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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Nov 05. 2024

실학자 차씨

연재소설 : 수리공 차삼규
5. 실학자 차씨



"이게 와 일로? 와 갑자기 멈추노?"


정임이 멈춰버린 건조기 앞에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정임은 정육점을 그만둔 후 텃밭을 일궜다. 텃밭에는 간단히 밥 먹을 때 찍어먹을 풋고추 정도만 심으려고 했다. 하지만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점점 양을 늘렸다. 김장 김치와 고추장용으로 쓰고 다른 사람을 줘야 할 정도로 고추밭은 넓어졌다. 손은 게으르지만 생각만은 초고속인 남편 하씨는 비싼 건조기를 턱 하니 들였다.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고가의 건조기가 갑자기 멈춘 것이다.


"오후부터 비온다카든데 이걸 우짜노? 지금 못 말리면 뭉개질 낀데."

정임은 은오를 붙잡고 걱정을 쏟아내었다.


"그러게. 그냥 사 먹지. 세 식구에 뭘 또 심고 따고 말리고. 참."

"사 먹는 거랑 키우는 거랑 같나?"


"나는 김치도 잘 안 먹는데. 굳이 고추를 심어서 사서 고생이요?"

"너만 입이가?"


"아휴. 난 몰라. 내가 뭐 쳐다본다고 아나?"

"니도 공대출신이다 아이가? 기계는 모리나?"


"난 컴공. 기계수리는 수리기사한테 맡겨야지. 여기 A/S 전화번호 있네."


은오는 건조기에 적혀있는 콜센터 번호로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콜센터에서는 모터가 고장 난 것 같다고 수리를 원하면 기사가 방문을 하고 교체해 준다고 했다.


"엄마, 모터 고장이래. 수리비는 30만 원 정도 든다네."

"뭐 그 마이 비싸노? 모다가 와 벌써 고장나노?"


"고장 날 때가 됐나 보지. 기사 오라고 해?"

"가마이 있어봐라."


은오는 이 상황이 귀찮아 빨리 건조기 회사 수리기사에게 상황을 토스하고 싶었는데 정임은 전화기를 들었다.


"상구야, 바쁘나? 집에 건조기가 고장 났다."


그렇게 정임은 차씨와 10분 정도 통화했다. 정확히 3시간 후 차씨가 도착했다. 30만 원 한다는 모터를 어디서 3만 원에 구해왔다. 건조기 내부를 열더니 간단하게 모터를 교체했다. 역시  만능 수리맨이었다. 신의 손이었다.


"역시 상구는 못 하는 게 없어."


안방에서 술 한잔을 걸치고 별천지 원두막으로 가는 하씨가 차씨를 추켜세웠다. 사실 하씨는 형광등 하나도 갈 줄 모르는지 갈지 않는 건지, 집의 모든 부품을 갈아 끼우는 일조차 차씨의 몫이었다. 하씨에게 차씨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차씨도 하씨에게 본인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 마냥 좋은 모양이다. 부르면 늘 오는 걸 보면 말이다.

 



  


은오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오빠야는 전공이 뭐였어? 대학생 때도 우리 집에 왔던 것 같은데?"

"오빠야는 형들이랑 다르게 공부에는 큰 취미가 없었다."


"대신에 손재주가 탁월하잖아. 이 시대의 맥가이버."

"농기계공학과 나왔다 아이가."



그 순간 은오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기술혁신을 통해 부국강병, 민생 안정을 하려 했던 실학자 : 박제가'


억지일 수 있었다. 이 제목으로 유튜브 영상을 올린다면 얼굴이 화끈거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차씨는 실용학문의 대가였다.


목공을 할 수 있다. // 원두막도 짓고 책장도 만들고, 테이블, 의자도 만든다.

인테리어도 가능하다. // 칠만 하는 게 아니라 욕실도 조명도 가능하다.

기계를 다룰 줄 안다.  // 농기계에서부터 자동차까지 다 고친다.


고물 자전거, 고물 자동차도 그의 손을 거치면 새것처럼 짱짱해진다.

손을 쓰는 일을 하면서 얻은 삶의 철학은 알맹이 없는 것들과는 달랐다.  




박제가가 청나라를 사랑한 것처럼.

그 나라의 문물을 조선에 도입하고자 한 것처럼.


차삼규는 대학 다닐 때,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한 에 배를 타고 일본을 다녀왔다. 돈이 없어 동아리방에서 숙식을 해결했던 그가 선진문물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 일본여행을 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일제 필름식 카메라를 사 왔다. 은오에게 선물하고 작동법을 알려주었다. 그 카메라는 은오의 초등 입학에서부터 고등 졸업을 추억으로 남겨주었다. 그는 추억을 간직하는 신문물을 선물해 주었다.  


은오가 어린 초등학생 때였다. TV광고에 나오는 컴퓨터를 사달라고 정임을 졸랐다.


"엄마, 컴퓨터를 배워야 하는 시대야. 나도 갖고 싶어. 사 줘~"


당시 정임에게 300만 원은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다. 하지만 외동딸의 미래를 생각해 컴퓨터가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차삼규는 은오를 설득했다.


"은오야, 그 돈 아껴서 나중에 해외여행을 가라. 그게 배울 게 더 많을 거다."


물론 은오의 귀에는 그 말이 들어오지 않았고, 은오의 컴퓨터는 구매 2일 후부터 오락기가 되었다. 테트리스, 포트리스, 스타크래프트까지...


무정한 컴퓨터를 통한 세상구경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고 듣고 만지는 세상구경을 권했던 차삼규.





   

정임이 차씨가 고친 건조기로 고춧가루를 다 말린 모양이다. 말린 고추를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았다.


"상구야, 부산 내려갈 때 이거 영도 좀 갖다 줘라."

"상고이 아재 곰장어 가게요?"


"그래. 거기도 고춧가루 좀 필요할 다."

"그 집이 영도 맛집이대예. 부산 건달들도 그 집 단골이라카고."


"하씨 집안사람들이 다 간이 크다. 영화 친구에 나오는 가 누고? 유오성이가 온다카 대."


옆에서 듣고 있던 은오는 깜짝 놀랐다.


"익! 무슨 소리고? 상곤이 삼촌 가게에 누가 온다고?"

"마! 호들갑 그만 떨어라. 그라고 상구야. 곰장어 주거든 니 갖다 먹어래이."


하우곤의 동생 하상곤의 가게에 배달도 가는 차씨.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노정임 씨랑 더 친해 보였는데 하우곤 씨 라인인가?


도대체 당신 정체는 언제 밝혀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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