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 후 남은 것
실기 시험을 앞두고 돌연 커피학원이 휴강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인천에도 코로나가 번지고 있었다. 얼마 전 길을 걷다가 ‘영종도 주민 10만 명 돌파’라는 플랜카드를 보았다. 인구가 늘어난 것을 도 차원에서 축하하는 게 웃기기도 하고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이 거리마다 현수막을 걸어두는 방식인 것도 재밌었다. 한편으론 전입신고도 하지 못하고 영종도에 사는 나도 저기 10만 명 안에 들어갈까? 궁금하기도 했다. 가끔가다 엄마가 ‘인천에 코로나 확진자가 엄청 많아졌대’하고 걱정스레 보내온 카톡에 나는 설명 없이 ‘여긴 괜찮아요’하고 답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인천에 산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론 은밀하게 인천과 영종도를 구분 지었다.
그렇지만 영종도는 괜찮다는 내 믿음과 다르게 부재중 통화와 함께 ‘커피 학원입니다. 문자 확인하시면 전화 주세요.’라는 갑자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전화 중에 들려온 이유는 영종도 내 코로나 감염 확산세때문이라고 했지만 별로 납득이 가진 않았다. 코로나가 심각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이상한 낌세가 느껴져 ‘수강생 중에 감염자가 있나요?’하고 물었지만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일주일 간 휴강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강생은 아니고 선생님들이 줄줄이 코로나에 걸린 거였다.
긴 코로나 연휴를 지나 학원이 다시 문을 열었다.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오픈북으로 진행되는 필기 시험지를 받아왔다. 눈에 띄게 햇살이 좋은 날 나는 간만에 발코니가 있는 집을 누리며 햇빛을 만끽했다. 하얀 테이블을 들고 나와 하얀 시험지를 펼쳤다. 그러나 해가 너무 강해서 글씨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창 아래 내려다 보이는 도로에는 사람들이 겨울 내 숨겨둔 형형색색의 자전거를 꺼내 하나 둘 거리로 나왔다. 영종도에 살기 위해선 자전거 한 대씩을 보유해야 하는 법이라도 있는 듯했다. 10만 명 안에 내가 들었는진 모르겠지만, 운서동 주민이라면 이런 날씨 좋은 날 집 밖에 있는 건 불법인 게 분명했다. 나는 책상을 대충 치워놓고 얼른 공원을 향해 걸었다.
거리에 걷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이날만큼 부러웠던 적도 없었다. 자전거 탄 사람들이 하나 둘 내 옆을 지나쳤고, 나를 지나친 건 자전거뿐만이 아니었다. 전동 휠체어 한대도 있었는데 내 걸음보다 빨랐다. 그 휠체어는 주행 연습 중인 듯했다. 나이 든 어머니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그 뒤로 세그웨이를 탄 딸이 따라붙었다. 저 뒤에서부터 나를 보고는 ‘엄마! 사람 있으니까 오른쪽으로 붙어!’하고 소리쳤다. 나는 얼른 푹신한 자전거 도로를 벗어나 잔디를 밟지 않으려고 껑충 뛰어 인도로 넘어갔다. 딸은 멀리서 나에게 ‘고맙습니다.’하고 말했다. 자전거 도로를 침범해 걷던 건 나인데 말이다. 우리 셋은 모두 속도가 느려서 어쩌다 부딪힌다고 해도 아무도 다칠 일이 없어 보였다. 내가 한편으로 빠지자 딸은 ‘엄마! 속도 좀 내봐!’하고 부추겼다.
그다음 자전거 종소리를 흘리며 지나간 사람도, 앞서간 두 모녀도 모두 횡단보도 신호에 걸렸다. 셋이서 말을 나누는 걸 보니 모두 한가족인 듯했다. 신호가 바뀌자 자전거에 탄 아주머니가 ‘엄마 이제 출발해!’하고 외쳤다. 세그웨이를 탄 딸은 저 앞에서 횡단보도 턱이 있는지를 확인하느라 이미 멀어져 있다. ‘여기 턱을 올라와, 좌회전, 좌회전!’하고 외치는데 얼마 전 내 운전연수가 생각나 웃음이 났다. 나이가 들어도 운전을 배워야 한다니! 아무 진전 없는 내 운전실력을 떠올리는 와중에 세 모녀는 내 걸음걸이로는 쫓기 어려울 정도로 저 앞으로 멀리 사라져 갔다.
드디어 마지막 수업. 아쉬움보다는 얼른 하나를 끝내고 뭔가를 성취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몇 달간 내가 이룬 건 아무것도 없었고 그나마 한 달 동안 착실하게 수업을 들은 덕에 바리스타 2급 자격증 하나가 생길 예정이었다. 장담은 못하지만 60점만 넘기면 된다고 하니 그리 어려운 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걱정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내 앞자리 사람이었는데 실습 내내 실수도 잦고 겁도 많아서 혹여나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시험날이 되었을 때 정성스럽게 하얀색 셔츠를 입고 온 앞자리 사람을 보고 결국엔 잘 될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전 주엔가 선생님이 원래는 정해진 시험 복장이 있다고 말했다. 하얀색 셔츠에 검은색 슬랙스 그리고 구두인데 필수는 아니라고. 흘리듯 던진 그 말을 앞자리 사람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난 항상 10과 12 같은 뒷번호를 뽑았는데 시험날엔 2를 뽑았고, 보기 좋게 카푸치노 거품 만드는 걸 망쳤다. 엉망이 되어 올라간 거품을 보고 그냥 마셔서 입 속으로 숨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는데 침착한 마음으로 라떼까지 만들어 내었다. 다행히 수강생 모두가 통과를 했고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얻어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걸 가진다고 해서 무언가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수업 종료를 알리고 사람들은 모두 헤어졌다. 나와 커피 친구는 마지막으로 시험 통과를 축하하며 오후 1시가 넘은 시각에 브런치를 먹었다. 집 앞에 내려주던 커피 친구가 아쉬워했고 나는 또 보자는 말을 하고 내렸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것 같았지만 생각해보니 수업이 끝나고도 만날 수 있는 친구를 얻었다.
그리고 집 앞에 도착하니 문 앞에 거대한 택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주를 고민하다 덜컥 구입한 자전거였다. 박스로 차마 다 가리지 못한 핸들 부분이 상자를 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얼른 집으로 들어가 슬리퍼로 갈아 신고 커터칼을 들고 나왔다. 복도에서 상자와 노끈 그리고 비닐 해체작업이 시작되었다. 움직일 때마다 딸랑거리는 차임벨 소리가 울려서 복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궁금한 사람들이 자꾸 문을 열어 확인했다. 분리수거를 세 번에 걸쳐 나눠버리고 나자 알맹이 자전거만 남았다. 휘어진 곳은 없는지 체크하며 살살 페달을 밟았는데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땅에서 발이 떨어진 채로 움직이는 것, 스스로 갈 곳을 정해 그대로 직진하는 것 말이다. 커피 수업은 끝이 났지만 자전거 하나로 새로운 여행이 시작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