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씨는 선규, 인규, 삼규, 덕규 중 셋째였다. 선, 인, 덕과는 달리 숫자 '삼(三)'이 들어간 그의 이름은 특별했다. 아들 낳고 또 낳고 또 아들이라 막 지은 느낌이다. 그의 어머니는 임신한 몸으로 과부가 되었다. 덕규는 그의 어머니가 간장 한통을 마시고 계단에서 굴렀음에도 뱃속에서 10달을 채우고 다친 곳 없이 나왔다. 한글도 수도 모르는 차씨 어머니는 4형제를 붙잡고 숱한 날들을 울었다. 그녀는 막막했고 무서웠다. 차씨는 그 가난해서 막막한 집에서 자랐다.
은오가 어릴 적 처음 본 군인 아저씨도 차씨였다.
어느 날은 작대기 셋.
상병 차삼규.
어느 날은 작대기 넷.
병장 차삼규.
어느 날은 갈매기 한 마리.
하사 차삼규.
차씨가 휴가 나오는 날이면 정임은 1++ 최고급 한우를 준비했다. 남편 우곤이 따로 술안주 하려고 정육점에서는 팔지도 않는 소량의 고급부위를 먼저 구웠다.
"마이 무라. 제비추리다."
"제비고기?"
옆에서 은오가 고기 한 점을 집어먹으며 물었다.
"제비고기가 아니라, 제비추리. 소 한 마리를 잡아도 얼마 안 나오는 귀한 기다."
"와, 진짜 맛있게 생겼네요."
"부추 무친 거랑 같이 무라. 첫 부추는 보약이라 안카나."
하씨 부부에게는 차씨 입에 들어가는 귀한 것들이 아깝지 않은 표정이었다.
"여기 오면 얼굴이 뺀지르해진다니까요."
차씨의 말에 하씨 부부는 껄껄껄 하고 웃는다. 그러면 차씨는 밥 한 수저를 푹 떠서 참 맛있게도 먹었다. 은오는 가끔 그 셋이친한 게 낯설기도 했다. 삼규가 그들의 자식 같고 본인은 오히려 이방인 같았기 때문이다.
은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3월이었다.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아 추운 바람이 불던 날, 차씨가 찾아왔다. 자전거를 타고 말이다. 머리에는 두건을 두른 채 말이다. 얼굴은 더 새까맣게 탄 채 말이다. 꼬맹이은오는 20대 청년 차씨에게 물었다. 언제나처럼 반말로 말이다.
"안 춥나?"
"춥기는."
"그 자전거는 또 뭐꼬?"
"무전여행 중에 들렀다."
"무전여행이 뭔데?"
"돈 없이 여행하는 거. 길 가다가 배고프면 밥 얻어먹기도 하고."
"거지처럼?"
"거지? 크크크. 그래. 지나가던걸비가 너희 집에 밥 얻어먹으러 왔다."
"엄마, 시장 갔다. 근데 저거 타고 다닌다꼬?"
"어. 지금 자전거로 전국 일주 중이다."
"전국 일주는 또 뭔데?"
"우리나라 전체를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거."
"저 고물을 타고?"
"고물 아이다. 내가 다 고쳐가 짱짱하다."
차씨는 은오 동네에 버려진 고물 자전거를 고쳐 전국일주 하는데 타고 다녔다.
"근데 무전여행, 전국 일주 그런 거 왜 하는데? 힘들게."
"재밌잖아. 멋있고."
은오는 청년 차씨가 하는 말이 충격이었다. 차씨는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너도 나중에 꼭 자전거 전국일주 해봐래이."
마당에 있던 차씨가 기름때가 낀 목장갑을 벗고 손과 얼굴을 깨끗이 씻었다. 아무리 씻어도 새까만 얼굴이 새하얘지지는 않았다. 하얘지지 않아야 할 머리카락만 하얘지고 있었다.
"차삼규 씨도 마이 늙었네."
"니 나이가 벌써 서른아홉인데, 나도 늙었지."
은오의 말에 차씨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차씨는 정임이 준비한 고기를 상추쌈에 싸서 먹음직스럽게도 먹었다. 차씨가 복스럽게 먹는 모습은 정임에게 늘 활력을 주었다. 은오도 오랜만에 식사다운 식사를 했다. 엄마표 소갈비찜은 다이어트 중이라는 사실을 잊게 했다. 배가 다이너마이트를 품은 듯 빵빵해졌다. 폭발직전이었다.
"아우~ 배 터지겠네."
그럼에도 홍고추 향내가 벤 갈비찜 소기름을 포기할 순 없었다. 밥 한 숟가락 비벼 먹고 나서야 식사를 멈췄다.
"나 좀 쉴란다."
은오는 제 밥그릇과 수저만 싱크대에 갖다 놓고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은오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역시 집이 최고다."
그때 시선이닿는 곳에 검은색 책장이 서 있었다.
_원목에 검은 칠을 하고 니스로 광을 낸
_아주 튼튼해서 휘지도 내려앉지도 않은
_빛바랜 옥편과 고전소설, 월간지가 세월을 말해주는
_입학, 졸업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액자가 진열되어 있는
은오는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할 위험을 감수하고 배를 말아 올려 책장 쪽으로 기어갔다. 책장 맨 아래칸인 서랍문을 열었다. 똑딱이 버튼으로 한쪽 문을 안에서 잠그는 기능까지 있는 세심한 문짝이었다. 경첩을 달아놓은 솜씨만 봐도 뭔가 만든 이의 정성이 가득했음이 느껴졌다.확실히 기성품은 아니었다.
제작자 : 차삼규 제작일 : 1994. 10. 31
함초롱바탕체로 한 글자씩 정성을 들여 사인펜으로 쓴 이름을 빤히 쳐다보았다.은오는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차삼규,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야?'
오랜 세월 동안 차씨는 하씨집에 정성을 다했다. 은오는 차씨, 하씨, 노씨 3명의 관계에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