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치의 연인
하치와 데이트도 하고 싶었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하치의 방에 가서, 첫 키스를 하고 싶었다. 애가 태어나자 여기저기로 전화를 거는 하치를, 축 늘어진 배로 보고 싶었다. 신생아실에는 갓난아기가 있고, 아아, 키우기 귀찮아. 집 없는 개나 고양이를 주어다, 어쩔 수 없이 키우기도 하고 그리고 같이 바다에 가고 싶었다. 매일 수영도 하고, 해변을 산책하고도 싶었다. 또 쓸데없는 말싸움과 하치가 보기 싫어서, 없어지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해 보고 싶었다. 어느 쪽이 신문을 먼저 읽느냐고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무수한 히트 송이 과거가 되어 가는 것을 함께 느끼고 싶었다.
모든 잡다한 일들을, 좋으니 나쁘니 따지고만 있을 수 없는, 이미 일어난 모든 일들을 복작복작 포함한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 어느 틈엔가 유유히 흘러,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에 있기를.
그래, 그러니까 말이지, 그런 책임을 함께하는 것.
나는 울면서 호소했다.
모두들 이렇게 멋진 일을 매일 하고 있는데, 왜 모두들, 어째서 특별하게 행복하지 않은 거지?
하치의 연인 中 요시모토 바나나
“더 좋은 걸 해주고 싶어서 그래”
웅이는 말한다.
그러면 나는,
“아니, 지금 행복해야 해. 웅이가 생각하는 좋은 것들을 내게 주지 않아도 우린 충분히 지금 행복할 수 있어. 왜냐면 거창한 것들이 필요한 게 아니거든.”
더 값진 것,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은 고맙지만 그렇기에 그의 행복의 시기는 현재보다는 좀 더 미래 쪽에 가있다. 반면 나의 행복은 미래 역시 고려하지만 그것보다 현실에서 지금 당장, 일상에서의 소소한 행복을 꿈꾸는 사람에 가깝다. 웅이는 거창한 계획을 세워 세상 멋지다 하는 곳에 나를 데려가 주고, 값비싼 가방과 액세서리를 사주는 것 등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한번 같은 문제로 최근에 말다툼을 했다.
일로 인해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라도 서로에게 따뜻하고 기분 좋은 말 몇 마디 나누는 것, 밥 한 끼를 함께 먹으며 텔레비전 속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 쉬는 날에는 카페 맛집을 찾아가 나란히 앉아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써보는 여유를 함께 누려보는 것, 함께 손잡고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 것, 소파나 침대에 뒹굴뒹굴 누워 널브러진 채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로 함께 낄낄 대며 웃는 것…이런 것들 말이다.
그렇게 일상에서의 중요성을 보지 못하고, 현재 눈앞에 있는 펼쳐진 사람과 상황의 소중함을 간과하는 엄청난 실수를 범하는 일이 더 이상 되돌이표처럼 돌아오지 못하게, 나는 이번에야 말로 케케묵고 쌓인 감정을 가득 모아 제대로 경고 사격을 날렸다.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의 의미는 그 어떤 것보다 삶을 값지고 빛나게 만들어 준다는 굳건한 나의 믿음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었다.
이별은 거창한 것으로 오지 않는다. 일상에서 작지만 반복되는 문제들이 계속 딱지표처럼 따라다니면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습자지가 물을 세차게 쥐도 새도 모르게 흠뻑 적시듯 관계에도 파멸이 서서히 스며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거창하고 큰 문제가 아닌 일상의 자잘한 불화에 대한 타협점을 찾아가는 건 그 어떤 무엇보다 더 중요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행복에 관한 다른 의견은 일단은 정리가 되었다. 일단이라 말하는 건, 습관이란 게 자리잡지 않으면 쉽게 풀어져 버리는 것처럼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생각이 변화 거나 자리 잡는 데에도 일정 기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나란히 앉아 이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웅이는 나의 의견을 귀 기울여 잘 들어주었다.
평생을 다른 생각과 경험들로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큰 다툼 없이 매일매일 평화를 유지해 가며 산다는 건 기적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각 개개인은 너무도 다른 한 사람의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면에서 다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각자 의견은 다를 수 있으니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해 주며 잘 지내보자.’가 아닌
“우리의 더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난 이렇게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로 우리의 다름을 한 발짝 좁혀가려 시도했다.
이번 웅이와 나눈 길고 긴 대화는 너는 너, 나는 나의 의견대로 살아가는 수동적인 삶보다 한 발짝 나아가 ‘우리’의 관계를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어떤 흐름이 필요한지를 짚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살짝궁 행복의 소소한 변화의 바람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