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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둥이 Apr 26. 2024

동네 낯가림 중

오늘도 혼자 먹을 아침 겸 점심 밥상을 차린다. 아침이라 하면 늦고 점심이라 하면 이르지만, 나는 이 어중간한 시간이 참 좋다. 한술 떠올림과 동시에 기쁨을 느낀다. 밥을 먹으면서 책을 봐도 좋고 인터넷 뉴스거리, 잡담거리를 읽는 것도 좋다.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이 참 감사하다.



사실 이사를 하면 동네 맛집을 찾아다니며 도장 깨기를 하고 있을 줄 알았다. 핸드드립 카페를 돌아다니며 단골집을 만드는 생각만으로도 설레었다. 그런데 현실은 집밥과 스타벅스다.


혼밥이라는 말 자체가 어색했을 그 시절에도 나는 패밀리 레스토랑 혼밥을 즐기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혼자 식당에 들어가는 행동이 참 어색하게 느껴진다. 왠지 여기서는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내 입맛에 맞춰 소박하게 차린 집밥이 편하다.


카페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주인 혹은 알바생과 가끔 눈이 마주칠 수 있는 작은 동네 카페가 불편하다. 무료 쿠폰을 사용하러 간 집 근처 스타벅스가 이렇게 편할 줄 몰랐다. 현관에 서서 사이렌 오더를 넣고 걸으면 도착할 즈음에 딱 맞춰서 커피가 나온다. 2층으로 올라가면 내 집에 온 듯 편하다. 


혹시 내가 이 동네에 낯가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어색해서 한 발짝 걸어 나가지 못하는 상태는 아닐까. 살짝 문 열고 나오면 시원할 텐데, 혼자 꽁꽁 걸어 잠그고 있는 꼴이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신랑은 나이 먹고 소심해졌단다. 예전보다 편하게 혼밥 할 수 있는 식당이 많음에도 문전 박대 당할까 봐, 카페에 앉아 책이라도 읽고 있으면 눈치 줄까 봐 무서운 거 아니냐고. 


둘 다 맞는 말이다. 괜히 소심해져서 낯을 가린 것 같다. 여기나 저기나 사람 사는 곳인데 뭐가 그렇게 달라졌다고 느낀 건지 모르겠다.


내가 마음을 열어야 누군가 다가와 줄 텐데. 동굴 밖으로 나가는 연습을 해야겠다. 문전 박대를 당하면 다른 곳을 찾으면 되고, 자리 잡고 앉아있다고 눈치를 주면 이제 일어날 때가 됐다 보다 하면서 돌아오면 된다. 괜히 겁먹고 혼자 낯가림하지 말자.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이미 생각만으로도 문고리를 돌린 것과 다름없다. 남의 동네가 아닌 우리 동네에서, 앞으로 더 재밌게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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