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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Nov 09. 2024

오지라퍼 차

연재소설 : 수리공 차삼규
6. 오지라퍼 차


은오는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아주 설렜다. 외동딸이지만 형제 없는 외로움을 타지 않았다. 누구보다 혼자 있는 게 좋고 편한 독립적인 성향이었다. 부모님과도 떨어져 잘 지낼 수 있다 생각했다. 어떤 간섭도 제약도 없이 혼자 살아보는 것이 꿈만 같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부모님이 깨우지도 않을 테고 저녁에 부모님이 일찍 들어오라는 잔소리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지방 소도시에 살던 소녀는 자유의 땅, 서울로 향했다.


정임과 자취방을 알아보기 위해 아침부터 부산하게 준비했다. 출발하려는 찰나 그가 왔다.


"상구 왔나? 바쁜데 불러가 미안태이."

"그래도 같이 가야 마음이 놓이지요."


"또 오빠야 불렀나? 하~"


정임의 해결사 삼규가 또 동행했다. 은오는 사실 불길했다. 그의 실용주의는 가끔 은오와 맞지 않을 만큼 합리적이고 경제적이었다.


셋은 삼규푸른 광채가 나는 멋진 자동차를 타고 경부고속도로에 올라탔다. 순간 은오는 그 차가 고속도로에 등장해도 되는 차인지 궁금했다. 의심이 되었다. 옆에 있던 차들이 차마 고속도로라 클락션을 울리지는 못하고 끼어들기를 줄줄이 했다. 트럭은 고사하고 승합차가 지나가도 휘청휘청 뒤집어질 것만 같아 아주 불안했다.


삼규의 차는 경차의 역사를 쓴

대우자동차 티코였다.


자동차인가?

장난감인가?


사람 목숨이 장난도 아니고, 이 장난감을 타고 하루에 왕복 800km를 운행한다니 은오는 아찔했다. 하지만 은오의 걱정과는 달리 이 장난감은 중형차 이상의 출력을 자랑했다. 삼규가 속을 아주 튼튼하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불안 불안했지만 티코는 퍼지지도 멈추지도 않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달리고 달렸다.


은오는 4D영화관에 있는 듯한 승차감에도 졸음이 밀려와 꾸벅꾸벅 졸았지만 정임과 삼규는 대화가 끝이 없었다. 늘 둘은 어쩜 저리 세상사에 관심이 많고 오지랖이 넓은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둘의 끊임없는 대화에 깊은 잠은 자지 못한 채 겨우 서울에 도착했다.






삼규는 월세방 구하는 일에 익숙한 듯 부동산도 아닌 '월세방 임대'라고 적힌 곳을 직접 찾아다녔다. 학교 근처 다가구 주택부터 돌아다녔다. 은오의 바람과는 달리 정임과 삼규는 자꾸 허름하고 싼 방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혼자 쓰기 딱인 것 같은데, 어떻노?"


휙 대충 봐도 은오가 원하는 사양은 아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뾰루뚱한 은오의 마음을 삼규가 간파했다.


"집에 와서 잠만 잘 낀데... 학비며 방값이며 다 부모 부담이다. 눈만 좀 낮추면 된다."


그럼에도 툴툴거리는 은오를 보고 정임이 삼규를 설득하는 듯했다. 둘은 신축원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오도 기분이 조금은 풀린 듯 쫄래쫄래 따라갔다. 임대 문의(4층)이라 적힌 신축원룸 건물에 도착했다. 4층까지 올라갔다가 주인이 없어 다시 내려오던 중에 3층 계단에서 어떤 한 여학생과 마주쳤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방 보러 다니시나요?"

"예. 여기 방 있다 캐가 주인 만나러 왔는데 없는가 베요."

삼규가 그 여학생에게 대답했다.


그 여드름이 잔뜩 난 여학생은 생글생글 웃으며 다시 물었다. 제법 많이 사교적이었다.


"경상도 분이신가 봐요?"

"아, 예."


"억양 보니 그런 것 같더라고요. 히힛. 제 집이 창원이라서요."


은오는 스물한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치고는 들이대는 게 만만치 않은  여자를 경계했다. 웬만해선 초면에 시커먼 털북숭이 차삼규에게 저리 싹싹하게 나올 순 없었다. 목적이 분명히 있어 보였다. 하지만 삼규와 정임은 별 의심 없이 그녀를 대했다.


"창원요? 나는 그 옆에 부산 사람이요."

"아, 부산요?"


"부산이나 창원이나."


삼규도 그 여학생도 서로 고향사람을 만나 반가워 보였다.


"룸메이트가 한 명 있는데 걔는 포항이고요."

"포항이나 경주나."


삼규 부산, 여드름 여학생 창원.

은오 경주, 의문의 여학생 포항.


사투리로 친밀감을 느낀 시커먼 삼규와 여드름 여학생 둘은 대화를 계속 이어나갔다.


"제가 여기 3층에서 친구 한 명이랑 사는데 룸메이트를 한 명 더 구하거든요. 혹시 생각 있나 해서요."

"그라먼 방 한 번 볼 수 있을까예?"


"예, 한 번 보세요."


삼규는 은오의 생각은 묻지도 않고 그 방을 정임과 보러 갔다. 만족하는 표정을 짓더니 은오를 불렀다.


"신축 원룸이라 깨끗하네. 셋이 같이 살면 의지도 되고 좋겠네."


은오는 무표정으로 '이건 아니야.'라며 외쳤지만 정임과 삼규, 여드름녀는 일심동체가 되었다. 셋은 월세를 1/n 할 수 있어서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서울서 혼자 살면 외로울 데, 같은 학교, 같은 고향 언니들이랑 같이 지내면 좋지."


은오는 외치고 싶었다.


'나는 혼자 사는 게 좋은데...'

'나 지금 저 여자 얼굴본 지 5분?'

'기숙사 제비 뽑기도 아니고 처음 보는 사람 2명이랑 갑자기 같이 살라고?'

'진짜 이게 말이 되냐고?'

'1 room에 3 persons?? what!!! why???'


은오는 삼규의 사람친화적 오지랖을 이해할 수 없었다. 거기에 동조하는 엄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은오는 삼규가 엮어준 그 언니들과 겨우 1년을 살고 결별했다. 그녀는 차라리 허름한 집에 혼자 사는 게 편했다.




 


하은대학 1학년 때, 그 아이를 만났다. 교수님이 출석을 부를 때면 은오는 그 아이 이름을 들었다.


"하은오!"

"네!"


"함응준!"

"네."

 

그런 성씨가 존재한다는 것에 1차로 놀랐고 중후한 중저음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덩치는 산만한 곰돌이 '푸'가 앉아있었다. 딱 봐도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으며 영화 보기가 취미일 것처럼 편하게 생겼다. 속세에 연연하지 않은 채 라면 끓여 먹으러 버너를 들고 아차산 밑으로 찾아들어갈 것 같은 캐릭터였다. 그런 그와 은오는 어쩌다 보니 친해졌다.


그는 서울남자였다. 부모님께서 슈퍼마켓을 운영하신다고 했다. 신상 과자를 좋아했다. 그는 차, 옷, 구두 등 모든 신상을 좋아했다. 그런 그가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차를 끌고 은오집에 놀러 왔다. 자연탐방과 속세탈출이 목적이었다.

그날도 은오 집에는 삼규가 있었다. 응준은 삼규를 보고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은오 친구 함응준입니다."


삼규는 응준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더니 후덕한 '푸'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런 후 그가 타고 온 자동차를 꼼꼼히 스캔했다. 차 정비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 삼규는 그에게 이 말을 남겼다.


"함 군, 차에 멋 부리지 마래이."


선팅이며 휠에 잔뜩 돈을 들인 응준은 쑥스러운 미소를 날렸다. 


'역시 차삼규 눈썰미!!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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