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저 우울증인가요?

처음 찾아간 정신의학과 

  우울증이 아주 심각해지면 자살까지도 이른다는 것을 방송을 통해서 들은 적이 있다. 15년간의 치열하고도 벅찼던 결혼생활과 2년간의 이혼소송으로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것처럼 피를 철철 흘리면서 한국으로 돌아와 어머니댁에 얹혀서 지낼 때 동생이 찾아왔다.


  "형, 병원에 한번 가봐. 형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상하지 않아. 나도 직장 스트레스로 몇 번 다녀봤는데 효과가 있었어. 가서 아니면 안 가면 되지."

  

  23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형이 매일 멍해있고 삶의 의욕도 없고 술을 입에 달고 사니까 어머니가 걱정이 되셨는지 동생과 의논하셨나 보다.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처음으로 동네 종합병원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나도 제대로 살고 싶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무슨 설문지 같은 것을 받았는데 내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의사 선생님을 바꿔가면서도 설문지 같은 것을 작성했는데 단순한 우울증 진단이 아니고 생활 전반에 관한 질문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참고로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보건소에서 행하는 우울증 자가진단을 해봤다. 25점이 넘으면 무조건 전문가 상담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난 아직도 45점이 나온다. 


 https://health.dobong.go.kr/service/selfcheck_depressive.asp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나이가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근엄함과 온유함의 중간쯤 되는 표정을 하고 계셨는데 내가 어릴 때부터 힘들어했던 것을 이야기해보라고 하셨다.


  "어려서 부모 없이 큰집에서 더부살이를 해서 항상 어머님이 그리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외로움을 많이 타고 항상 누군가 옆에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가끔 보러 왔는데 항상 술 취해서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서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겁이 많고 나이 많은 남자들을 어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어려서 큰 일들을 치르셨군요. (사전 설문지를 보시더니) 왜 이혼한 거죠?"

  "중국인 아내와 결혼했는데 처음부터 생활도 성격도 전반적으로 맞지 않았습니다. 첨에는 심하게 다투다가 점점 서로 대화가 끊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결혼 15년 차에  2년간 소송을 통해 이혼했습니다."

  "그럼 자녀들은 어디 있나요?"

  "딸은 아내와 함께 중국에 있고 아들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럼 한국에서 혼자 사나요?"

  "아니요, 어머니와 살고 있습니다."

  "사귀는 분은 있나요?"

  "아니요. 지금은 없습니다."

  "가족이 다 떨어져서 사니 치료가 쉽지는 않겠습니다. 되도록 친한 지인들과 잦은 교제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 우울증인가요?"

  "네, 우울증입니다. 사전 설문지 결과와 종합해보면 심각한 수준입니다. 상처 받은 만큼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최소 6개월 이상은 약물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일단 항우울증 약을 일주일간 복용하고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 대화 내용이 상세하게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첫 번째 선생님은 과거의 일들에 대해서 상당히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연륜이 있는 의사에 걸맞게 차분히 대화를 이끌어 갔다. 약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데 대화만으로도 좀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약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기분이 묘했다. 막연한 내 상상이 아닌 의사로부터 명확하게


  우울증 환자

   

  라고 확진 판정을 받으니 복잡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내 편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다른 병처럼 약을 먹으면 치유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뿐이고 3번째로 진료실 방문을 열었을 때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분이 앉아계셨다. 담당 선생님이 많이 아프셔서 앞으로 자기가 담당의가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어려서부터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이미 이전 선생님께 해드렸는데 기록에 없나요?"

  "기록에는 있지만 그래도 제가 다시 한번 직접 들어야 도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순간 내 특유의 욱하는 성격이 올라왔다. 젊은 여자 선생님으로 갑자기 바뀐 것도 기분이 상했는데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또다시 반복해야 하다니...


  "죄송합니다. 진료받지 않겠습니다."


  그대로 일어서서 병원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더욱더 멀게 느껴졌다. 그 이후로 수년간 난 다시 병원을 찾지 않았다.

 

  

  

이전 03화 내 마음을 치료받고 싶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