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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치료받고 싶다.

 치유를 위한 첫 발걸음.

  시간이 지나도 부부간의 갈등은 심화되고 운영하던 가게도 2년 만에 그대로 문을 닫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엄청 밝은 척 모임마다 유머러스한 입담으로 오버했지만 집에 돌아오면 입을 닫았다. 교회도 열심히 다녔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와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혼자서 아무리 노력해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정말 나를 완전히 바꾸고 싶었다.


  그맘때 교회들마다 '내적 치유' 프로그램이 유행이었는데 지금 용어로 말하자면 '심리 치유'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우울증이라는 병명은 몰랐지만 자꾸 기분이 업다운되고 죽고 싶을 때가 많아지면서 나는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내적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게 어떻게 보면 내가 처음 시도한 심리 치유 프로그램인 것 같다. 난 정말 미치도록 나 자신을 바꾸고 싶었다. 아내가 어떻게 나와도 온유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가게가 문을 닫아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도전하는 멋진 남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내가 큰소리를 치면 나도 큰소리를 치거나 자리를 피해버렸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항상 불안하고 초조했다.


  중국에서 온 내가 가장 먼 거리에서 내적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 온 부부도 있었다. 대부분 부부가 참여했고 여자들이 권유해서 남자들이 억지로 참여했다는 것을 서로 처음 자기소개 시간에 알게 되었다. 부부간의 갈등, 남편의 외도, 어려서부터 얼굴 여드름으로 고생하던 여자까지 저마다 다양한 상처를 안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때 상담 중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게 남는 전문가의 해석이 있었는데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려서 큰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도 그대로 자아 속에 머뭅니다. 즉 한 명의 상처 받은 아이와 성인이 된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공격해 왔을 때 내 안에 상처 받은 아이가 공격을 받게 되면 성인이 된 내 자아가 화를 내거나 심하면 폭력까지 휘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 3살 때부터 큰집에서 더부살이하며 엄마, 아빠를 보고 싶어 했던 내가 떠올랐다. 명절 때마다 술에 취한 아빠가 큰 집에 나타나 행패를 부리던 모습, 그 흉악한 얼굴이 떠올랐다.


  "아내분과의 불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명의 성인이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두 명의 성인과 두 명의 상처 받은 아이, 즉 4명이 공존하고 있기에 매일 불화가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난 해머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랬구나! 그래서 우리 둘 다 노력을 하는 것 같은데도 자꾸 부딪혔구나!'


  그 치료 방법으로 상황 역할극이란 것을 하게 되었다. 어릴 때 나로 돌아가고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한 분 중에서 아빠 역할을 해주는 것이었다. 어릴 때는 아무 말도 못 했지만 이제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아빠에게 하고 싶은 데로 다 해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다른 분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해도 되고 용기도 났다.


  "야 이 미친 XX야, 왜 우리 형제를 큰집에 버려뒀어? 그냥 엄마가 데리고 가게 놔두지. 책임도 지지 않을 거면서 왜 그랬어? 그리고 왜 명절 때마다 큰집에 와서 깽판을 쳐서 우리들이 벌벌 떨게 만들었어? 너 같은 XX는 차라리 뒈져버리는 게 나아!"


  나도 모르게 몰입이 되어 아빠 역할을 하는 상대방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준비돼있던 야구 방망이로 옆에 준비되어 있던 사람 인형을 마구 내리쳤다. 그 순간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물론 집으로 돌아갔을 때 냉전은 여전했다. 아니 나만 노력하는 것 같아 더욱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아내가 더 미워지는 것 같았다.


  1년 후 두 번째로 아주 큰 교회에서 내적치유 프로그램을 한다고 해서 다시 한번 아내를 설득했다. 아내는 여전히 거절했다. 난 또 혼자서 그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진행자들과 참가한 사람들만 달라졌을 뿐 큰 내용 변화는 없었다.


  그래도 내가 성인이 되어 이상하게 변한 이유가 다 내가 못나고 한심해서 그런 줄 알고 자책만 일삼았는데 어려서 상처가 큰 영향을 준 것이라고 들으니 맘이 한결 편해졌다. 이제 내 탓에서 부모님 탓으로도 돌릴 수 있었어 나 자신에게 좀 관대해질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난 내 안에 상처 받은 나를 위해 기도하고 토닥이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내를 바라볼 때도 아들만을 바랐던 장인어른이 어느 날 딴살림을 차려 나가서 배다른 여동생을 나은 것에 대한 상처 받은 아내가 함께 공존하겠구나라는 생각에 조금씩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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