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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의 시작.

이상 행동들이 시작되다. 

  '내 행동들이 정상인가?'


  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은 결혼하자마자부터였다. 결혼해서 아내와 함께 살면서 이상행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혼 때니까 자주 전화를 할 수도 있는 일인데 너무 자주 전화를 한다고 화를 내면서 핸드폰 3대를 발로 밟아 부숴버렸다.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말다툼이 심해졌을 때 술김에 화가 나서 차 앞유리를 발로 차서 영화에 한 장면처럼 부숴버린 적도 있다. 차유리가 깨진 것이 아니라 금이 가면서 앞유리 전체가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겨울이었는데 찬 바람을 그대로 맞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수리하러 갔는데 아저씨가 전체 앞유리가 나가떨어져서 온 경우는 처음이라며 어떻게 된 것이냐고 꼬치꼬치 묻는데 답하기 창피해서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결혼도 인생도 실패한 것 같은 마음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아서 매일 술을 들이부었다. 하루는 술을 아무리 마셔도 잠이 오지 않았는데 욱하는 마음에 새벽녘에 벌떡 일어나서 가위와 이발기를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한참 동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병신 같은 놈, 한심한 놈, 실패자!'


  그러다가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꺽꺽' 거리면서 울었다.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위를 들고 내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냈다. 그리고 이발기로 싹 밀어 버렸다. 다음날 아내와 장모님이 난리가 났다. 


  당시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었을 때인데 아내와 차를 타고 휴가를 떠나다가 아내가 길을 잘못 안내해서 한참 헤매게 되었다. 열 받아서 아내와 다투다가 욱해서 그대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욱해서 돌아서긴 했지만 마음이 편할리 없었다. 그래도 거지 같은 자존심에 화해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휴가는 그대로 망쳐버렸다.


  점차 삶의 의욕이 떨어지고 매일 술을 들이붓다가 위궤양이 와서 더 이상 술을 마실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맨 정신으로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PC게임을 배우기 시작했다. 식음을 전폐하고 게임만 했다. 그 순간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 기분도 들지 않아서 좋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내 인생이 참 한심하게 생각되어 미칠 것 같았다.


  인생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었고 삶의 목적도 소망도 다 사라져 갔다. 자존감도 자신감도 모두 바닥을 쳤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가끔 자살 충동을 느껴서 자살사이트도 들어가 봤다. 죽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돌아보니 어렸을 때도 술 취해서 시비가 붙으면 주먹질을 해서 경찰서에 자주 갔다. 술 마시고 동네 주차해있던 백밀러에 부딪히자 욱해서 근방 주차되어 있는 모든 차의 백밀러를 발로 차 부수고 경찰서에 끌려갔던 일이 생각났다. 


  중국 유학시절 여자 친구가 내 말을 무시하고 다른 남자들과 시시덕거리는 것을 보고 술집 현관문을 부수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응급실에 갔던 기억도 난다.


  하여간 종합적으로 볼 때 난 정상은 아니었던 게 확실하다. 성인이 되면서 조금씩 누그러진 것뿐이지 확실이 정신이상 환자 같은 행동들을 어려서부터 보여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족이나 지인들에게는 폭력을 가하지 않았고, 기물파손으로 화를 풀었다. 


  다행히 동생 친구가 끈질기게 권유해서 다시 교회를 열심히 다니게 되면서 술 담배를 끊게 되었고 조금씩 증상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술로 인해서 비이성적으로 발생하던 충동적 사건들이 사라졌고, 맘이 힘들 때마다 신이라는 의지 대상이 생기니 조금 맘이 편해져서 욱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나의 노력에 비해서 변화는 미비했다. 그런 내가 정말 답답하고 미칠 노릇이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조금씩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신에게 도움을 구하는 방법 말고 당시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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