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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돌비 Apr 16. 2022

카톡 프로필에 꽃 사진 걸어두면 OO인증


백련산이 끝나는 곳에는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산을 올랐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바다 건너편 섬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전망대 1층, 2층 모두 자리가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지나쳐야 했다. 하지만 아쉬워하기도 전에 걸어온 나무데크 길이 아름답게 꾸려진 연못정원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사극에서 본 것처럼 벚나무가 흔들리는 정자와 연못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가 멋져 연신 감탄을 하며 걸었다. 거기는 동네에 마련된 생태학습 공원이었다. 바다 바로 옆이니 아무리 연못처럼 꾸며놨다고 한들 그 안에 든 건 바닷물이라고 생각했으나 연못 안에는 동그란 모양의 키 작은 수련이 자라고 있었다. 키가 하도 작아서 아직 물속에 잠겨 있는 수련은 <수련>이라는 팻말보다 <수련 중...>이라는 팻말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수련 중인 수련들, 소금쟁이가 쉬어가는 쉼터가 된다.

그리고 공원 안은 벚꽃놀이가 한창이었다. 영종도의 가로수는 모두 벚나무였던 걸까. 우연히 들린 나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벚꽃을 보러 일부러 찾아온 것 같았다. 벚꽃은 아직 절반 정도만 피어있는 상태라 다들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는데, 말로는 아쉽다... 아쉽다... 하면서도 연신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는 벚꽃보다 진달래 군락이 더 마음에 끌렸는데, 지난번 송산에서 겨우 한 송이 펴있는 진달래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사진을 찍어둔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감동스러운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내 옆을 지나가는 젊은이들이


‘이런 거 찍어서 프로필 사진에 걸어두고 그러면 늙은이 인증..’


이라며 마음 아픈 소릴했다. 나도 이모와 고모의 프로필 사진이 전국 팔도 꽃 사진으로 바뀌어 가는 걸 보며 자랐기 때문에 공감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특정 세대의 감성으로만  치부하기엔 꽃이 너무 예쁘지 않은가? 젊은이들 중 한 명은 그런 소릴하며 꽃무늬가 수십 개는 프린팅 된 하늘하늘한 쉬폰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꽃무늬 옷은 좋아하면서 프로필 사진에 진짜 꽃을 걸어두는 걸 왜 창피하게 여기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주말이 끝나기 전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벚꽃나무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 카톡 프로필로 걸릴 게 뻔한데 말이다.


바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신시모도

공원 중간엔 바다 전망대로 향하는 다리가 나있길래 건너갔다. 그 끝에는 바다의 경계를 알리는 방파제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방파제 턱 위에 다리를 내리고 앉아 건너편의 섬을 아련하게 바라봤다. 수평선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곳에 저마다의 간격을 두고 모여 앉았다. 맥주 한 캔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혼자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있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한 방향을 보고 앉아 있는 모습이 어쩐지 가로등 위의 갈매기들 같아서 웃기고 귀엽기도 했다. 잠시 머물고 싶었으나,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기세에 질려서 금방 일어나야 했다.


다시 공원으로 돌아가 걷는데 어느 순간부터 세평숲이라는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샛길로 샌 산책이었는데 결국엔 백련산과 세평숲까지 돌고 돌아 원하던 곳까지 찾아온 게 내심 즐거웠다.  인생을 지도처럼 펼쳐놓자면 난 지금쯤 마음이 끌리는 샛길로 들어왔다가 방황하는 중인 것 같은데, 이날의 산책처럼 결국엔 원하던 목적지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면 좋겠다.


지난주 옥수수 상태였던 세평숲 목련


세평숲 목련도 피었을까? 궁금해져 얼른 목련나무가 있던 곳으로 찾아갔는데 내 궁금증에 답이라도 하듯 커다랗고 하얀 목련꽃이 웃는 얼굴처럼 활짝 펴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목련 사진을 찍고서는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일요일이 끝나가는 밤이 되었고, 친구들의 카톡 사진을 죽 훑어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 사진이 업데이트되었다는 표시로 이름마다 빨간 동그라미가 떠 있더라. 하나씩 눌러보니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전부 벚꽃나무 아래서 찍은 사진이었다. 코로나가 끝나가는 시기에 맞이한 벚꽃이라 다들 신이 난 것이겠지만, 한편으론 내 또래 친구들이 다 같이 ‘프로필에 꽃을 걸어두는 나이’로 진입해버린 게 아닌가 싶어 뜨끔하기도 했다.


하하하 웃는 것 처럼 활짝 핀 세평숲 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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