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23일 일요일.
내 인생을 통틀어서 잊지 못할 사건이 벌어졌다.
국내외를 떠들썩하게 했던, SBS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37회에서도 방영되어 16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서래마을 프랑스인 영아살해 유기 사건이 바로 그 사건이다.
프랑스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La nouvelle republique)
신고를 받고 출동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대형 사건으로 비화될지는 몰랐다.
최초 신고는 그날 낮 12시쯤 이 모 씨(43세)가 한 것이었는데, 직장 동료인 프랑스인 쿠르조 씨(40세)가 자신의 집 냉동고에서 갓난아이 사체 2구를 발견하여 대신 신고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쿠르조 씨와 부인, 두 아들은 6월 29일 여름휴가 차 2개월 일정으로 프랑스로 출국하였으나, 쿠르조 씨만 회사의 중요한 회의 참석 차 잠시 귀국한 터였다.
뒷 베란다에 있던 서랍형 냉동고 4단, 5단에서 각각 영아 사체 1구를 발견하였다.
아이스크림이 오래되면 하얀 성에에 둘러 쌓이듯이 아이들 또한 그렇게 성에에 둘러 쌓여 단단한 돌덩어리처럼 되어 있었다. 바닥에 떨어뜨리면 쿵하는 소리가 나겠다 싶을 정도로...
엽기적인 냉동고 영아 살해 유기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영아 사체 2구가 발견된 냉동고 - 2007. 2. 14. 프랑스 수사팀과 함께 현장 검증 당시 촬영 (연합뉴스) 냉동고 4단 및 5단 서랍에서 발견 당시 상황
팀원들에게 외교 문제로 비화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하고, 쿠르조 씨 조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의뢰 공문 작성, 주변 탐문 수사 등 차분히 수사를 진행했다.
새벽 1시가 다 되어 퇴근했다가 새벽 6시쯤 출근했을 때부터 서울 방배경찰서는 기자들의 합숙소가 될 정도로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현장 탐문 수사에, 참고인 조사에, 국과수 자문 차 출장에, 언론 응대에... 정신이 없었다.
취재 경쟁이 과열되면서 수사사항이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가 되었고, 신중하려 해도 언론이 앞서가는 보도를 하곤 했지만, 중심을 잡고 우리 방식대로 차근차근 수사를 진행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주효했다.
다음 날 실시된 국과수 부검 결과, 두 영아 모두 폐부유 실험 등으로 사산이 아닌 살아서 태어났으나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어 죄명이 영아살해 및 사체유기로 확정되었다.
폐부유 실험 결과 - 살아서 태어난 경우 폐포에 공기가 들어가 폐가 물 위에 뜨게 된다.
3일 후 쿠르조 씨는 예정된 리턴 비행기 일정에 따라 출국하였고, 그 이틀 후인 28일... 조사하면서 임의 제출받아 놓은 입안 상피세포와 머리카락에 대한 DNA 검사 결과가 회신되었다.
한국어 과외 강사로부터 받은 손질 고등어 택배를 냉동고에 넣다가 우연히 영아 사체를 발견하여 영아들에 대해 전혀 모른다며 손을 벌벌 떨며 담배를 피우기도 했던 쿠르조 씨.
그랬던 그가 영아들의 아버지로 확인되었다!
한 여름의 납량 특집물 같은 사건의 서막이었다.
아버지가 확인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엄마를 찾기 위한 수사에 돌입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던 냉동 사체 사건으로, 국과수 법의관도, 자문을 구한 의료진도 사망 시점을 알 수 없다고 하여 탐문 수사에 집중했다.
탐문 수사 결과, 쿠르조 씨의 여자관계는 깨끗했다. 내연녀가 있거나, 유흥업소를 출입하는 등 부인 베로니크 씨(39세) 외의 여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정황을 발견할 수 없었다.
부인은 2년 반 전인 2003년 12월 급성 패혈증으로 자궁 적출 수술을 했기 때문에 아기를 낳을 수 없어 범인일 리 없다는 쿠르조 씨와 주변인들의 진술이 있어 일단 용의선상에서 배제되었다.
집은 사설 경비업체의 경비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어서 외부 침입 흔적도 없었다.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보안카드를 가지고 있던 쿠르조 씨의 친구 P와 필리핀 가정부뿐이었으나, 두 사람 모두 특별한 혐의점은 없었다.
사건은 미스터리처럼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사건 발생 일주일 여 후...
퇴근해서 매일 수사사항을 토대로 간호장교 출신의 아내와 둘만의 수사회의를 하곤 했는데, 아내로부터 결정적 단서를 착안하게 되었다.
혹시 부인이 범인 아닐까 의심하는 아내에게 부인 관련 탐문수사 결과를 알려 주었고...
아내는 “어, 그건 앞뒤가 바뀐 얘기인데... 자궁에 문제가 생겨서 패혈증으로 가는 거지, 급성 패혈증이 와서 자궁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잖아.” 한다.
SBS 꼬꼬무 37회 방송화면
순간 나는
"그러면... 혼자 아기를 낳다가... 자궁에 문제가 생겼고... 급성 패혈증으로 진행되어... 병원에 실려갔다??"
혼잣말을 하면서 아내와 눈이 마주쳤고, 아내도
"그렇네, 아기를 낳다가 태반이 남아서 그럴 수도 있고." 라며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스프링이 튕겨 나가듯 반사적으로 컴퓨터 앞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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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사체를 냉동고에 보관한다는 게 엽기적이긴 했지만, 법의학적으로도 사망 시점을 확인할 수가 없는 상태.
‘급성 패혈증', '잔류태반’ 등을 검색하며 의학적으로 사건을 검증하기 위해 분석을 시작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출근을 해서는 모든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각자가 퇴근 후에 생각한 아이디어를 내고 검토하는 수사회의 시간.
- 쿠르조 씨의 내연녀가 아기를 몰래 낳아 복수심에 넣어 두었을 가능성
- 누군가가 몰래 들어와 아기를 낳고 살해 후 나왔을 가능성
- 쿠르조 씨 회사의 경쟁사에서 모함을 위해 넣어 두었을 가능성 등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를 입증할 근거는 부족했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
밤새워 내린 결론을 이야기하자 몇몇 팀원은 그게 맞겠는데요라며 맞장구를 쳤지만, 일부는 3년 이상 사체를 보관했다는 점과 남편이 몰랐을 리 없다는 점 등으로 아닐 것 같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내 의견을 뒷받침할 근거로 당시 의료기록을 확인해 보니 수술에 참여했던 교수님 중 한 분이 그 S병원에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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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를 마치고 병원을 찾아가 산부인과 대기실 앞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당시 아내 또한 만삭의 산모였기 때문에 새 생명을 위해 진료를 기다리는 산모들을 새치기해서까지 수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
데스크에 있던 간호사에게 명함을 놓고 가며 교수님 시간이 되시면 전화 좀 주십사 하고 돌아섰다.
돌아서서 채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간호사가 불렀다. 교수님이 그냥 지금 들어오라신다고...
염치 불고하고 교수님을 만나 여쭤 보았다.
SBS 꼬꼬무 37회 방송화면
자세히 기억은 못하셨으나, 진료기록을 보면서 말씀하셨다.
"분명히 임신한 상태의 자궁이었네요."
예상이 맞아 들어간다는 느낌을 가지고... 사실 수사팀은 부인을 의심한다며 조심스레 내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렇죠. 충분히 가능성 있죠."
순간 모든 사건이 다 해결된 듯 기뻤다.
내가 진료실에서 나오기 만을 기다렸던 우리 팀원들에게 주먹을 불끈 쥐며 “끝났어요!”라고 외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사이 다른 팀원들은 사체를 넣은 동대문 소재 T 장난감 가게 비닐봉지에 대한 수사를 통해 2004년 초 폐업한 사실을 확인했고, V 수건 또한 세트로만 판매되는 제품임을 확인해서(사체 감싼 수건은 라벨이 새것 그대로였고, 욕실에 있는 수건은 라벨이 해진 상태) 이 또한 살해 시점을 입증할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그 후, 베로니크 씨를 용의자로 특정하고, 집에서 칫솔, 귀이개, 머리빗 등 DNA 검출 가능한 물건들을 압수하여 국과수에 분석 의뢰하였고, 8월 7일 머리빗과 귀이개에서 검출된 DNA에 기하여 그녀가 영아들과 모자(母子) 관계에 있음을 회신받았다.
그러나, 수사팀은 그녀를 바로 피의자로 입건하지 않았다.
그녀로부터 직접 검출된 DNA가 아니었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녀와 일란성쌍둥이 관계에 있는 자가 그 집을 들락날락거리면서 머리빗과 귀이개를 사용했을 경우에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란성쌍둥이의 지문은 서로 다르나, DNA는 일치(학자에 따라서는 거의 일치)한다.
한치의 흠결도 없는 100% 완벽한 수사를 해야 하는데 난관에 봉착했다.
그녀로부터 조직을 채취해야 하나, 그녀는 프랑스에서 남편, 변호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범인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섣불리 요청했다가는 외교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다분했다.
SBS 꼬꼬무 37회 방송화면
다시 아내 찬스를 써야만 했다.
DNA 분석 결과를 설명하면서 부인의 생체 조직이 필요하다고 하자, 역시 공군 항공우주의료원 수술실 간호장교 출신은 달랐다.
"지난번 자궁적출 수술했다며? 그러면 파라핀 블록이라고 조직 샘플 떼어서 모아놓은 게 있을 거야." 한다.
자문 결과, 우리나라 병원에 있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적출 수술을 할 때는 나중에 환자 측의 이의제기나 소송 등을 대비하여 적출한 조직 샘플을 떼어서 파라핀 블록으로 만들어 보관한다고 했다.
베로니크 씨의 생체 조직이 보관된 파라핀 블록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파라핀 블록을 압수하여 국과수에 의뢰했다.
8월 17일.
머리빗과 귀이개에서 발견된 DNA와 파라핀 블록에서 확인된 DNA가 일치한다는 회신을 받았다.
즉, 직접 생체조직을 채취하지 않았음에도 과학수사를 통해 그녀가 영아들을 살해하고 유기했음을 입증한 것이다.
비로소 그녀를 정식으로 피의자로 입건하였다.
그 후, 프랑스 경찰은 수사서류를 요청하였고, 8월 25일 서류 복사본을 인계하였다.
수사 기록을 검토한 프랑스 경찰은 수사결과를 신뢰하지만, 확실한 DNA 검증을 위하여 두 영아의 장기 조직 샘플을 요청하였고, 9월 27일 수사팀은 국과수 냉동고에 안치된 두 영아의 간과 폐 등 조직을 채취하여 프랑스로 송부하였다.
프랑스 경찰은 지체 없이 DNA 검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우리 수사팀과 같은 결과를 확인한 10월 10일 그녀를 긴급 체포하였다.
SBS 꼬꼬무 37회 방송화면
< 한국 경찰과 프랑스 경찰 종합수사 결과 >
베로니크 씨는 두 아들이 있어 더 이상 아이를 원하지 않았으며,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직후부터 출산하면 죽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는 나중에 임신 거부증으로 확인되었다.
즉, 2002년 8월에 임신한 상태로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 그녀는 그 해 말 욕조에서 아이를 낳은 뒤 목 졸라 살해한 후 시신을 수건에 싸고 비닐봉지에 넣어서 냉동고에 유기하였다.
다음 해인 2003년 2월 다시 임신을 하고 11월에 아이를 낳아 같은 방법으로 살해, 유기하였다.
프랑스 경찰의 추가 조사로 쿠르조 씨의 한국 파견 근무 전인 1999년 7월에도 출산한 아이를 목 졸라 살해 후, 사체를 벽난로에 불태워 유기한 사실이 새롭게 확인되었다.
그녀는 영아살해 및 사체 유기 혐의로 2006년 10월 10일 긴급 체포되고, 구속 수감되었다가 2년 6개월 후인 2009년 6월 18일 투르 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그 후, 형기의 절반인 4년을 마친 2010년 5월 14일 언론을 접촉하지 않는 조건으로 가석방되었다.
이로써, 베로니크 씨가 2002년과 2003년에 각각 남아를 출산하여 바로 목 졸라 살해하고 냉동고에 유기한 서래마을 영아살해 및 사체유기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
MBC 뉴스 보도(2006. 10. 17.)
이 사건 수사로 "프랑스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얕보던 시선이 있었음을 반성해야 한다"는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의 기사를 이끌어 내기도 하였고, 한국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과학수사 역량을 세계에 알리게 된 계기도 되었다.
이 글을 빌려 부족한 점이 많았던 팀장인 나를 끝까지 믿고 사건을 맡겨주신 당시 수사과장님, 사건 해결 과정에 불철주야 고생했던 서울 방배경찰서 우리 수사팀원들과 남모르게 결정적인 역할을 해 준 아내 추 여사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