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로 Oct 27. 2024

13. 까치우는 날(3)

안다면 알고, 모른다면 모르는 여자가 눈앞에 있었다. 한바탕 추격전을 벌인 여자였다. 정녀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영 께름칙한 게 아니었으나 마냥 지나치긴 어려웠다. 아무리 미친 사람이래도 그녀는 동시에 부상자였다. 머리든, 몸이든 다치지 않고서야 다 큰 어른이 저리 아이처럼 엉엉 울 순 없었다.


“엄마, 엄마아……!”


할 수 있는 말이 저것 밖에 없는 걸까. 여자는 오직 한 단어만 배운 갓난아기와 견줄 만큼 엄마를 부르짖었다. 눈구멍이고 콧구멍이고 구분할 것 없이, 얼굴에 붙은 구멍이란 구멍에선 연신 물이 새나오고 있었다. 최루탄 구름에서 제때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관자놀이까지 온통 벌겠다. 퉁퉁 부어 올라 반쯤 감긴 눈은 꼭 밥을 주면 수면 위로 올라와 뻐끔거리는 금붕어 입술 같았다. 정녀는 여자의 사지를 살피며 물었다.


“다리가 부러졌어라?”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팔?”


또 고개를 저었다. 정녀는 작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손을 내밀었다.


“그라믄 일단 일어나셔요잉. 여그는 더 있어 봤자 좋을 게 없응께.”


그제야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울음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당장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할 듯 서럽고 서러운 소리였다. 여자는 무릎으로 서자마자 정녀를 덥석 끌어당겨 안았다.


“엄마, 엄마아……! 왜 이제 왔어, 기다렸잖아!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엄마는 나 안 보고 싶었냐고……!”


절규에 가까운 음성이 정녀의 가슴께를 축축하게 적셨다. 중간중간 딸꾹질이 잘라먹는 문장은 더 볼썽사납게 들렸다. 막힌 시야 탓에 사리분별이 안 되니 누구나의 본능처럼 엄마부터 찾는 건지, 만나는 사람마다 엄마라고 점 찍는 병이라도 있는 건지는 모호했으나 그 안에 실린 절박함만은 또렷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정녀가 눈물로 짙은 자욱이 번져가는 제 점퍼를 내버려 둔 것은. 저절로 올라간 손이 부들부들 떠는 여자의 등을 가만히, 가만히 쓸어준 것은.


“우리 큰언니가 그랬어라. 선의는 돌고 도는 거라서,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고. 오늘 운수 좋은 줄 알어요. 내가 마침 따악 몇 분 전에 그 선의를 받아서 베푸는 것이니께.”


정녀는 제 품에 폭 파묻은 여자의 고개를 떼어내고 일으켰다. 공갈빵처럼 부푼데다 눈물로 얼룩진 눈은 영 초점을 잡기 힘들어 보였다. 정녀는 하는 수 없이 여자의 손을 잡고 골목 밖으로 이끌었다.


“싸게싸게 따라오셔라.”


까까까까, 머리 위에서 까치가 울었다.


삐딱하게 지면을 내다보던 해는 어느덧 중천에 걸렸다. 정녀는 고개를 꺾어 하늘을 한번 일별하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원인은 명백했다. 모르는 여자를 덜컥 떠안았기 때문이었다.

태양에서 떨어진 정녀의 시선이 뒤를 흘끔거렸다. 두 눈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는 여자는 이따금 코를 킁킁대며 느릿느릿 굼뜬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그러면서도 꼭 붙든 손은 놓지 않았다. 땀이 차 미끄러져도 낭떠러지에서 발견한 동앗줄 마냥 몇 번이고 잡고 또 잡았다.

덕분에 점점 힘이 부쳤으나 이제 와 버리고 갈 순 없었다. 정녀는 까맣게 반질거리는 작은 뒤통수를 앞세운 채 당차게 걸음을 옮겼다. 여자는 멍에가 씌인 소처럼 잠자코 따라왔다. 아까부터 중얼거리는 헛소리만큼 참 이상한 여자였다.


“나보다 어린 엄마라니, 기분이 이상해.”

“뭣이요?”

“엄마는 어려져서도 날 지켜주는구나.”


아직도 엄마 타령을 하는 걸 보면 불치병이 확실했다. 정녀는 안타까운 마음에 쉽게 돌아올 정신이 아님을 알면서도 희망을 섞어 다독였다.


“이이, 한숨 푹 자고 나믄 괜찮아질텡께 너무 걱정하진 마셔라.”


연기의 여파로 코끝이 또 찡해졌는지 여자가 눈가를 훔치며 훌쩍였다. 정녀는 속으로 혀를 찼다. 바보, 만지면 안 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몸을 옴찔거린 여자가 작은 신음소리를 흘렸다. 정녀는 잠시 멈춰서 허리춤에 손을 얹고 돌아섰다.


“아따, 이 언니 말을 징허게도 안 듣네잉. 비비지 마라고 했잖어요. 그거 비비면 더 쎄-하당께요. 바람으루다가 날려야혀요. 불어줄텡께 쪼까 숙여봐요.”


여자는 이번에도 제 손짓을 따라 고삐 끌린 망아지처럼 순순히 움직였다. 푹 수그려진 고개가 정녀의 키에 딱 알맞았다. 정녀는 자꾸만 서로 붙으려 하는 눈두덩이를 위로 고정시키듯 잡고 후후 불었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는 굵은 눈물방울을 떨구고서 차츰 정상적으로 깜박였다.

이후 재개한 걸음엔 훨씬 속도가 붙었다. 서너 개의 논두렁을 지나자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북새통이었던 시내와는 별세상처럼 동떨어진 고요함이 공기 중을 부유했다. 바람 한 점 일지 않는 봄날 냇가의 따스한 정적이었다. 오월을 품은 시골집의 마당은 늘상 이런 정경인 법이었다.

정녀는 활짝 열린 대문을 코앞에 두고 잠시 담벼락에 기대섰다. 이토록 나른한 주말 오후에 감히 불티를 들여도 될지 망설여졌다. 제 뒤에 선 여자는 꼭 그렇게 보였다. 자칫 잘못 놓치면 산을 집어삼킬 만큼 거대하게 불어날 불티. 모든 것이 한 줌 재로 남을 때까지 태우고 불살라버릴 붉은 씨앗.


“왜 멈췄어? 여기가 집 아니야?”

“…….”


정녀는 여자를 빤히 쳐다본 끝에 대문 안으로 슬그머니 발을 들였다. 결국 작은 불씨였다. 불장난 하다 이불을 노랗게 물들일 나이는 일찍이 지났으므로 조심하면 될 일이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손짓하자 여자도 곧 쪼르르 따라 들어왔다. 정녀는 우선 아궁이 옆에 여자를 앉혔다. 계단 한 칸 정도 높이의 턱을 올라가면 간이 부엌 겸 빨래터로 쓰이는 공간이 있었다. 먼저 빨간 고무대야 속 둥둥 떠있는 바가지에 물을 한가득 담아 여자 앞에 내려놓았다.


“일단 세수부터 하셔라. 지금 꼴이 여간 말이 아니랑께요.”


여자는 고분고분 손을 움직여 바가지에 담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곧 찰박거리는 소리가 연거푸 떨어졌다. 그러나 정녀는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아따, 그라고 깔짝거려서 때가 잘도 벗겨지겠어라.”


손바닥을 오목하게 오므려 물을 퍼올린 정녀가 그대로 여자의 얼굴에 문질렀다. 여자는 질끈 눈을 감았다. 정녀는 아랑곳 않고 주름진 눈가와 찡그린 콧등, 옴팡지게 다문 입술까지 여무지게 문대고서 한 쪽 콧구멍을 틀어막고 쥐었다.


“흥 혀요, 흥.” 


여자가 소심하게 콧바람을 내자 정녀는 더 크게 하라며 다그쳤다. 여자는 마지못한 기색으로 흥 소릴 냈다. 정녀는 반대쪽 콧구멍도 똑같이 풀어준 뒤 물을 버린 바가지를 다시 대야에 던져 넣었다. 막 허리를 펴기가 무섭게 대문의 경첩이 쇳소리를 냈다. 그 사이로 군청색 고무신이 들어섰다.


“정녀야, 국시 삶게 솥에 물 좀 채워라. 안에서 찬지름이랑 고치장도 가져오고.”


정녀가 퍼드득 여자 앞을 가로막듯 튀어나왔다. 물론 여자를 가리기엔 한 뼘이나 부족한 키였다. 새참을 준비하러 온 건지 곧장 간이부엌으로 들어선 엄마는 제 정수리 위로 솟아 있을 얼굴을 발견하고 물었다.


“야는 누구냐?”

“그게 말이지라…….”


엄마는 선반에서 그릇을 꺼내고, 항아리에 꽂혀있는 대파를 한 줄기 뽑아 씻었다. 마땅히 신경쓰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한 동네 사람들끼리라면 서로의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판이었다. 가족 외의 누군가가 집에 있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단순히 처음 마주한 얼굴이기에 물어본 것일 터였다. 그러나 여기서 더 머뭇거렸다간 의심받을 수 있었다. 정녀는 엄마가 한 번 더 묻기 전에 서둘러 입을 뗐다.


“내 친구.”


그러나 답한 목소리는 제 것이 아니었다. 정녀의 시선이 그 짤막한 마디만 떨어뜨리고 현관으로 직행하는 키 큰 뒷모습을 좇아 붙었다. 저를 홱 지나쳐간 첫째언니의 등에선 매캐한 냄새가 났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 지독하게 맡은 냄새였다. 다시 기침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고개를 돌리자 여자도 손으로 코와 입을 덮고 있는 게 비슷한 처지 같았다. 정녀는 여자의 팔을 쥐고 옥상으로 통하는 구석 계단으로 이끌었다.


“참말로 정원 언니랑 친구여요?”


목소리를 죽인 채 소곤거리니 여자의 커다란 눈망울이 한껏 벌어졌다.


“방금 들어간 사람 말하는 거야?”

“그려요, 정원언니요.”

“이름이 정원이라고?”

“아니, 친구라믄서 우째 이름도 모른대요. 정말 우리 큰언니랑 아는 사이 맞어요?”

“아, 그게, 다른 이름으로 잘못 들은 줄 알았어. 아직 머리가 울려서…… 그래, 그렇지. 정원. 정원…….”


여자는 큰언니의 이름을 되풀이하다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꿈이 참 지독하다느니, 어처구니가 없다느니 중얼거린 것도 같았다. 정녀는 여자의 어깨 너머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엄마를 흘끔거리고 다시 여자와 눈을 마주쳤다.


“지는 인자부터 엄니 도와야 해서 바쁭께, 큰언니랑 같이 놀고 있으셔라. 눈이 연즉 따가우면 치약이라도 바르고요.”

“그럴게, 고마워.”

“참, 화장실은-”


아직 제대로 일러주지도 않았건만 여자는 알아서 마늘이 주렁주렁 걸린 통로를 따라 걸어갔다. 화장실은 집 안과 밖이 이어진 곳에 있었다. 그 위치가 다소 애매해,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죄 헤매곤 했다. 일전에 방문한 전적이 있지 않고서야 저리 단번에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더구나 여기선 바깥 통로를 이용해 가는 게 더 편했는데, 여자는 그를 당연히 아는 사람처럼 곧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정말 언니랑 친구인갑네.”


그렇다면 제 이름을 알고 있는 것도 납득이 갔다. 안에선 과묵하지만 밖에선 말 많은 큰언니에게 들었으리라. 종종 언니를 보러 대학교 앞으로 찾아갈 때면 보는 광경이 있었다. 정원 언니는 벌건 쇳덩이를 무수히 두드려 만든 동상 같았다. 그런 단단한 모습으로 교문 위에 서서 소리치곤 했었다. 열성을 다해 목에 핏대가 울끈거리도록 소리쳤다. 온통 어려운 단어들 투성이인 문장이 콩알탄처럼 탁탁 터졌다. 정녀는 열심히 귀를 기울였지만, 늘 쉬이 주워 먹지 못할 부스러기 마냥 귓바퀴에서 미끄러졌다. 하나 그 한 단어 한 단어가 품은 열기는 남달랐다. 그건 뭣 모르는 제 가슴에도 이따금 불을 지필 만큼 뜨거운 것이었다.

그런 멋진 언니가 어쩌다 저런 여자와 친구가 되었을까. 고심하며 손을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새참 준비가 끝나버렸다. 정녀는 엄마가 남겨놓고 간 멸치국수 두 그릇을 쥐고 현관문을 등으로 젖히며 들어갔다. 정원 언니는 그 여자와 함께 거실 텔레비전 앞에 서있었다. 언니의 시선이 잠시 국수그릇에 머물렀다 떨어졌다. 언니는 여자의 등을 제 앞으로 밀어 보내며 말했다.


“둘이 먹고 있어. 야는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낼 텡께, 니 이부자리 옆에 비개 하나만 더 꺼내주고.”

“언니는?”

“다시 나가야 혀.”

“어딜?”

“…….”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언니는 단지 가방을 들쳐 메고 막 들어온 자신과 교대하듯 떠났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신발도 구겨 신은 채였다. 정녀는 하는 수 없이 개다리소반에 국수를 놓고 앉았다. 겸연쩍게 눈치를 보던 여자가 부엌에서 수저를 챙겨왔다. 그릇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먹어요. 식으면 맛 없응께.”


정녀가 먼저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뽀얀 면발은 돌돌 말아 올림과 동시에 후루룩 소릴 남기고 입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처음엔 머뭇거리던 여자도 몇 번 맛보더니 종국엔 그릇 채 들고 들이켰다. 그릇은 순식간에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한 바닥을 보였다. 두 손으로 그릇을 턱 내려놓은 여자가 만족스러운 숨을 깊이 내쉬었다. 정녀는 뿌듯하게 웃었다.


“맛있지라? 우리 엄니 국시는 지나가는 개가 냄새만 맡아두 환장한당께요.”

“진짜, 할머니가 해준 거랑 맛이 똑같아.”

“언니 할머니도 음식을 잘했는갑네.”

“……뭐, 그렇지.”


여자의 낯빛이 미묘해졌다. 꽁꽁 숨겨둔 이야기가 꾹 다문 입술 위로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정녀는 젓가락 끝을 잘근거리다 결국 툭 물었다.


“아까 봉께 엄니를 그래 찾드만요.뭔 일 있어라?”


여자의 얼굴에 한층 더 짙은 먹구름이 꼈다. 겨우 겨우 어르고 달래 재운 아기를 공연히 깨워버린 기분이 들었다. 묻지 말 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올 즈음 답은 돌아왔다.


“엄마는 안 계셔. 돌아가셨어.”


역시 묻지 말 걸 그랬다. 제겐 아직 너무 어려운 주제였다. 정녀는 죽음을 몰랐다. 자신이 눈앞의 여자보다 한 뼘은 더 키가 커지고, 다시 꼬부랑 할머니로 쪼그라들다 끝내 뼛조각으로 땅 속에 묻힐 때까진 모를 터였다. 하지만 영영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가는, 아주 아주 긴 여행이라는 건 알았다. 그게 엄마라면 몹시 슬플 거라는 것도.


“아부지는요?”

“같이 안 살아.”

“그럼 언니오빠나 동생하고만 사는 거여요?”

“나밖에 없어. 외동이야.”

“신기혀라. 그럼 혼자 살어요?”

“응.”


이번엔 대답이 훌떡훌떡 나왔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그 간극이 요상스럽게도 정녀의 가슴께를 쿡쿡 쑤셨다. 정녀는 혼자가 되어본 적이 없지만, 그게 얼마나 쓸쓸한 일일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지금처럼 마주보고 밥을 먹을 수도, 만화를 보며 같이 낄낄댈 수도, 잡은 메뚜기 수로 대결을 펼칠 수도 없었다.


“거 외로웠겠어라.”


여자는 더 대꾸하는 대신 비운 그릇을 겹쳐 들고 일어났다.


“글쎄, 별로. 난 혼자가 더 좋아.”


여자는 부엌으로 향하다 상다리를 접는 정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중에 또 만나면 그땐 내가 김치찌개 끓여줄게. 오늘 보답으로.”

“아따, 내가 김치찌개를 제일 좋아하는 진 우째 알았대요.”

“그냥 그럴 것 같았어.”


여자가 웃었다. 오늘 만난 이래로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쑤셨던 심장은 이제 간지러워졌다. 정녀는 여자가 설거지를 할 동안 소파에 드러누워 있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이전 12화 12. 까치 우는 날(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