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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책갈피 4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 (1)

by 황쌤

들어가며 : 당신의 집중력은 안녕하신가요?


등굣길 안전 지도를 하면,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등교하는 학생들의 광경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조례 전 교실의 풍경도 다를 바 없는데요. 하나 차이가 있다면 착석하여 스마트폰에 열중한다는 점입니다.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모바일 게임, SNS, 유튜브 등 다양합니다. 이렇게 집중력이 좋은데, 수업 시간만 되면 왜 이렇게 산만한지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듭니다. 여러분은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나요? 정말로 한 주제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나요? 오히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주제를 바꿔 가며, 뇌 속에서 수많은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지 않나요?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조사를 통해 우리 집중력의 현주소를 밝혀냈습니다.


우리의 집중력 지속 기간은 정말 줄어들고 있을까? (중략) 가장 명백한 출처는 트위터였다. 트위터는 2006년에 서비스를 시작했고 수네는 이 작업을 2014년에 시작했기 때문에 8년간의 자료를 이용할 수 있었다. (중략) 사람들은 트위터에서 한 주제를 얼마나 오래 이야기할까? (중략) 연구팀은 2013년에는 가장 많이 논의된 상위 50개 주제에 한 주제가 17.5시간 동안 머물렀으나 2016년에는 그 시간이 11.9시간으로 줄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곧 우리가 트위터에서 어느 하나에 점점 더 짧게 집중한다는 뜻이었다. (중략) 하지만 트위터만의 별난 특징일 수도 있잖아. 그래서 이들은 전 영역의 자료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중략) 이 모든 자료가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개별 주제에 점점 덜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요한 하리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는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집중력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떨어질 것이고요. 충격적인가요? 저는 이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현대인의 집중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요한 하리뿐만 아니라, 신문 기사나 뉴스 보도에서 자주 들을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문제의식을 촉구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두 번째 책갈피 <몰입의 즐거움>의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입니다. 긍정심리학의 대가로도 불리는 미하이의 이 책으로 ‘몰입’이 무엇인지, 그리고 ‘몰입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배워봅시다.


인간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다.


몰입(flow)’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무언가에 골몰하다 끝내고 시계를 쳐다봤을 때, 시간이 너무 흘러버린 경험을 해본 적 있죠? 바로 이런 상태를 ‘몰입 상태’라 하며, 미하이는 이 상태가 삶의 질을 높인다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더 자세하게 몰입을 알아보기 전에 미하이가 지적한 ‘집중력의 한계’를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어요. 이때 한계는 ‘모자람’ 또는 ‘부족함’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음’이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모두 일정한 한계 안에서만 행동하고 느낄 수 있다. 이 한계선을 무시하는 사람은 결국 좌초하고 만다. (중략) 사람의 신경계는 한순간에 아주 적은 양의 정보만을 처리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외부 사건을 하나씩 순차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중략)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접할 때 쏟아부을 수 있는 에너지의 포화점, 곧 주의 집중의 절대적 상한선 안에서만 우리의 인생은 전개된다.”

여러분은 집중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나요? 물론 개인차가 존재하겠지만, 인간이라면 무한정 집중할 수 없습니다. 일상만 되돌아봐도 이 사실은 분명해집니다. 미하이도 이 점을 짚으면서 그 원인으로 ‘사람의 신경계’를 지목합니다. 생물학적으로 우리 뇌는 ‘한순간에 아주 적은 양의 정보만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일정한 한계’가 되겠지요. 기계처럼 하루 종일 공부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요. 우리는 인간이니까요. 이처럼 우리의 주의력은 ‘절대적 상한선’이 있고 마구 쓸 수 없는 겁니다. 여기에서 미하이가 질문을 던집니다. ‘정해져 있는 주의력을 하나에 몰입하여 쓸 것인가? 여기저기에 분산할 것인가?


경험의 질을 높이는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가 직접 조사한 다음 표는 미국에서 성인과 10대를 대상으로 일과를 연구 조사한 결과입니다. ‘- 부정적/-- 아주 부정적/O 평균 또는 중간/+ 긍정적/ ++ 아주 긍정적’으로 분류했습니다.

먼저 선생님이 항상 강조하는 ‘공부’를 보면, ‘공부’는 사람에게 ‘행복감’을 주지 못합니다. 반면 ‘TV 시청’은 ‘행복감’을 선사합니다. 당연히 공부는 힘들고 재미없으나, 예능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웃음을 주지요. 그러나 ‘집중력, 몰입’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정반대 상황이 도출됩니다. ‘공부’는 높은 집중력과 몰입을 경험케 합니다. ‘TV 시청’은 그렇지 못하고요. 따라서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몰입’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몰입’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하이는 왜 ‘몰입’을 강조할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높은 집중력과 몰입 상태가 경험의 질을 높인다는 것입니다.

집중하지 못하면 의식은 혼돈에 빠진다. 마음은 평상시에는 정보의 무질서 상태에 놓여 있다. 생각은 논리적 인과 관계에 따라서 가지런히 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두서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얽혀 있다. 집중하는 요령을 터득하지 못하면, 다시 말해서 노력을 한곳으로 모으지 못하면 사고는 아무런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지리멸렬해진다.


사고가 한곳으로 모이지 않으면, 마음은 ‘혼돈’에 빠집니다. 감정의 ‘무질서 상태’에서 시간이 그저 흐르게 되는 거죠. 이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는 아무런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지리멸렬’해지기 마련입니다. 이와 달리 우리의 주의력을 한곳에 초점을 맞추고 몰두하면, 마음에는 질서가 잡힙니다. 생각이 여기저기로 방황하지 않기에 하나의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시간에 밀도가 생기는 것이지요.

이렇게 가정해 볼까요? 여기에 같은 반 친구인 A와 B가 있습니다. A는 수업 시간에 ‘점심 급식 메뉴가 뭘까?’, ‘다음 교시는 국어 수업이구나.’, ‘집에 가고 싶다.’ 등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보냅니다. 한편 B는 같은 수업 시간을 보내면서, 수업 내용에만 주의력을 투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학생이 양질의 시간을 경험했다고 생각하나요? 판단은 자유에 맡기겠습니다.

다음으로, 몰입을 강조한 두 번째 이유는 몰입이 주는 행복함은 활동 중이 아니라 활동 후에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일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비로소 지난 일을 돌아볼 만한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이 한 체험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는가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되돌아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물론 몰입하지 않고도 행복을 맛볼 수는 있다. 고단한 몸을 눕혔을 때의 편안함과 따사로운 햇살은 행복을 불러일으킨다. 모두 소중한 감정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런 유형의 행복감은 형편이 안 좋아지면 눈 녹듯 사라지기에 외부 상황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몰입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이어서 우리의 의식을 그만큼 고양시키고 성숙시킨다.


수업에 몰입하면 내 마음을 살필 겨를이 없습니다. 따라서 수업 중에는 행복한 감정을 느끼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한숨 돌릴 여유가 있는 쉬는 시간에 보람과 성취감이 찾아옵니다. 이 보람은 내가 가진 ‘힘으로’ 스스로 ‘만든 것이어서’ 우리 의식을 그만큼 성장시키고 성숙시킵니다. ‘고진감래’와 다름이 없는 이 보람이 바로 칙센트미하이가 강조하는 ‘몰입의 즐거움’입니다. 물론 미하이도 ‘고단한 몸을 눕혔을 때’ 느끼는 안락함도 행복이라고 인정합니다. 다만 ‘이런 유형의 행복감은 우리의 형편’에 의존하기에 형편이 악화되면, 그 행복감은 눈 녹듯 사라지리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만들어 낸 행복이 아니기에 쉽게 잃을 수 있다는 말이죠.

여러분, 이 견해를 ‘보람을 위해 24시간 몰입 상태를 유지해라.’라고 극단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인간이 가진 주의력은 한계선이 있어서 불가능할뿐더러, 미하이가 극단적으로 몰입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 책이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바는 ‘몰입’ 그 자체가 아니라 몰입이 주는 ‘즐거움’이라 생각합니다. ‘편안함만 추구하지 말고, 스스로 이뤄낸 결과를 보고 뿌듯해 보자.’, ‘TV만 보지 말고, 의미 있는 일에 시간을 쓰고 삶의 질을 높여보자.’ 미하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요?

이제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정해져 있는 주의력을 하나에 몰입하여 쓸 것인가? 여기저기에 분산할 것인가?’ 제가 여러분께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 답을 여러분도 아시리라 믿고요.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5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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