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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살이 4일 차 - 수술을 한다는 것은

by 천백십일

“나는 모기 물린 것보다 더 끔찍한 것이 있어. 바로 수술한다는 거.”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엄마와 모기에 물린 얘기를 하던 아이가 얘기를 했다. 끔찍히 무서운 수술을 하는 것이 두렵다는 말을 한다. 아마도 오늘 낮에 있던 일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오늘은 아침부터 흐리고 비가 내렸다. 숙소에 먹거리가 부족해서 아침 식사는 숙소 앞에 있는 ‘더 웨일’이라는 곳에서 먹었다. 정확히는 ‘더 웨일’이라는 프랜차이즈에서 운영하는 브런치 전문점이었다. 가까운 곳이라 세수만 대충 하고 나왔는데, 역시 이 동네가 번화가 인지라 출근하는 직장인과 학교 가는 학생 사이에서 꾀죄죄하게 돌아다니게 되었다. 이곳의 메뉴는 간단한 샌드위치, 햄버거, 스파게티로 구성되어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수술을 해주실 첸 선생님을 만나러 병원으로 향했다. 앉아서 간단히 수술동의서를 작성하고 난 뒤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21년 줌 미팅 이후 처음 뵙네요.”


“그랬나요. 기억이 안 나네요.”


“워낙 많은 환자를 만나시니까요.(웃음)”


첸 선생님은 이미 중화권에서 실력 좋은 선생님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우리는 정보를 알게 된 후 서둘러 연락을 취하고 줌 미팅을 통해 간단히 의견 공유도 한 상황이었다. 그런 후 그에게 수술하는 것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아이를 살펴보시고 수술에 대한 부분을 얘기해 주셨다. 외형을 어떤 형태로 다듬을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실 것인지 설명해 주셨다. 아이는 나와 아내 사이에 앉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중간중간 선생님과 간호사께서 아이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농담과 달콤한 간식을 건네주셨다.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난 뒤 수술에 대한 질문을 몇 가지 했다. 근막은 수술에 사용하고 나면 사용 부위가 다시 자라지 않기 때문에 사용에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피부의 경우 두피와 팔뚝에서 사용 가능하다고 하셨고 우리는 선생님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부분은 수술 당사자가 결정할 부분이라고 하셨다. 크기는 성장이 대부분 된 상황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현재보다 10% 정도 크게 한다고 했다.


수술 이후 생활에 대한 부분에선 그동안의 사례를 보면 일상생활에 불편함은 없는 편인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나는 소재가 좀 더 말랑할 수 없는지, 그러면 좀 더 편하지 않을지 물어봤다. 내가 파악한 것과 환경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얘기를 떠낸 이유는 2년 전 선생님과 줌미팅을 하면서 첸 선생님께 받은 질문 때문이다. 당시 우리와 얘기하던 선생님은 질문이 있다고 하셨고, 이렇게 얘기하셨다.


“수술을 하고 난 뒤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인데, 그것에 대해서 알고(고려) 있나요?”


첸 선생님과 줌 미팅하기 전, 다른 병원, 의사에게 수술을 알아볼 때는 수술에 관한 부분만 얘기를 나눴던 터였다. 수술에 대한 의미나 이후 변화에 대해 물어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줌 미팅에서 첸 선생님의 질문을 듣고 난 후 ‘수술 이후’도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내가 모르는 기술이 발전 상황이라던지 좀 더 나중에는 더 나은 소재나 방법을 통해 불편함이 줄어들지 않을지 궁금했었다.

그런 이유로 소재나 방식에 대한 부분을 물어보았는데, 선생님은 서랍을 뒤적이시더니 고어텍스로 만들어진 소재를 보여주셨다. 그러면서 유연성은 이것이 더 좋으나 외형 만들기나 수술 예후에 대해서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설명을 해주셨다. 다만 더 나은 방식이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얘기도 같이 해주셨다. 첸 선생님이나 그런 노력을 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우리가 그런 얘기들을 나누는 시간 동안, 옆에서 가만히 듣던 아이는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직접적으로 얘기를 들은 것은 아니지만 방 안에 있던 분위기 만으로도 본인이 겪을 수술에 대한 얘기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진료 이후에도 내색하지 않아서 나도 크게 신경 쓰지 않다가, 잠들기 전에야 아이의 생각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순간을 만나면 이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해 둔 나름의 이상적인 대처법이 있으나, 막상 마주친 현실에선 마음에서 새어 나오는 또 다른 감정들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 일들이 내가 아닌 아이가 감당할 부분들이기에, 내 선택이 옳은 것일지, 더 나은 방안을 못 찾는 것은 아닐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다가 곧 '내가 흔들리면 아이가 더 큰 혼란을 겪지 않을까.' 하는 자기 암시를 하게 된다. 그리고 부모이기에 당연히 아이 옆에서 그가 해나가야 할 시간을 함께 하고 응원해 줄 것을 다짐하고, 그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어제는 차갑던 애니가 오늘은 웬일인지 조금 살가운 모습이었다. 진료 내내 아이와 눈을 마주쳐주고 긴장을 풀어주려고 노력해 주었다. 어제 내가 생각한 부분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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