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수광부 Nov 02. 2024

아들 차삼규

연재소설 : 수리공 차삼규
#4. 아들 차삼규


어느 추운 1월, 까까머리 고등학생 삼규가 은오네를 찾아왔다. 삼규는 하씨 앞에 바른 자세로 앉았다. 하씨 부인 정임은 아궁이에서 군고구마를 꺼내어 오봉에 담아 들고 들어왔다. 삼규는 그제야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인규 히아가 대학에 붙어심니더. 선규 히아랑 같은 학교, 같은 과요."


하씨는 점잖게 웃었고 정임은 환하게 웃었다.


"아이고, 인규 가가 10살 될 때까지 글도 몰라가 바본가 싶었디만. 부산대에 붙었으니 잘했다. 잘했어."


정임의 말을  듣고 있던 하씨가 삼규를 보며 물었다.

"집에 등록금 할 돈은 있나?"

"아, 작은 아버지가 주신다 캤으니 주실 깁니더. 큰 히아한테도 그리 했으니."


정임은 이번에는 삼규네 맏형 선규를 걱정했다.

"선규는 군대에서 잘 먹고는 댕기는가? 날이 마이 춥은데."

"가끔 편지 오데요. 잘 있을깁니더."


"엄마는 요즘에도 자갈치시장 나가나? 시장이라 마이 춥을 낀데."

"맨날 똑같지예."


정임은 고구마 껍질을 까서 삼규에게 건넸다. 삼규는 맛있게 한입 베어 물었다. 위에 형 둘이 부산 명문 국립대, 그것도 돈이 절로 굴러올 것 같은 회계학과에 들어갔으니 이제 한시름 놓은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차씨 집안 째인 삼규 얼굴에도 근심이 걷혔다.


삼규가 고구마 껍질을 버리러 마당으로 나간 사이, 하씨는 이불장을 열었다. 서랍 속에서 흰 봉투 하나를 꺼내어 정임에게 건넸다. 그걸 받아 든 정임은 외투를 챙겨 입고 마당으로 나왔다.


"상구야, 니 내캉 어디 좀 가자."


정임은 삼규를 데리고 시내 한 양복점에 들어섰다.


"가다마이 한 벌 하러 왔심더. 야 몸에 맞추면 될 김더."


양복점 주인이 삼규 몸에 줄자를 대고 치수를 쟀다. 정임은 주인에게 흰 봉투를 건넸고 양복 한 벌을 받았다. 그리고는 삼규 손에 양복이 든 가방을 꼭 쥐어 주었다.


"인규 갖다 줘라. 선규 입학 할 때도 한 벌 해줬다."


삼규의 눈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그 돈의 의미를 아는 삼규는 다짐했다. 언젠가는 이 은혜를 갚겠노라고.


하우곤과 노정임에게 그 돈은 하우두유두 정육점에서 피 비린내 맡아가며 힘들게 번 돈이었다. 고기를 썰어 무뎌진 칼날을 스윽스윽 갈아가면서 번 돈이었다.





'부르르릉~~~ 덜덜덜~~ 끼익.'


하씨 집 근처에 사는 도 씨가 방문했다. 도 씨는 하씨의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도시에 살다가 최근에 고향으로 내려와 혼자 살고 있었다. 근처 공장에서 경비일을 하는데 점심 때면 하씨를 찾아왔다.


"은오야, 나가서 인사드려라. 아부지 친구분이다."


영상으로 촬영할 콘텐츠가 없나 어슬렁거리던 은오가 '효자리 별천지' 쪽으로 향했다. 별천지는 낮술 하기 딱 좋은 원두막이다. 상수리나무가 뜨거운 해를 막아주고 4월이면 벚꽃 잎이 휘날리는 원두막은 효자리 술꾼들에게 최고의 명당자리였다. 은오는 그곳으로 가서 도 씨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딸인가 베. 어릴 때보고 처음 보니 못 알아보겠네."


"네."

은오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너그 아부지한테 국수 얻어먹어야 할 낀데, 니는 결혼 안 하나?"


결혼 얘기가 나오자 은오는 다시 말없이 고개만 꾸벅하고 뒤돌아섰다. 괜히 별천지 근처에 떨어진 도토리를 줍는 시늉을 했다.


마침 그때 차씨 트럭이 집으로 들어왔다. 차씨가 트럭에서 은행나무 묘목을 내렸다. 도 씨에게 목인사를 하고 은행나무 묘목을 들고 산에 올랐다. 그런 차씨를 보고 도 씨가 물었다.


"는 또 누고?"

"상구 쟈는 우리 집 아들 아이가. 이 원두막도 쟈가 만들었다."


"아, 손재주가 있는가 베."

"우리 집 고장 난 기계도 다 쟈가 고친다. 쟈는 못하는 게 없어."


과묵한 하씨도 차씨 얘기에는 말이 많아졌다.


"우고이~ 니는 참 복도 많대이. 자식도 둘이나 있고 마누라도 있고."

"니도 자식은 있다 아이가."


"있어도 아부지 보러 오는 놈이 있나 전화 한 통 하는 놈이 있나."

"요즘 젊은 아~들 다 글타 아이가. 은오 쟈도 내한테는 생전 전화 한 통 없다."


하씨는 원두막 옆에 따로 한대 놓여있던 오래된 김치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냈다.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어, 여기 술잔 2개하고 안주 좀 내오니라."


잠시 후 정임은 술잔과 마른 멸치, 고추장을 가져다 놓고는 텃밭에 가서 풋고추를 따왔다. 수돗가에서 씻은 후 원두막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멸치 대가리를 뗀 후 고추장에 멸치를 찍어먹던 하씨가 씨에게 물었다.


"이번 토요일 동기회는 갈 끼가?"

"일 없음 가 볼라꼬. 몇이나 되노?"


"20명 올라나? 60명 중에 17명은 죽었다."

"우리 나이 팔십도 안 됐는데 그 마이 죽었나?"


"여자들은 하나도 안 죽었다."


옆을 얼쩡거리던 은오는 입을 틀어막고 웃었다. 어른들 돌아가셨단 얘기에 웃으면 안 되지만 역시 여자가 평균수명이 길다는 팩트가 새삼 와닿았다. 유튜브 쇼츠 영상으로 만들어야지 생각했다. 은오는 아버지 하 씨의 그런 무심한 듯 뱉는 유머를 좋아했다.





산에 은행나무를 심고 내려온 씨는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트럭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은오에게 건넸다. 5만 원짜리 6장이었다.


"이거 니 써라."

"아이다. 내 돈 있다."


"오빠야가 주는 거는 받아도 된다."

"아, 괜찮은데..."


은오는 39살에 용돈을 받는 못난 백수의 모습을 수습 중이었다. 먼산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아부지 술 마시는데 가가 멸치 대가리 좀 갖고 와라."

"뭐 할라꼬?"


은오는 별천지 원두막에 가서 하씨가 떼 버린 멸치 대가리 한 줌을 가져와 차씨에게 주었다. 그때 어디선가 '왈왈'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게 났다.


"집에 개가 있었나?"


은오는 그제야 집에 못 보던 개가 묶여 있는 걸 발견했다.


"아픈 아다. 니 있는 동안 밥이랑 물이랑 좀 챙겨줘래이."

"오빠야가 데려다 놨나?"


종양이 찬 듯 배에 큰 혹주머니가 불룩하게 나온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오두방정을 떨고 있었다. 차씨가 오기만 기다린 것처럼.


차씨는 개에게 다가가 멸치 대가리 한 줌을 밥그릇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는 개를 한번 쓰다듬었다. 차씨에게 달려드는 그 개는 아픈 몸에 비해 정신을 맑아 보였다. 개와 인사를 하곤 차씨는 트럭에 탔다. 원두막 쪽으로 후진을 하곤 창문을 내렸다. 차씨는 하씨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술 마이 잡숫지 고 식사 꼭 챙기세이. 저 갑니대이."


내일 또 올 사람처럼 가볍지만 애정을 가득 품은 인사에 하씨는 든든했다.


차씨가 꼭 자신의 아들인 것처럼.













 









이전 03화 풀꽃 차삼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