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수광부 Sep 21. 2024

#15. 끼워 맞춰진 조각들

*소설입니다.




그녀의 통화상대는 여자였다. 옆자리라 상대방 목소리까지 살짝살짝 들려왔다.  


“어디야?”

“집에 가는 중.”


"뭐 하다가?"

"민중이랑 있다가."


그녀는 민중이랑 무언가를 하다 늦었던 것 같았다.


“대단해. 아직도?”

그러네.”


“꼬리가 길면 밟혀.”

“너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몰라.”


나도 이제 그녀의 비밀을 알 것 같았다.


“민중이는 이혼하란 소리는 안 해?”

“굳이? 지금이 좋아.”


“혹시 너 일부러 애 안 갖는 거야?”

“아니라고는 말 못 하고.”


비밀의 그림자는 제법 컸다.


“별이 너도 참 악한 기집애야."

“내가 좀 그렇지?”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참 불쌍하네.

이젠 애 얘기는 안 꺼내.”


얼굴도 모르는 어느 집 남편에게 측은지심이 생겼다. 오늘 태운 세 팀을 보고 있자니 아찔했다. 대한민국은 불륜 천국이었다. 대리운전기사는 투명 인간이어야 하는데 참기가 쉽지 않았다.


“끊자. 우리 허니한테 전화 온다.”   


참기 힘든 대화는 곧 판도라의 상자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릴 것 같았. 그녀는 친구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Honey'인지 '헌이'인지의 전화를 받았다. 사실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맘에 들지 않는 그 '별'이라는 고객을 주차장에 모셔다 드렸다. 밝은 곳에서 그 여자 얼굴을 보는 순간 뭔가가 떠올랐다. 이 주차장과 그녀 얼굴이 모두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팁을 주려는 듯 가방을 열었고 그때 내 기억 속 뭔가가 와르르 쏟아졌다. 


소파 위에 있었던 그 가방! 


그녀는 그 가방 속에서 현금을 꺼냈다. 비밀 유지의미인지는 몰라도 팁까지 주고는 바쁘게 걸어가더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대게와 술을 시켜 신분증 검사를 했던 그 집 여자.’

오늘 나에게 있었던 일들과 운수 좋은 날에 있었던 일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그 퍼즐들이 짝을 맞춰갔다.


'이 아파트 주차장에서 환한이라 착각한 그 남자를 보았지. 그 남자가 타고 갔던 딥블루 미니쿠페, 그 쿠페차량 뒤에서 본 'Shining star'라는 스티커를 나는 킵스텍에서 보았어. 그리고 방금 내가 태운 별이라는 여자의 차도 BMW 미니 쿠페 레드야.'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차 후미 쪽으로 향했다.     


‘Shining star?’


그녀의 차 뒷 유리창에도 그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남자의 차량 스티커와는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두 스티커를 합치면 커다란 사랑의 하트가 완성되었다. 미니쿠페 딥블루와 레드는 커플카였다. 둘은 부부였나?


'Shining star... 빛나는 별, 반짝이는 별. 환한+별?'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때 그 남자가 너였어? 아니지?'


'별'이라는 여자의 남편이 환한이라는 확신이 들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너였어? 너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잖아.'


퇴근하는 버스에서 나는 줄곧 그 남자를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수면제 대신 따뜻하게 우유를 데워마셨다. 그리고 한참을 뒤척이다 스르르 잠이 들었고 꿈을 꿨다. 서준이가 집에 온 기척에 잠에서 깨어 생생했던 꿈속 이야기를 블로그에 적기 시작했다.  



 HH와의 이야기
 #4. 캠퍼스 잔디밭에서


우리 둘은 학생회관에서 밥을 먹고 잔디밭에 앉아서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면서 노닥거렸어.  갑작스레 어제 일이 떠올라 내가 말을 꺼냈어.


"나 어제 복학생이랑 소개팅한 거 알아?"

". 지금 알게 됐네."


"또 꽝이야."

"이번엔 또 왜?"


나는 뾰루뚱 했고 너는 실룩거렸어.


"얼굴은 괜찮았는데, 말이 안 통해."

"그쪽은 너 마음에 들어 하고?"


"뭐, 내가 계속 시큰둥하게 톡톡 쏘니까 기분 나빠진 표정."

"왜 또 복학생들한테 상처 주고 그래."

 

"다들 군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기껏 나라 지키고 왔더니 구박이나 당하고. 불쌍한 형들."


"난 진짜 소개팅 체질은 아닌가 봐."

"그럼 뭐 어떤 체질인데?"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전략으로 가야겠어."

"니 성격 받아 줄 친구는 있고?"


"야, 나 인기 많거든."

"근데 왜 맨날 나랑만 놀아? 난 또,  성격 때문에 애들이 안 놀아주는 줄 알았네."


"이 미모에 친절하기까지 하면 똥파리들이 너무 꼬여. 그래서 조절하는 거야."


한참을 낄낄거리고 놀고 있는데 너에게 문자가 왔어. 너는 그걸 보고 살짝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지.


"뭔데?"

나는 네 휴대폰을 집어와 문자 내용을 확인했어.


오빠, 6시에 놀이터에서 볼 수 있어요? 할 말 있어요.


“얘가 너한테 고백하려나 봐. 오올~ 환한이 인기 많네.”

“휴대폰 내놔.”


“내가 답장 보낼까?”

“백수민, 좋은 말로 할 때 내놔라. ”


그렇게 장난을 치다가 너의 휴대폰이 휙 하고 아스팔트 차도로 날아갔어. 하필이면 차가 그때 지나가서는 네 휴대폰은 완전 박살이 났어. 나 때문이어서 너무 미안했지. 급하게 너를 데리고 휴대폰 대리점으로 갔어. 무슨 이유에서인지 너는 번호를 바꿀 거라고 했어.


"번호를 이렇게 갑자기 바꿔?"

“상관없어.”

조금은 의아했지만, 우리는 너의 휴대폰 뒤 번호 4자리를 뭘로 할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지.


“이거 어때?”

“뭔데?”


“'0091 :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구원자'란 의미야. 어때?”

오~ 말 된다.


나는 둥근 지구를 그리고 둥근 해를 그렸지.


“세상은 둥글고, 환한 해와 달도 둥글고, 구원은 91. 네 이름이랑도 딱 들어맞지?”

여하튼 잘 끼워 맞춰.




“내가 좀 되지? 얼굴 되지 성격 되지 센스까지 되지.”

참 뻔뻔하게 자존감이 높아.


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놀렸어.


"그게 또 나의 매력이지."


그렇게 수다를 떨며 휴대폰 대리점에서 나오는데 너한테 연락한 그 후배와 마주쳤어. 신나게 깔깔거리는 우리를 보고 그 애는 휙 돌아서 가 버렸어. 그때 나는 너의 얼굴을 쳐다보았어. 근데 너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어. 그러고는 내게 말했지.


밥이나 먹자.”


그때  그 애를 신경 쓰지 않는 네가 참 좋았어.     


이전 14화 #14. 마스크 안팎의 진실게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