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이 차씨에게 물었다. 차씨는 아무 말이 없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벗어둔 장갑을 끼고 예초기를 챙겨서 뒷산으로 사라졌다. 차씨가 사라진 후, 정임은 빈 그릇을 치우면서 혼잣말을 했다.
"어디 가서 또 이마이 주서 왔노? 다리 알려서 죽겠다는 양반이."
정임은 차씨가 식탁 위에 두고 간 그것들을 집어 들었다. 곱게 접힌 후 매듭이 지어진 수십 개의 검은 봉지들. 걔 중에 투명 봉지 하나를 풀어서 먹다 남은 상추를 담았다.
갈치를 담았던 봉지는 씻어 말려도 갈치냄새를 품고 있었다. 냉장고 야채칸에서 나오는 냉기는 꼬릿한 냄새와 풋내를 마구 섞어 놓았다.
창문을 통해서 예초기의 '윙'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차씨 부친은 화물차 운전을 했다.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버스에 치어 즉사했다. 노름만 하다가 겨우 정신차린지 며칠만의 일이었다. 물려받은 논을 팔아서 시작한일이었다. 겨우노름판에서 손을 씻었는데 하늘도 무심했다. 그에게 어떤 기회도 주지 않았다. 어떤 준비도 해두지 못했다. 그렇게 편안치 못하게 눈을 감았다.
차씨 모친에게 결혼생활은 그림자 생활이었다. 한글도 모르고 수도 모르는 그녀는 나설 수가 없었다. 남편의 그림자만 밟은 세월이었다. 돈을 벌어도 노름판에 뺏기는 남편이었다. 그런 남편이라도 한 마디 할 수 없는 그녀였다. 남편을 빼앗아간 세상은 이제 그녀를 비췄다. 어떤 가림막도 없이 쏟아지는 햇살은 참으로 무서웠다. 슬픔이 내려앉기도 전에 찾아온 것은 아주 눈부신 막막함이었다. 공포라는 그림자를 품고 다니는 ...
태아를 품은 임산부는 남편의 죽음 앞에 자식의 죽음을 생각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_눈앞의 3명의 아들을 살릴 것인가?
_배속의 1명의 아들을 살린 것인가?
모진 생각도 했지만 결국 모질지 못했다. 그렇게 4형제는 누구의 희생도 강요하지 못했다. 각자 1/N만큼의 무게를 짊어지고 꿋꿋하게 살아가야 했다.
차씨 부친의 사고 보상금은 차씨의 숙부가 받아냈다. 가해차량과의 끈질긴 싸움 끝에 받아낸 값진 것이었다. 고등학교 수학 교사였던 그는 보상금을 제법 챙겼다. 형수와 4명의 조카들이 기대어야 했던 돈인데 그가 맡아둔다고 했다.
"형수가 잘못하다가 다 날리뿌면 큰일 납니더."
글을 모르는 형수에게 돈을 맡길 수 없다고 했다. 4형제의 대학 등록금으로 추후에 줄 테니 공부부터 열심히 뒷바라지 하라고 했다. 차씨 모친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보상금이 얼마인지 읽을 수도, 미래를 위한 셈을 할 수도 없었다. 현실을 묵묵히 살아낼 수밖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차씨 모친은 빨간 고무 다라이를 챙겨 자갈치시장으로 향했다. 뱃속에서 헤어질 뻔한 사실을 기억이라도 하는지 막내 덕규는 그녀에게 세차게도 매달렸다. 어찌나 울어대는지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덕규를 업었다. 보태기로 아이를 업은 채 시장 구석에 자리를 잡고 생선을 펼쳐놓았다.
"고등어 사소. 갈치 사소."
구슬피 들리는 그 말에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생선 한 두 마리를 사줬다. 검은 봉지에 생선을 담아 들고 가던 정 많은 부산 할매들은 다시 뒤돌아왔다. 시장통에서 산 옥수수빵 반을 뚝 잘라 덕규에게 쥐어주었다.
"이리 사는 기 힘든 기라."
할매들의 거친 손이 그녀의 비린내 나는 손을 덥석 잡을 때면 그녀는 눈시울을 붉혔다.
어스름이 내려앉고 손님들이 더 이상 없어지면 그녀는 덕규를 둘러업고 집으로 갈 채비를 했다. 생선냄새가 진동하는 몸으로 버스에 타면 옆자리 앉은 사람들 하나 둘씩 그녀를 피했다. 덕규가 울기라도 하면 버스에서 내려야 하는 날도 있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사글셋방까지 걸어올라가는 것은 너무 힘이 들었다. 그런 날이면 먼저 간 남편을 원망하며 울음을 삼켰다.
집에 도착하면 삼규를 뺀 다른 아이들이 배고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
"니는 와 아직 안 자노?"
"엄마 오는거 볼라고."
"히아들이 밥 해주드나?"
"생선찌개 데파가 먹었다."
삼규 옆자리에 등에서 잠든 덕규를 눕히고 그녀는 어질러진 집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자기 전에 꼭 장남 선규 책가방에 지폐 한 장을 넣어 주었다.
생선 내장의 핏자국이 묻은,
불쌍한 어미의 영혼이 담긴,
비린내 가득 품은 꾸깃꾸깃해진 돈.
장남에 대한 기대였다.
홀로 된 어미의 유일한 안식처.
결국셋째 삼규는 시골외갓집에 맡겨졌다. 삼규는 팍팍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났다. 가난하긴 매한가지였지만 가슴만은 뻥 뚫린 시골이 좋았다. 부산에 살던 형제들과는 달리 시골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탁 트인대지를 뛰어다니며 자연과 함께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개울가로 가서 개구리를 잡으며 놀았다. 밭에서 무를 뽑아 흙을 털고 먹기도 했다.
유독 차삼규에게는 생선 냄새가 아닌 흙내음이 났다.
풀냄새가 났다.
잡초를 닮아 강했고 들꽃을 닮아 자유로웠다.
대지를 품은 차삼규.
예초기 소리가 멈춘 후, 은오네 집 화장실까지 풀내음이 진동했다. 산에서 내려오던 차씨는 한 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곳에 서있는 벚꽃나무를 한번 쓰다듬고는 마당으로 내려왔다. 이내 바쁜 걸음으로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화장실에서 똥을 싸고 나오던 은오가 창문 밖으로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다. 뭔가 생각이 난 듯 급하게 밖으로 나가 벚꽃나무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