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갈매기의 수주대토
한참을 무의도에서 걷다가 건너편 실미도로 넘어갔다. 계획엔 없었는데 때마침 간조 때라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이 보였다. 실미도엔 별다른 게 없었다. 일단 바닥에 깔린 돌 때문에 걷기가 쉽지 않았다. 매번 발 밑을 보며 끼이거나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걸어 들어가다가 색다른 풍경을 찾지 못해서 이제 돌아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한쪽에 돌탑을 쌓은 구역이 있었다. 커피 친구는 우리도 돌탑을 쌓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전문 돌탑 용역처럼 부지런히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평평한 돌을 찾아 차곡차곡 올렸다.
바위에 우리가 쌓은 돌은 9층짜리. 완성 후에 나는 실미도 9층 석탑이라고 이름 붙였다. 워낙 형형색색의 돌무더기 섬이라서 그런지 산길에서 본 돌탑보다 예뻤다. 나는 주머니를 털어 아까 무의도에서 집어온 석화 껍질 두 개로 장식을 했다. 실미도 9층 석탑 석화 장식. 완성된 돌탑을 바라보며 각자의 소원을 빌었는데 커피 친구는 퇴사하게 해달라고 빌었고 직후에 나는 취직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석탑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본 위치에서 우린 서로 정반대 되는 소원을 빌며 그 모습이 웃겨서 웃었다. 돌탑이 헷갈린 나머지 소원을 거꾸로 들어주면 어떡하지. 실미도를 떠나려고 멀리 걸어 나가며 뒤돌아봤다. 파도가 들이치면 금방 무너질 위치에 보란 듯이 쌓은 것 같았다. 하지만 높이와 조형미를 생각하면 그만한 돌탑도 없었다. 글을 쓰다 보니 아직 남아있을까 궁금해진다. 나와 커피 친구의 소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트레킹을 마치고 무의도 안에 있는 하나개 해수욕장에 갔다. 하나개의 개자가 게가 아니라는 사실에 적잖이 실망했지만, 돌밭을 걷다가 고운 모래가 깔린 해변에 도착하자 푹푹 꺼지는 그 부드러움에 금방 즐거워졌다. 해변에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 앞에서는 누군가 마른 바다에서 서핑보드를 연습하고 있었다. 우리는 해변 입구에서 호떡과 핫도그를 사 먹으며 걸어왔다. 갈매기들은 음식을 든 인간들을 두고 구역 싸움을 시작했다. 먹을 걸 나눠줄 생각도 없는데 말이다. 싸움에서 이긴 갈매기 한 마리가 우리랑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 자리를 잡고는 바다를 보는 척하면서 내 입에 들어가는 호떡을 힐끔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다 먹은 핫도그의 나무막대로 모래 가져가기 게임을 했다. 호떡이 담겨있던 종이컵으로 무너지지 않는 흙 케이크를 만들었다. 그 위에 조개껍질을 올려 장식하니 제법 인스타에서 팔 것 같은 디저트 모양새가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갈매기는 끈질기게 우리 구역을 맴돌았다. 그쯤 되자 갈매기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래 기다릴 줄 알았으면 호떡을 좀 남겨줄걸 그랬어요.’ 내가 말했다. 커피 친구는 오늘만 해도 이런 방식으로 호떡 하나는 먹었을 거라고 했다. 그렇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갈매기들에게 음식을 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에 비해 갈매기의 수는 무지 많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배가 고픈 거라면 바다에 가서 물고기를 낚아먹는 게 더 빠를 텐데 왜 사람 앞에서 기웃댈까? 나 혼자 답을 내리기론 아마 인간의 음식이 그만큼 맛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했다. 아마 우리가 몸에 안 좋은 간이 센 음식을 찾아 먹는 것처럼 갈매기들도 인간이 먹는 음식이 가끔 즐기는 별미이자 특식인 것 같다고. 커피 친구는 내 말을 듣고 웃었는데 어이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공감의 웃음인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배가 고파져서 모래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저 멀리 걸어가는 걸 보고 나서야 갈매기도 포기하고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섬을 빠져나가기 전 골목을 드라이브하다가 갯벌에서 해루질을 하는 사람들을 봤다. 차림새로 보아 마을 주민들 같았는데, 웃긴 건 드문드문 갯벌을 캐는 사람들 옆에 갈매기 한 마리가 애완동물처럼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풍경이었다. 먹을걸 달라고 보채는 것도 아니고 이 사람 저 사람 기웃대며 먹을걸 찾는 것도 아니고 인간 한 명 씩을 골라서 그 옆에 딱 달라붙어 먹을 것 하나 던져주기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더 웃긴 건 그런 갈매기를 굳이 내치치 않는 사람들이었다. 갈매기의 전략은 가만히 붙어 서서 인간이 보내줄 애정이 상상에서 현실이 될 때까지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 점잖은 인내심 덕에 물고기 몇 마리는 받아먹었을 것이다. 물론 하얗고 동그란 귀여운 생김새도 한몫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