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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동거하기 프롤로그

우울증으로 인한 생활고통

  난 우울증 환자다. 솔직히 우울증 정도는 잘 모르겠다. 처음 우울증 확진 판정을 받은 2018년 여름만 해도 정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언제부터 우울증이었는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아주 어려서부터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3살 때부터 부모의 품도 모르고 큰아바지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고, 가끔 보는 아빠라는 작자는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으니 정신이 온전한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의사에게 물어도 대답은 비슷하다.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겹쳐서 지금 우울증으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우울증 확정 판정을 받고 기분이 묘했다. 이혼 전후로 멍해져서 삶의 의욕도 없이 살아가는 나를 보고 동생이 권유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병원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처음에는 어릴 적 내 기억 속에 정신 병원이 생각나서 병원에 가는 것이 거부감이 들었다. 감옥 같은 곳에 갇혀서 이상한 소리를 내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시간이 되면 간호사들이 주는 약을 복용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동생이 이전에 정신병과 우울증은 전혀 다른 병이고 요즘은 평범한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는 이야기로 나를 설득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한 것 같아서 몇 주를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서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계속 치료했으면 지금쯤 약물 치료도 끝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때 연세가 지긋하고 점잖은 의사분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3주 차에 젊은 여자분으로 담당의가 바뀐 모습에 황당해서 그대로 방문을 닫고 나왔다. 퇴직을 앞두고 몸이 아프셔서 더 이상 환자를 볼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내 이야기를 다 털어놨는데 나에게 아무 통보도 없이 다른 사람을 보내다니... 왠지 배신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한 참 동안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나름 혼자만의 방법으로 우울증을 이겨내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판데믹이 장기화되면서 국민 전체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울증은 코로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지금 다니는 4번째 병원은 편리를 위해서 집 근처를 알아본 것이었는데 전화를 걸었던 집 근처의 병원들이 3개월 후까지 예약이 꽉 찼다는 답변을 듣고 황당했다. 다시 기존의 병원을 다녀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길을 걷다가 우연히 새로 개원한 병원의 광고 현수막을 발견했다. 막 개원해서 그런지 당시에는 쉽게 예약을 했다. 하지만 2개월이 지난 지금은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만큼 요즘 정신의학과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물론 나는 코로나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 인해서 사람들과의 관계들이 더욱 단절되고 혼자 지내는 시간들이 많아지다 보니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제대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지인의 권유로 다시 집 근처 병원을 검색해서 찾아간 것이 본격적으로 치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우울증을 내 몸속에서 송두리째 뽑아내려고 용을 썼다면 지금은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고 함께 동거하는 마음으로 산다. 의사의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약물치료를 멈추어도 될만한 상태가 올 수는 있겠지만 우울증 자체가 완전히 내 인생에서 사라져 줄 것 같지는 않다. 우울증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은 내 인생의 기억에서 나쁜 기억들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의미이고 앞으로도 상처 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난 우울증을 토닥거리면서 살기로 했다.


  이 글을 통해서 내가 우울증일까?라고 고민하는 분들과 이미 치료를 시작한 분들이 잘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고 우울증에 대해서 좀 담담해졌으면 좋겠다. 그럼 이제 내가 겪은 우울증이라는 놈의 진실과 그 대응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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