느끼는 건 이상한 게 아닙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 같은 피(혈연), 같은 학교(학연), 같은 지역(지연) 사람이라면,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치는 게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이처럼 ‘편 가르기’는 인간 유전자에 새겨진 ‘부족 본능(tribal instinct)’입니다. 이 본능의 뿌리는 깊습니다. 인류사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렵·채집기 동안, 미더운 자와 믿지 못할 자들을 나누고, 내가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을 구별하는 일은 우리 조상을 매일 옥죄는 생존 문제였습니다. 신원불명의 타인은 나를 헤칠 위험을 내포합니다. 이에 비해 나와 같이 지내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그래서 불확실성을 지닌 이방인은 배척할 수밖에 없어요. 또한 야생 그 자체였던 당시 환경 속에서 개체로서의 인간은 나약합니다. 모여야지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죠. 그렇게 ‘내 사람’이 모인 ‘부족’이 형성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잘 모이고 잘 배척한 유전자는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그렇지 못한 유전자는 생존 경쟁에서 밀리게 됐습니다. 현재 우리가 외집단에게 느끼는 혐오감은 이렇게 역사가 유구한 것입니다.

부족 본능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연구가 있는데요. 뇌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옥시토신(Oxytocin)’과 관련된 연구입니다.


이른바 ‘사랑 호르몬’ 또는 ‘공감 호르몬’으로도 불리는 옥시토신에 대한 연구는 이 호르몬이 연인과 부모, 자식의 결속을 강하게 하고 나아가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중략) 최근 연구들은 이 신뢰 호르몬에 또 다른 얼굴이 있음을 밝혀냈다. 그것은 옥시토신이 내집단에 대한 선호도를 증진하지만 외집단에 대한 폄훼 또한 증진한다는 사실이다.


‘옥시토신’은 사랑하는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와 마주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입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갓난아기를 보는 부모님의 시선도 이 호르몬의 영향입니다. 과연 ‘사랑 호르몬’입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 옥시토신의 어두운 이면을 발견했습니다. 옥시토신은 사랑을 ‘내집단’에게만 허락합니다. ‘외집단’은 그 사랑을 못 받을뿐더러 미움까지 받습니다. 편협한 사랑인 셈이지요. 이제 우리가 왜 그토록 ‘편 가르기’를 좋아하는지 알게 됐나요? 우리는 강한 부족 본능 DNA를 가지며, 이를 도와주는 호르몬까지 장착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나와 비슷한 사람을 선호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꺼려하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부족 본능을 더욱 부추기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알고리듬’입니다.


7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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