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뀌지 않는 한, 다음 역시 예고되어 있다
효율과 비용 절감의 함정
우리나라는 치명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 그리고 무안공항 사고까지, 이 모든 비극의 공통점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살릴 수 있었는데 못 살렸다'
사고가 날 때마다 비슷한 대응이 반복되지만, 근본적인 시스템 개편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대한민국이 가진 성장의 이면, 즉 허탈함과 무책임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사회가 사후 대응에 급급한 구조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오랜 시간 경쟁과 빠른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왔다. 무엇을 만들어내고, 더 빠르게, 더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에서 '돌아봄'은 도태로 여겨진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더 많은 노선, 더 빠른 직항, 더 저렴한 가격'이라는 표어 아래, 존엄성과 안전의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 결과, 우리는 참사 앞에서 통탄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또, 순간적인 통탄의 물결에 편승해 너도나도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책임의 주체를 애써 외면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현상이 낯설지 않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잠시 반짝했던 물결에 의문이 생겼다. 그러나, 다시 반복되는 비극 속에서 진정한 질문은 사라졌다. 이제 다시 묻는다.
삶의 진정한 균형에 대하여.
예방과 책임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관심을 거두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 자신, 그리고 우리의 인식이 함께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비극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