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친구는 트렁크에서 긴 등산용 스틱을 꺼냈다. 지난번 백운산 등산 때 내 걸음걸이가 시원치 않았나보다. 나는 커피친구의 철저한 준비성에 또 한번 놀라며 트레킹을 시작했다. 우리는 무의도를 찾아갔다. 나는 혼자서 영종도의 많은 곳을 걸어다녔다. 남들은 차를 타고 가볍게 방문하는 곳을 차가 없다는 이유로 부지런히 걸으며 경험했다. 어떤 사람은 혼자 걷다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머리가 가벼워진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방법을 터특하지 못한것 같다. 워낙 고민도 상상도 많은 사람인 나는 혼자있는 순간엔 끊임없이 생각을 한다. 들숨에 희망찬 기대를 하고 날숨엔 현실적인 걱정을 한다. 꼭 걸을때 뿐만이 아니다. 마음을 비우려고 호흡 명상법이라는 걸 여러차례 시도해봤지만, 가만히 앉아서 숨을 쉬고 숫자를 세면서도 내 정신은 찾을 수 없는 생각의 중심으로만 향했다.
무의도 산책은 등산스틱은 필요없을 정도로 수월했다. 같이 걷는 사람이 있으니 목적지를 향해가는데 속도가 붙었다. 혼자 걸을때는 이거저것 두리번거리며 감상하느라 한나절이 걸렸는데 누구가와 같이 걷다보니 생각에 잠기지 못하고 걷는데만 집중했다. 커피친구도 나도 말수가 적은 편이라 이렇다 할 대화도 없었다. 그렇게 산속을 걷다가 바다가 보이는 작은 돌해변에 도착했다. 입구에 설치된 안내문을 보니 스마일 게 괄호 열고 도둑 게라는 이름을 가진 게가 사는 곳이었다. 게의 몸통에는 :) 이런 모양의 얼굴이 그려져있었다. 나는 도둑 게라는 명칭을 보고 밥 도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했다. 하필 며칠 전에 게장을 시켜먹었다. 가끔 느끼기에 인간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위선같다. 아끼고 소중히 다루는 생명체를 먹고 뜯고 소장하며 인간의 편의와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다가도 어느 순간엔 다시 그 안에든 생명의 가치를 느끼며 아름다워한다. 인간이 낼 수 있는 공감의 범위를 어느 정도까지 넓혀야 하는지 매번 고민하게 만든다.
스마일게의 등껍질에 그려진 미소를 떠올리며 돌로 덮힌 해변으로 걸어들어갔다. 해안선이 움푹 파인 곳에 마련된 작은 해변인데 그 크기가 부잣집 거실 정도 되어보였다. 나는 평화로운 바다를 눈앞에 두고 습관처럼 ‘이곳에 카페를 차린다면’으로 시작하는 상상을 했다. 터무니 없었지만 커피 수업이 끝나가는 시점이니 예전보다는 현실감이 있는 빈소리라고 할 수 있다.
사람 두명이 얼쩡거리는데도 새들은 커다란 돌 위에 자리를 잡아 고고하게 앉아있었다. 사람이 거기까지 건너오려면 돌틈에 발목을 몇번 삐끗해야 도착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것 같았다. 돌 위에는 구불구불한 테두리의 굴껍질도 가득했다. 나는 돌에 다닥다닥 붙은 굴껍질을 바라보면서도 내가 먹는 굴이 이런 곳에 들어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에서는 어디서 본듯한 굴캐는 장면과 손바닥 하나를 채우는 석화껍질이 혼란스럽게 겹쳐지고 있었다. 그에비해 내 눈앞에 있는 굴껍질은 아주 작았다. 이게 정말 굴일까?하며 돌을 들여다보자 커피친구는 당연한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돌 하나를 들고와 석화껍질을 떼어냈다. 정말로 그 사이에 아주 작은 말캉말캉한 굴이 들어있었다.
내가 신기해하며 돌과 굴껍질에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저 멀리까지 걸어갔던 커피친구가 주먹 쥔 손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뭔가 신기한 걸 보여주려는 사람같이 의기양양하고 장난스러운 표정과 함께였다. 뭐냐고 묻기도 전에 커피친구는 주먹 쥔 손을 폈는데 거기에는 커피콩 만큼이나 작은 새끼 게 두 마리가 두 인간의 시선을 피하느라 좌우로 도망가는 중이었다. 나는 신이나서 와!하고 감탄을 했고 새끼 게 한마리를 내 손바닥으로 옮겼다. 게는 더이상 피할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내 손에 올라와서는 가만히 멈춰만 있었다. 나는 자세히 들여다도 보고 손으로도 살짝 만져봤는데 이렇게 작은 곳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인간으로 살기위해 만들어진 내 몸체가 너무 불필요하게 거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입고온 경량패딩과 조끼와 목폴라 티셔츠까지 뭐하나 가벼운게 없었다. 가방에 두짝 모두 성한 등산스틱까지. 커피 친구가 챙겨온 물 세병 중 한병은 내 손에 들려있었다. 나는 짐을 재정비하기 위해 작은 게를 바위 아래 물가에 풀어주었다. 죽은 듯 멈춰있던 게지만 살던 곳으로 돌려놓으니 생기가 돌았다. 패딩을 허리에 묶고 팔을 걷고 가방에 물통을 구겨넣는데 커피친구가 또 다른 게를 잡아왔다. 이번엔 아까보다 커서 십원짜리 동전만했다. 내가 어디서 이렇게 자꾸 맨손으로 게를 잡아오는 거냐고 물었더니, 이런 돌밑에 게가 산다고 했다. 그러고는 직접 보여주려는 듯이 발밑의 무거운 돌을 뒤집었다.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정말 게들이 살았다.
항상 자연속에 산다고 생각했지만 무거운 돌을 들어 뒤집을 일은 없었다. 게를 손에 얹을 일도 없었다. 지난 몇년의 도시살이를 되돌아보니 나는 정돈된 세상을 관찰하듯이 살고 있던 것 같았다. 다른 누군가 굴을 캐는 걸 바라만보고 마트에서 생굴을 사먹는 그런 삶 말이다. 우리는 몇번 더 맨손으로 게를 잡았다가 놓아주길 반복했다. 우리가 풀지 못한 의문은 이것들이 모두 스마일게인가?하는 궁금증이었는데 안내문의 그림과 다르게 몸통엔 스마일 모양이 그러져 있지 않아서였다.
스마일 그림이 일러스트레이터의 상상력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몇해 전 겨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렸다가 스마일게라는 걸 판매하는 걸 본적이있다. 애완동물을 파는 코너였는데 그 게들의 등껍질에는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게 빙그레 웃는 모양이 그러져있었다. 하나만 봤을 땐 신기했고 나도 따라서 미소가 지어졌지만, 아크릴 상자가득 우글우글한 게들이 서로의 몸에 엉켜서 발버둥 치는 와중에도 도장처럼 찍혀있는 미소가 보이는 걸 보고 징그러운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스마일 무늬가 있다는 이유로 애완용 게로 데려가 키우려고 하는 인간의 마음도. 무의도에 살고있는 스마일 게들은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 수 있으니 그런대로 축복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