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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책갈피 15화

조병영의 <기울어진 문해력> (1)

by 황쌤

들어가며 : 멀어지는 책


책을 좋아하시나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가운데 약 6명이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습니다. 종합 독서율은 2013년부터 꾸준히 감소하다가, 2023년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꽤 많은 사람이 책을 멀리하고 있으며, 그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문해력’ 저하라는 사회적 문제로 이어집니다. 현장 체험 학습에서 ‘중식’을 제공한다는 가정통신문을 읽고, 우리 아이는 중식을 선호하지 않으니 한식으로 제공해달라는 어느 학부모 이야기. ‘사흘’은 3일이 아닌 4일이라는 어느 학생 이야기. 다양한 매체에서 문해력 저하와 관련하여 우스꽝스럽게 전하는 사례들이지요. 이렇게 여기저기서 문해력을 조명하니 나름 심각한 문제 같은데, 정작 ‘문해력’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정확히 말하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이번 화에서 소개할 ‘일곱 번째 책갈피 : <기울어진 문해력>’은 문해력은 무엇이고, 문해력 저하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를 안내합니다. 더 나아가 문해력을 키울 방법까지요. 지금부터 살펴봅시다!


그래서 ‘문해력’이 도대체 먼데?

온라인 국어사전에서 ‘문해력’을 찾아보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나온다. 혼자서 하는 글 읽기, 머리로 하는 내용 이해에 중점을 둔 정의다. 그런데 문해력의 원래 말인 ‘리터러시(literacy)’를 보면 사전적 정의에 담기지 않은 뜻이 보인다. 리터러시는 읽기(reading)와 쓰기(writing), 읽는 것뿐 아니라 쓰는 행위도 아우른다. 읽기와 쓰기를 별개의 것으로 보아도 되지만 이 둘이 서로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문해력을 읽고 쓰는 능력으로 이해하면 좋다.


우리는 보통 문해력을 ‘국어사전’의 정의 정도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문해력의 의미는 더욱 넓습니다. 문해력은 ‘읽기와 쓰기, 읽는 것뿐 아니라 쓰는 행위’도 아우릅니다. 다시 말해, 글을 이해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해를 글로 표현하는 능력까지 포함합니다. 글은 글쓴이의 지식, 가치관, 감정이 담겨 있으므로, 글쓴이가 경험한 ‘세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문해력으로 네 세계(네 글)를 이해하고, 내 세계(내 글)를 구축하고, 독자에게 표현합니다. 문해력이 부족하다면, 네 세계를 편협하게 수용하고, 내 세계도 왜곡해서 형성합니다. 즉 낮은 문해력은 ‘누군가와 대화하는 능력, 사회적 소통력’이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문해력 부족 문제는 어휘력 부족 그 이상으로 심각한 일입니다. 쓰기는 읽기를 전제합니다. 따라서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 우리는 먼저 ‘제대로 읽는 법’을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읽기의 풍경


글을 읽을 때, 우리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저자는 인간은 글 읽는 중에 자동적 사고와 의식적 사고를 한다고 설명합니다. 자동적 사고는 노력 없이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의식적 사고는 노력을 들여 의도적으로 천천히 생각하는 것입니다. 독서할 때를 떠올려 볼까요? 우리에게 익숙하고 쉬운 내용은 막힘없이 읽어 내려갑니다. 반면 낯설고 어려운 내용은 느리게 읽거나 다시 읽어봅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든 책 내용을 하나의 사고로만 읽지 않고, 자동적 사고에서 의식적 사고로, 의식적 사고에서 자동적 사고로 이동하며 읽습니다.


좋은 읽기는 자동적 사고와 의식적 사고가 조화롭게 작동하는 과정이다. (중략) 이렇게 자동적 읽기와 의식적 읽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상적인 과정을 ‘읽기의 풍경 모형(the landscape model of reading)’이라고 부른다.


좋은 읽기는 자동적 사고와 의식적 사고가 조화롭게 작동’하는 상태이고, 이를 ‘읽기의 풍경 모형’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빨리 읽기, 곧 자동적 사고에 기울어져 있는 감이 있습니다. 읽기를 가장 먼저 배우는 교육 현장을 살펴볼까요? 대한민국 교육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입시 결과를 결정하기 때문이지요. 수능 시험 국어 영역에서는 많은 지문을 짧은 시간 안에 읽고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 짧은 시간 내에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깊이를 지닌 지문인데도 말이죠. 교사 입장에서도 입시를 외면할 수 없기에 ‘시간 내에 빠르게 사고하고 답을 고르는 방법’을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교육받았고, 현재 학생들도 그렇게 교육받고 있습니다. 그런 교육 탓에, 우리는 깊이 생각하는 일을 비효율로 치부하며, 사고에 노력과 자원을 투자하는 걸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스마트폰 속 영상도 배속 재생과 건너뛰기로 빠르게 시청하지요. 빨리 읽기가 뭐 그렇게 나쁜 일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습니다. 이 반문을 향한 저자의 설명을 들어 볼까요?

믿지 않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믿지 않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 우리는 기울어질 수 있다. 나의 기울어짐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것이 나의 보기와 읽기를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한 채, 보이는 것만 보면서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는 현상이 바로 확증편향이다. (중략) 확증편향은 대강 보이는 것만 읽는 자동적 읽기를 강화한다.


빨리 읽는다는 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내용만 처리함을 의미합니다. ‘믿지 않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은 대충 읽는다는 말이죠. 이 사고 속에서 접하는 내용이 늘 같기에 우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갇혀버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를 ‘확증편향’이라 부릅니다. 더 무서운 사실은, 우리가 우리의 ‘기울어짐(확증편향)’을 깨닫지 못하고, ‘기울어짐’을 초래한 자동적 사고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단편만 봐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죠. 현재 우리는 짧은 생각으로 보고 싶고, 믿고 싶은 모습만이 세상의 전부라며, 오만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16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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