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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Oct 22. 2024

수리공 차씨

연재소설 : 수리공 차삼규
#1. 수리공 차씨



“상구 없으면 죽을라나?”


은오는 오늘도 상구타령이 지겹다. 휴대폰 너머에서 정임은 씨익 웃는다. 그녀는 상구도, 투덜거리는 딸년도 좋다. 아끼는 것들이다.


“느그 아버지도 상구 없으면 안 된다.”


오늘도 은오네 고향집에 상구가 왔다 간 모양이다. 무슨 마술을 부리고 간 걸까? 정임의 상구 칭찬은 4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은오는 말 한마디 끼어들 새도 없다. 은오의 볼과 귀가 뻘겋게 달아올랐다.  


“끊어라. 드라마 할 시간이다.”


119보다 빠른 구조대가 출동했다. 드라마 구조대 덕분에 은오 볼에 붙은 불은 껐다. 은오는 그제야 열을 식힐 수 있었다. 드라마에 밀리고 상구에게 밀린 정임의 외동딸, 은오는 생각에 잠겼다.                                 



차삼규.
그는 누구길래.

엄마가 부르면 오고
아빠가 불러도 온다.

밥솥이 고장 나도 오고
보일러가 멈춰도 온다.

하수구가 막혀도.
전기가 끊겨도.
자동차가 멈춰도.

심지어 교통사고를 당해도
차씨를 찾는다.

한 마을에 사는 것도 아닌
1시간 거리에 사는 그를
심심하면 부른다.
부르면 또 군말 없이 온다.

그는 도대체 누구길래.





은오는 현재 서울 원룸에서 생활한다. 특별한 직업은 없다. 공식적인 직업은 개나 소나 계정만 만들면 할 수 있는 유튜버다. 비공식적으로 취업준비생도 되고 공무원시험준비생도 된다. 가끔 다 늙어서 가는 유학준비생도 된다. 간단히 말하면 은오의 현재는 백수다. 자그마치 나이는 서른아홉 개나 되는. 하지만 은오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고 비빌 언덕이 있다.


은오의 고향은 지방 소도시다. 그녀의 부모는 재래시장에서 정육점을 20년간 운영했다. 가게이름은 '하우두유두 정육점'이었다. 50년생 소띠 하우곤 씨와 49년생 쥐띠 노정임 씨에게 정육점은 운명이었다. 늦둥이 외동딸까지 소띠였다.


소띠 우곤 씨는 축산농가를 돌아다니며 좋은 소들을 선점했다. 하우두유두 정육점은 한우 1+등급 이상만 취급하는 고집 있는 정육점이 되어갔다. 예민한 입맛의 우곤 씨의 고기 철학은 '내 입에 맛없으면 죽어도 안 판다.'였다. 그 철학과 바쁜 밤 쥐의 운명을 가진 정임 씨 팔자가 더해지니 가게는 장사가 잘 되었다. 멀리서도 사러들 왔다. 돈도 제법 벌었다.


하 씨와 노 씨는 평생 모은 돈으로 정육점 건물을 샀다. 현재는 더 이상 정육점을 할 힘이 없어 세를 주었다. 은오가 35살까지 직업이 없으면 가게를 물려줄 계획이었다. 하지만 은오가 거절했다. 생고기 피 냄새는 질색이라고 했다. 그래서 피 냄새 좋아하는 남편감이라도 데려오라니 더 질색팔색했다. 노부부는 마음에서 은오를 살짝 내려놓았다.




원룸방에서 침대에 드러누워 유튜브를 보던 은오가 정임에게 전화했다.

 

“엄마, 나 낼모레 집에 내려간대이.”

“와?”


“와는 무슨? 딸이 간다는데 안 반갑나?”

“반갑지. 근데 다녀간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서."


"엄마 밥도 그립고."

"그립고? 뭐 볼일이라고 있나?"


"간 김에 전원생활 촬영도 하고. 요즘엔 젊은 애들이 시골생활하는 에피소드가 인기거든.”

“취직도 안 하고 결혼도 안 하고 유튜브만 찍다가 늙어 죽을 끼가?”


“유튜버가 직업이다. 몇 번을 말해?”

"유튜브도 잘 돼야 돈이 되지. 그래 대충해가 무슨 돈이 되나? "


"말이 안 통한다. 말이."  

"누구 하나라도 구독, 좋아요 눌러주나?


"천지빼가리거든. 여튼 가는 줄 알아."


정임의 한숨이 짙어진다. 하씨 둘의 수발을 들다가 뒷골 당길 일을 생각하니 아킬레스건까지 다 아픈 느낌이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고 찌릿찌릿했다.

      



은오는 기차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효자리로 향했다. 논길, 밭길을 지나 돈 냄새가 향긋하게 나는 곳에 내렸다. 효자리 돈 있는 노인들이 사는 전원주택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은오네가 있다. 은오는 새빨간 고급 캐리어를 질질 끌고 고향 집으로 들어갔다. 열린 현관문 사이로 내부를 들여다보니 흙먼지가 잔뜩 묻어있는 군화가 있었다.      


‘또 차삼규! 여기 와 있구나.’     


드르륵 거리는 캐리어 끄는 소리에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모습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_푸석푸석 구부진 곱슬머리

_순수 황인종인지 의심이 가는 시커먼 얼굴색

_0.2cm 자란 까끌까끌 촘촘한 턱수염
_두꺼운 입술과 하얀 치아를 가진 남자.  


시커먼 얼굴의 맥가이버, 차삼규였다.     



“은오 왔나?”


그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다정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차삼규 씨는 아예 여기에 사네요.”


삐딱한 은오의 말에 엄마 정임이 한 소리 했다.    

 

“니는 오빠야 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고?”

“오빠야는 무슨. 아저씨지.”     


85년생 소띠 은오는 70년생 개띠 차씨를 오빠라 부르지 않았다. 버릇없는 은오의 말에도 수리공 차씨는 웃고 있었다.


"상구야, 니가 이해해라. 저래 버릇이 없다."


정임은 서울에서 갓 내려온 딸보다 삼규를 더 신경 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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