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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Nov 12. 2024

뚫어뻥 차씨

연재소설 : 수리공 차삼규
7. 뚫어뻥 차씨



39살 은오의 고향생활은 느긋함 그 자체였다. 애저녁에 취직도 포기했고 시집도 포기했다. 유튜브 콘텐츠 개발자인지 유튜브 콘텐츠 중독자인지 알 수 없었다. 눈 뜨면 폰을 보고 잠 자기 전에도 폰만 봤다. 느지막이 일어나 시래기 된장국으로 브런치를 즐기고 마당으로 나와서 개밥을 주고 야생화 구경을 좀 하다 보면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그럼에도 세끼는 꼭 챙겨 먹었다. 아침 겸 점심, 고기파티로 늦은 점심, 저녁 겸 술상으로 말이다.


늦은 오후, 은오는 엄마 정임과 푸짐하게 고기파티를 했다. 정임은 늘 매의 눈으로 질 좋은 고기를 공수해 왔다. 정육점 짬밥 20년을 젊은 사장들이 속이지 못했다. 숨겨놓은 좋은 고기를 꺼내주곤 했다. 은오는 엄마가 고기 준비를 할 때, 텃밭에서 기른 상추, 깻잎, 고추를 따고, 실처럼 가는 잔파를 뽑아왔다. 손질한 잔파를 은오가 정임에게 건네면 정임은 간장, 고춧가루, 참기름, 설탕 등을 넣어 오물조물 무쳐서 내어왔다.


엄마와 딸은 숯불에 한우 한 점, 두 점 올려가며 굽거니 먹거니 했다. 은오는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생각했다. 은오는 정임이 무쳐 온 파무침을 한 젓가락 가득 집어서 입속으로 넣었다.

  

"진짜 끝내준다. 와~ "

"맛있나? 마이 무라."


정임이 핏기가 살짝 도는 구워진 한우 한 점을 은오 접시에 올려주었다. 은오는 아기새처럼 홀라당 집어먹었다.


"세상천지 이런 고기를 어디서 또 구해왔노?"

"많다. 마이 무라."


허겁지겁 먹었다. 상추쌈, 깻잎쌈을 만들어 먹고 고추도 와그작 씹어 먹고 파무침도 세 접시나 먹었다. 끝없이 먹었다. 황홀한 식사가 끝났다. 고삐 풀린 망아지, 브레이크 없는 내리막길의 자전거처럼 고기를 해치웠다.


'곧 지구 종말이 올 것처럼 먹어대지. 이 돼지야!'


불룩 나온 배를 움켜쥐고 은오는 자신을 향해 강한 어조로 자조적인 말을 뱉어냈다. 위아래로 터질 것 같았다. 화장실로 급하게 가서 변기에 앉았다. 지름이 너무 컸을까? 쉬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들을 생각했다. 그 답답함을... 그리고 괄약근 그네들의 처절한 몸부림도... 미안했다.


적당히 멈추고 주방으로 가서 매실 엑기스를 물에 타서 한 컵 들이켰다. 다시 변기에 앉았다. 하지만 실패. 여간 단단한 놈이 아니었다. 적당히 멈추고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부채표 활명수를 찾아 마시고 다시 화장실로 갔다. 또 실패.


'이 또라이들. 안 튀어나오고 뭐 해!'


어쩔 수 없이 정임을 불렀다. 엄지 손가락에 실을 돌돌 말고 등에서 팔 쪽으로 쓸어내리는 의식을 치른 후 피를 봤다. 그제야 배를 꽉 채운 가스와 덩어리들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꺼억~ 꺼억~"


앞으로 가스 배출은 성공했으니 이제 뒤로 물건을 배출할 시간이었다. 우아하게 변기에 앉았다. 기다렸다. 또라이들이 제법 많았다. 아주 뱃속이 개운해졌다. 하지만 그 개운함도 오래가지 못했다. 물을 내리는 순간 오히려 변기에 물이 차올랐다. 또라이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워메! 어쩌스까나."


경상도 처녀 입에서 전라도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아주 당황했던 것이다. 차마 마주하기 힘든 처참한 광경들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래도 몇 달 있으면 마흔인데, 이런 일로 엄마를 소환할 수는 없지 않나? 최선을 다해서 그것들을 자체해결해 보기로 했다. 옆을 보니 그것이 있었다.

그나마 도전의식이 생겼다. 그리고 무념무상이 되었다. 그때 은오는 시 한 편을 탄생시켰다.




어른이 된다는 것  

          - 하은오-

어릴 적엔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지.
아니더라.

뚫어뻥을 들고 뒤처리할 용기가 생길 때
어른이 된 것 같더라.

어릴 적엔
시간이 지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지.
아니더라.     

내 인생도 내 마음대로 안 될 때
어른이 된 것 같더라.




결국 은오는 도전했다. 하지만 변기는 막혔고 뚫어뻥 따위로는 해결이 안 되었다. 정임에게 말하면 분명 차씨를 부를 게 뻔했다. 그 부끄러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던 은오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검색을  변기 뚫어주는 기사님을 불렀다. 부모님 몰래 기사님을 불러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 수압이 낮아서 오늘 고쳐놔도 며칠 못 갈 깁니더. 손 좀 보긴 해야 할 겁니더."


명함을 남겨두고 수리기사는 떠났다. 일을 치른 은오는 거실에 대자로 뻗어 생각했다. 욕실 리모델링을 하긴 해야 했다. '뚫어뻥'으로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 계속 연출되는 건 은오에게 채식 위주의 다이어트를 하란 말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마침 정임이 텃밭에 갔다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집에 뭐 이리 구신 냄새가 나노? 된장 끓였나?"

"아하하하. 그래? 아닌데..."


"아잉가?"

"엄마, 우리 집 욕실 좀 뜯어고치까? 수압도 낮고 변기랑 샤워기랑 다 오래됐잖아."


"몇 달 전부터 한다 한다 캤는데, 상구가 맨날 바쁘니까 시간이 있나?"

"상구 없으면 못하나? 다른 데 맡기면 되지. 내가 다른 업체들 견적 좀 받아볼게."


은오는 3군데 정도 욕실 리모델링 견적을 받았고 실측을 온 업체도 있었다. 마음에 드는 한 업체를 골라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어차피 의미 없는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업체를 알아볼 때만 해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던 부모님은 또 상구 타령이었다.


은오네 욕실 리모델링건은 어떤 비교견적도 없이, 경쟁 PT도 없이, 턴키로 차씨에게 맡겨졌다. 그 공사는 착수일도 완공일도 공사대금도 사전에 알 수 없었다. 그가 시간이 될 때 시작이고 그가 다른 일 하러 가면 중단이고 그가 돌아오면 다시 시작이었다.


욕실 문을 뜯고 내부 타일을 다 부셔놓고는 전화가 울리면 중단,

문짝도 없는 불안한 상태에서 은오는

똥처리를 해야 했고,


이틀 후 차씨가 와서 타일 작업을 하는 중에 전화가 울리면 중단,

덜 마른 시멘트에 발이 빠지지 않도록 은오는 사방놀이를 해야 했고,


이틀 후 차씨가 와서 샤워기를 달 때까지

온몸과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은오는

더러움과 사투를 벌였다.


문을 떼고 문을 달 때까지 2주가 걸린 대장정에도 하씨와 노씨는 불편을 감수했다.



상구니까.

상구가 하는 일이니까.

상구면 모든 게 용서되었다.





수리천국  

: 막힌 변기, 세면대 뚫어 드립니다.
: 고장 난 전자 제품 고칩니다.


'수리천국'이라 적힌 영업용 짙은 남색 봉고차가 은오네 마당에 대어져 있었다. 비밀스러운 그 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개조된 내부는 움직이는 작업실 같았다. 목공과 수리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이 종류별로 사이즈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역시 뭔가 신비로운 사람일세."


차씨는 수리천국의 사장 겸 수리기사, 본인이 사는 아파트의 반장, 부잣집 대저택의 집사, 세 아이의 주 양육자, 하씨네 평생 관리소장으로 살아가는 한 남자다.


차삼규는

막힌 변기를 뚫기도 하고

막힌 속을 뚫기도 했다.

  



정치에 뛰어든 삼규의 큰형이 집안 형제들의 적극적인 선거운동으로 구의원에 당선되었다. 임기를 잘 마치고 또다시 재선에 도전한다고 집안 형제들을 동원하려 했다. 정치인 선규는 몰라도 집안의 장남으로서 선규는 삼규 눈에는 살짝 불만이었다. 늘 노모의 걱정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선규는 늦은 결혼, 그 후 오랜 별거로 신경 쓰이게 하는 아들이었다. 노모는 남겨진 선규와 선규의 아이들의 밥, 빨래, 청소를 위해 황혼의 휴가 없이 살았다. 그 모습을 고스란히 본 삼규는 불만이 쌓이고 쌓였다. 삼규를 아프게 했다. 삼규의 어머니는 오늘도 선규를 위해 아침을 차렸다. 저녁도 차렸다. 그 오랜 생선장사로 인해 생긴 다리 저림과 수전증을 견뎌가면서 말이다.


삼규는 부인에게도 잘하지 못해 별거 중이고, 홀어머니에게도 잘하지 못해 밥을 차리게 하는 큰형 선규를 향한 원망을 뱉어내고야 말았다.   



"나라 정치할 생각 말고

 집안 정치나 잘해라 캐라."



뚫어 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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