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많이 실망한건 준영이다.
배고픔도 배고픔이지만 추위에 사지가 오그라든 그는 금혁이아빠와 내가 번갈아 가며 나무가지를 문지를때 누구보다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봤었다.
나도 불을 지피면 얼어든 몸도 녹이고 젖은 신발도 말리고 따뜻한 불 곁에서 잠깐이나마 지치고 피곤한 몸을 녹이며 졸고 싶었는데 결국은 실패하고 만것이다.
( 쳇~ 원시인들이 나무를 문질러 불을 지펴? 역사 선생이 허풍을 친거네..그라인더 회전하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비벼댄다면 모를까.)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괜히 힘만 뺐다고 투덜댔다.
" 도토리는 그냥 잊어버리고 가야겠다. 조금 쉬였으니까 또 걸어야지 아님 점점 더 추워서 안된다.그리고 날이 훤할때 사람사는곳을 찾아봐야지... 가면서 마가목이나 새열기 있음 더 따서 먹더라도 우선 가자."
금혁이 아빠는 그러면서 차례를 지내느라 만들었던 단 뒤쪽 언덕으로 가서 목을 젖히고 해를 쳐다보고 또 사방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이내 방향을 정한듯 아까 나와 준영이가 마가목을 따가지고 온 쪽으로 앞장서 걸어갔다.
우리 네명은 이미 지칠대로 지치고 피곤했지만 그가 앞장서니 따라갈수밖에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어디 나무 밑둥에 등을 대고 해빛이라도 쬐며 조금이라도 졸다가 가고 싶었지만 그의 말대로 그러다 혹시 깊은 잠이라도 들어버리면 그대로 얼어죽을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거운 발걸음들을 옮기며 그의 뒤를 따라 하나,둘 걷기 시작했다.
" 형님네 먼저 천천히 걸어가쇼. 내 아무래도 여기 어디서 뒤 좀 보구 가겠습니다."
우리가 몇걸음 가기 시작할때 맨뒤에 있던 준영이가 나를 보며 하는 말이다.
인상을 찌푸리고 배를 그러안고 있는걸 보니 아까부터 갑자르던 똥이 이제야 마려운가 보다.
저쯤 앞장서던 금혁이아빠는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며 머뭇거리다가 준영이를 보고
" 그래 꼬매야. 우리 천천히 걸을께. 발자국 보구 인차(바로) 따라와라." 하고 말했다.
" 예. 알겠슴다."
나는 그가 뒤를 보고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가자고 말하려다가 그러면 준영이가 또 아까처럼 우리때문에 볼일도 제대로 못보고 급하게 다시 올까봐 천천히 먼저 가는게 났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준영이만 남겨놓고 또다시 능선을 타고 정갱이까지 치는 눈을 헤치며 행군을 시작했다.
얼마안가서 쫓아오겠지 하고 걸어가던 나는 꽤 많이 왔는데도 준영이가 따라오지 않자 슬~슬 걱정이 됬다.
( 짜식. 속이 좋지 않으면서도 먹을거 못 먹을거 다 씹어 먹더니...오래두 싼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더 걷다가 시간이 십분 가까지 지났는데도 그가 오질 않아 아무래도 기다렸다가 데리고 가야 되지않나 하고 말하려는데 앞장서 가던 금혁이아빠가 먼저 걸음을 멈추고 " 야~이 꼬매 너무 늦는다. 좀 서서 기다렸다가 같이가자." 라며 먼저 말을 했다.
우리는 그자리에 서서 걱정어린 시선으로 하나같이 뒤쪽을 바라보며 준영이가 오길 기다렸다.
은별이는 다리가 아픈지, 아님 힘들어서인지 그자리에 무릎을 세우고 " 아이고~" 하고 신음소리처럼 내뱉으며 주저 앉는다.
나도 머리가 어지럽게 피곤하고 지쳐 옆에 비스듬히 서있는 나무에 팔꿈치를 기대고 서있었다.
" 야. 이 꼬매 다시 가봐야 되지 않겠니?"
앞에 있던 금혁이아빠가 스적~스적 내게로 다가오며 하는 말이다.
" 그러게 말이오.그냥 거기서 기다렸다가 데리구 출발할걸 그랬소."
그때였다.
잡관목 나무들 사이로 카키색 군대동복을 입은 준영이가 씩~씩 거리며 거의 뛰다싶이 빠른 걸음으로 우리쪽을 향해 오는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다.
" 저기~삼촌 오네."
은심이 먼저 보고 하는 말이다.
나는 다가오는 그를 보며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 야. 준영아~ 너 무슨 똥을 만들어 쌌니? 이렇게 늦게오냐."
숨이 턱에 닿을듯 헉~헉 대며 오는 준영이를 보며 내가 나무람 하며 하는 말이다.
" 잘못했습니다. 헥~헥~ 잘 나가지 안...않아서...오래 기다렸슴까?"
" 기다린게 문제 아니구 임마. 안오니까 먼 일이있나 걱정했잖아 모두."
" 음~~인차 따라 오..온다는게 배 아파서..."
" 왔으니까 됐다. 그래 꼬매야. 배 아픈건 어떻니? 일없니?"
" 아~~네. 이젠 일없슴다."
대답은 그런데 내가 봤을땐 준영이 얼굴이 아직도 괜찮은 얼굴이 아니다.
아무튼 그렇게 막 도착한 준영이까지 데리고 우리는 산 등성이 넓은 능선을 타고 또다시 눈길을 헤치며 걷기 시작했다.
그나마 언 볼이라도 만져주던 따스한 햇살을 비추며 중천까지 떠올랐던 해는 다시 서쪽을 향해 기울고 맑은 하늘에 언제 모였는지 파도모양의 뭉게 구름들이 서로 서로 어께동무를 하고 한 방향으로 무리를 지으며 흘러가고 있었다.
한 겨울의 낮시간은 야속할정도로 너무 짧다.
불과 몇시간전에 떠오르는 태양을 반긴것같은데 벌써 대지에 석양빛이 옅은 황토색 물김을 뿜어 놓은듯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는것이다.
한줄로 서서 힘겹게 한걸음,한걸음 옮기는 일행의 그림자도 뒤에서 따라오다가 어느새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해서 난쟁이같이 짧아져 우리 앞에 비스듬히 드리워 춤을 추듯 흐느적 거린다.
그런데 내 앞에서 걷던 준영이 허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앞으로 구부려 진다.
처음엔 추워서 그러려니 했는데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또 가다가 멈추며 으~음, 하는 신음소리마저 새어 나오기 시작하는걸 보니 그놈의 배가 또 아프기 시작하는가 보다.
그러다보니 항상 맨뒤에서 걷던 나는 가끔씩 걸음을 멈추는 준영이 때문에 앞서 걷던 금혁이아빠랑 은심이,은별이네와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몇발자국 정도였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준영이가 자주 멈춰서는 바람에 십여미터이상 벌어졌다.
나는 너무 지쳐 말할 기운도 없고 해서 뒤에서 그가 멈추면 따라 멈추며 말없이 걷다가 점점 더 신음소리가 커지고 자주 들려서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준영이 어께를 툭~치며 물어봤다.
" 준영아.너 또 배아파 그러니? 어디 많이 아프니?"
" 예~~~음..."
괴로워 하는걸 보니 많이 아픈가 보다.
" 좀 쉬었다 가자구 할까?"
" .... "
나는 꽤 멀어진 금혁이 아빠를 소리질러 불렀다.
" 금혁이 아버지. 야~~이거 배 아파서 안되겠소. 좀 쉬었다 가기오."
큰소리로 부르는 내 목소리를 듣고 앞서가던 일행들이 일제히 멈춰서서 뒤를 돌아본다.
그리곤 그제야 벌어진 간극을 알아차렸는지 서로를 쳐다보다가 우리쪽을 향해 다시 걸어 오는것이다.
맨 앞에서 오던 은심이는 먼저 다가와 허리를 펴지 못하고 머리를 떨구고 서있는 준영이를 얼굴을 올려다 보며 " 삼촌. 배 많이 아프오?" 하고 물어보더니 이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 어마나. 삼촌 얼굴이 왜 이러오?" 하고 다급하게 두손으로 그의 얼굴을 들고 살펴본다.
나는 소리 지르듯 하는 은심이의 목소리와 표정에 놀라 " 어?~왜? 얘 얼굴이 어째서?" 하며 준영이 팔을 잡고 내쪽으로 돌려세워보다가 나도 깜짝 놀랐다.
온 얼굴이 파랗다. 이마며 눈 주위며 귀 주변이 파랗다 못해 검다.
거기에다 피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굵어져 있다.
나는 놀라서 입이 벌어지고 할말을 잃고 순간 굳어져 버렸다.
" 왜? 무슨일이야? 꼬매 배 또 많이 아파서 그러니?"
뒤늦게 도착한 금혁이아빠도 준영이 주변에 몰려있는 우리를 보며 급하게 물어보는 말이다.
그리고는 준영이 얼굴을 살펴보더니 대번에 알아차린듯 " 너 아까 우리 먼저 떠난다음 먹지말라고 버린 열매 주워 먹었지?"
라고 다그치듯 물어본다.
그의 물음에 준영이는 대답을 못하고 머리를 떨군채 고개만 한번 끄덕이더니 미안한듯 물끄러미 금혁이아빠를 쳐다본다.
그러고보니 준영이 눈도 빨갛게 피가져있다. 피곤해서 충혈된 정도가 아니라 당장 피가 눈 밖으로 흘러 나올듯이 빨갛다.
" 야~준영아~너 임마. 아무리 배고파도 못 먹는거라고 말했는데 그걸 또 주워먹고 오니? 그러지 않아도 배 아프다메...이 새끼 그거 주워먹을줄 알았으면 아까 금혁이 아버지 그거 밟아서 뭉개 버릴걸 그랬소."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절로 욕이 나와버렸다.
똥 싸느라 늦은게 아니고 버렸던 열매랑 금혁이아빠가 산신령님한테 고수레~하며 뿌렸던 열매들을 주워먹고 오느라 늦었던것이다.
얼마나 배고팠으면 그걸 다시 눈속에서 파내 주워 먹었으랴만은...휴~~
그나저나 큰일이다.
이 산속에서 약 구할데는 고사하고 애를 어디 눕힐만한곳도 없으니...
" 여기..은심이랬던가? 너네 이 꼬매 등 좀 두드려 줘라. 꼬매야. 허리를 더 숙이고 이 누나네 등 두드려 주면 억지로라도 한번 토해봐라. 응?"
그러면서 금혁이아빠는 나를 돌아보며 " 너랑 나는 어디 바람 피할만한데를 찾아서 꼬매를 눕힐 자리를 만들자." 라며 나를 이끌고 능선 반대쪽 아래로 내려갔다.
가면서 보니 은심이와 은별이는 텅~텅 소리가 날 정도로 열심히 준영이의 등을 두드리고 배를 문질러주기 시작했고 겁이질린 준영이도 어떻게든 토해내려고 그제야 장갑을 벗고 얼어서 제대로 펴지지도 않는 구부정한 손가락을 입에 밀어넣고 왝~왝 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