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화되어 부유하는 기억들
팟캐스트를 녹음할 때 같이 진행하는 파트너가 중학교 때부터 친구여서 학창 시절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둘 다 중학교 때 좋지 않은 기억이 많은데도 학창 시절에 대한 내용 절반 이상이 중학생 시절의 ssul이다. 약간 첨언하자면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살던 지역에서 알아주는 불량배 집합 학교였다. 항상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주먹을 조심해야 했고 굶주린 배를 채워줄 매점은 우리들 것이 아니었으며 종례 후 집과 가까운 문이 아닌 그들을 피해 멀리 떨어진 쪽문으로 하교해야 했다. 그때는 나뿐만 아니라 절대다수가 이 암묵적 규칙을 지키며 살았다. 물론 파트너도 마찬가지. 그런데도 왜 이렇게 그 시절 얘기가 재밌는지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응어리를 터트린다. 자칭(타칭) 엄석대들에게 도망쳐서 가던 독서실, 게임방, 농구장 그리고 분식집은 우리에게 아늑한 쉼터가 되었고 거기는 곧 우리에게 작은 유토피아가 되었다. 분명한 사실은 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음에도 그 당시를 떠올리면 학교 밖에서 행복하게 보냈던 기억만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말인데...'
'기억은 그러니까 추억은 그러니까 경험은 그러니까 과거 일련의 모든 과정은 미화된 파편들이 떠오른 표상들의 집합체이지 않을까 싶다.'
불안과 두려움은 저 멀리 미래에 맡기고, 파편화된 기억들은 조용히 부유해 아름다운 이야기로써 우리 의식에 살아남는다. 미지의 공포는 미래를 알지 못하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것이기에 과거를 추억할 때는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다. 5년 전 처음 면접 본 순간, 1년 전 첫 상견례 자리, 반년 전 절친한 친구의 죽음, 하루 전 참지 못 한 배변 활동까지... 지난 일들에 대한 불안은 이미 저 멀리에 두고 왔다. 그래서 우리 과거는 아름다운 낭만이 가득하다.
'Golden Age'는 예술, 문학의 황금시대 또는 인생의 황금기를 말한다. 보통 황금시대는 과거의 노스탤지어를 향하는 경우가 많다. 시대적으론 르네상스, 벨 에포크, 개인적으론 찬란한 청춘, 경쾌한 학창시절 정도가 될 것 같다.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과거 아닌가? 이미 그 시절을 겪었기에 불안과 걱정은 없다. 다만 게임방, 농구장 그리고 분식집만 있을 뿐. 가끔 현실은 고단하고 미래는 불확실해, 내가 아는 과거로 회귀를 막연히 소망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타이핑하는 이 시간 매분, 매초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는 확실한 진실에 집중한다. '지금' 숨 쉬는 순간마저 파편화되어 표상으로 남는다면, '지금'마저 과거라는 낭만적인 사고를 한다면, 우린 행복한 노스탤지어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