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준비의 날, 기다리던 시간의 시작이다. 아침 9시 30분 수술 전 검사와 외형 스캔을 하기 위해 병원에 방문 했다. 영어도 잘 못 하지만 중국어로 대화하는 것은 더욱 힘들기에 통역해주실 분을 알아보고 오늘 같이 병원으로 가기로 약속했었다.
통역 선생님은 이미 몇차례 다른 아이들 수술에 참여하신터라 병원 관계자와도 인사를 나누셨다. 병원에 가니 첫날 만났던 애니 말고 웬디 라는 간호사가 전체적인 진행을 해주셨다. 애니는 중간중간 본인이 맡은 부분에 대해 얘기하고 진행 해주었다.
서류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애니가 다가와 “오늘 피검사와 심전도 검사를 합니다.” 라고 얘기해주었다. 그 얘기를 듣고 갑자기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고 병원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향했다. 아이는 외형 스캔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피검사 얘기를 듣고 놀란 모양 이었다.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아내가 노력했으나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때 애니가 다가와 “이전에 수술이나 이런 것으로 트라우마가 있니?”, “수술 할 때도 이렇다면 수술할 수 없어.” 라고 얘기했다. 아이를 진정시키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고 나름 진땀 흘리며 노력 중인데, 애니의 말을 들으니 당황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그녀와 이런 순간이 한번 더 있었는데, 아이가 진정되고 채혈과 심전도 검사를 마친 뒤 외형 스캔을 할 때 였다. 앞서 수술했던 아이들 사진을 보면 수술을 위해 머리카락을 인정사정 없이 깎아둔 것을 보았다. 우리는 그런 것을 예방하고자 출국 전날 미용실에서 속알머리를 밀어서 약간 투블럭 머리처럼 해두었다. 그것을 보고 애니는 “이런 머리로는 안 되.” 라고 했고, 아내가 “여자 아이들은 이렇게 깎아서 남은 머리를 묶었던데. 우리도 그렇게 하면 안 될까?” 얘기 했다. 이를 듣고 애니는 통역 선생님에게 “정확히 전하세요. 그렇게 고집부리면 수술 할 수 없다고요.” 라고 얘길 했고, 중간에서 통역 선생님만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우리는 꼭 그렇게 하자고 떼를 쓴 것도 아닌데, 마치 진상 손님 같은 대우를 받으니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통역 선생님에게 들어보니 예전엔 저렇지 않았는데 그녀가 하는 말이 점점 거칠어진다고 하신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 앞서 수술한 분들이 하신 얘기에서 그녀가 한국 환자로 인해 너무 힘들어한다고 말하더라는 것을 들었다. 한국 환자로 인해 할 일이 너무 많아져 힘들고 그래서 그녀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의미 같다.
개인적으론 한국과 대만의 문화 차이 같기도 하다. 나도 수술을 준비하며 ‘정확히 수술을 언제 할 수 있을지, 언제 예약금을 보내야할지, 내가 준비할 것 들은 뭔지.’ 등 궁금한 것이 많았다. 반면 대만의 문화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선 ‘언제쯤 하기로 했느니 수술은 할 것이고, 예약금은 수술 당일이라도 받으면 되는 것’ 정도로 여겼다. 중화권의 만만디 문화의 영향 같은 건지, 정확한 확답이 없어도 때가 되면 처리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 차이 때문에 한국에선 물어볼 것이 있으면 답을 얻을 때까지 연락을 하고, 그녀는 이른바 안읽씹을 시전하고 있었다.
무슨 이유가 되었든 나와 아내 입장에선 그녀의 말이 ‘의료 행위를 앞두고 협박하나?’ 생각 되기도 했고, 나는‘ 집 문제로 화풀이 하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앞으로 남은 일정에도 그녀와 얘기하고 처리할 것이 많은데 어떻게 해야할까.
*오전에 진료를 마치고 타이페이 어린이공원을 갔다. 수술한 뒤 한동안 외부 일정은 힘들기 때문에 그 전에 다녀오기로 했다. 다행인지 해가 나오고 기온도 23도 가까이 올라가서 외부 활동도 괜찮았다.
공원이 문을 닫는 5시까지 공원 여기저기를 종횡무진 휩쓴 뒤 공원 근처에 위치한 스린야시장도 잠시 구경했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하니 오늘 오길 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