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수광부 Nov 19. 2024

낭만도 차군

연재소설 : 수리공 차삼규
9. 낭만도 차군


"엄마, 함씨네랑 사량도에서 놀다 올게."

"저 큰 차를 끌고 거길 간다고?"

정임이 사량도 여행에 고급밴을 끌고 간다니 걱정이 되었나 보다.  


"내 살아생전에 언제 저런 좋은 차를 타보겠노."

은오는 아이처럼 신이 났다. 차에 탈 때는 신발을 벗고 탔고 시트에 앉을 때는 담요를 깔았다.


"하은오, 그렇게 까지 안 해도 돼. 친구 차라니까."

"또 세차비 백만 원 긁게? 어이고."


은오의 경거망동으로 결국 응준과 진경은 다시 불을 붙였다. 둘의 싸움을 구경하느라 심심하지 않게 선착장에 도착했다. 역시 커피 한 모금 흘리지 않을 편안한 승차감이었다.

흙먼지 날리는 똥색 카펫을 밟고 내리니 거기에는 더 멋진 차가 대기 중이었다.


Benz G-class(벤츠 G클래스)를 개조한 듯한

Binti P-class(빈티 P클래스)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삼규 오빠의 차였다. 응준이 삼규 오빠의 지침에 따라 연예인 차는 곱게 선착장에 대어놓고, 현다이 가문의 빈티 P클래스, 파란색 Poter(포터) 1톤에 여행 짐을 실었다.      


배를 타고 가면서 보는 통영의 아름다운 섬, 사량도는 정말 사랑의 섬이었다. 사량도의 모습은 바다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깨끗한 물과 그 물 위에 반짝이는 빛이 만들어내는 영롱함은 진주의 모습을 닮았을까?


사량도에 내린 Porter는 해변 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은오는 진경과 함께 트럭 짐칸에 타고 덜컹덜컹 디스코 팡팡 수준의 승차감을 느끼고 있었다.


"언니야, 꽉 잡아래이. 잘못하면 바다로 굴러 떨어지겠다."

"P클래스 승차감 죽인다야. 멀미가 귀로 나올 것 같아."




삼규 오빠는 은오와 함씨네를 바닷가에 내려주고 낚시를 하러 갔다. 함씨와 함씨 2세는 바다로 뛰어들었고 은오와 진경은 바다에서 귀한 먹을거리를 발견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오메~ 문어가 다 있네잉. 성게도 있당께~"

"경상도 아가씨가 전라도 사투리를 겁나게 잘 쓰요."


"흥분하면 전국팔도 사투리가 다 나완."

"하하하. 언니 여기 청각도 엄청 많아. 김장할 때 넣으면 진짜 시원하겠다."


이것저것 먹을 수 있는지 없는 건지 몰라도 진경은 바구니에 주워 담았다. 아줌마의 본능이었다.


바다탐방을 끝내고 삼규 오빠의 전화를 받고 삼규의 별장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헌 집이었다. 전혀 복원된 흔적 없이 헌 집 상태 그대로 보존 중이었다. 그래서 은오는 아쉬웠다. 늘 바쁜 삼규가 벌써 뭘 고쳐놨을 리가 없었다. 트럭을 세워놓고 응준과 진경은 익숙한 듯 해변가에 텐트를 쳤다. 은오는 천하장사를 까먹으면서 삼규오빠에게 말을 걸었다.


"오빠야는 이 집 왜 샀어?"

"노후준비. 나중에 여기 와서 낚시하고 살라고."


"언니도 여기 와서 산대?"

"성당 때문에 안 오지."


"그럼 혼자 여기서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사는 거야?"

"그게 내 꿈이다."


그도 대한민국 어르신이 되어갔다. 다들 도시생활에 지쳐 자연인이 되는 게 꿈인...


낭만의 섬, 사량도에 있으니 은오는 갑자기 차군의 연애와 결혼 얘기가 궁금해졌다.


"오빠야는 결혼 몇 살에 했지?"

"서른둘에 했지."


"당시엔 서른둘이면 늦었지? 나한테 학교 선생님 중에 괜찮은 사람 소개해주라고도 했잖아."

"그랬나?"


"월매나 능력이 없었으면 초딩한테 그런 걸 시켜? 크크크"

삼규 오빠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차마 오빠야까지는 말을 못 했어. 선규오빠도 내 학교에서 찍은 소풍사진 보고는 선생님 소개해달라고 했거든"

"그래서 소개해 줬나?"


"말은 꺼내봤지. 초3의 무대뽀 정신으로."

"선생님께 뭐라 캤는데?


"선생님, 저 아는 오빠랑 소개팅 한 번 하실래요? 나이는 서른도 훨씬 넘었고요. 지금 저희 집 골방에서 회계사 공부 중이에요. 이렇게."

"그랬더니 뭐라카드노?"


"뭐라카기는. 24살쯤 되는 초임 첫 담임이었으니 씨알이라도 먹혔겠나?"

"하하하."


"그래서 오빠야는 언니랑 어떻게 결혼했는데?"

"듣고 싶나?"




차씨 4형제 둘째 인규연애결혼에 성공했다. 회계사 사무실에서 일하던 여직원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고 들었다.

"단추가 터졌는데 꿰매줄 수 있는교?"

불쌍했는지 인규의 양복 단추를 꿰매주다가 둘은 결혼에 골인했다.


첫째, 선규는 방심하면 마흔이 되는 38살.

셋째, 삼규는 한풀 꺾인 32살.

넷째, 덕규는 형들 보내고 나면 늦을 30살.


이 셋을 구원하기 위해 인규의 친구의 여동생이 잔다르크처럼 나타났다. 차씨 집안 노총각들을 구해주러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지 전사인지 아주 큰 일을 했다. 간호학과 동아리 7인 중 3명의 여자를 이들에게 줄줄이 소개팅을 시켜주게 된 것이었다. 순서는 응급실에서와 같은 원칙이었다. 위급한 순서대로였다. 선규가 먼저 고르고 그다음 삼규, 그다음 덕규가 소개팅 상대를 골랐고 결국은 1년에 3명이 다 장가를 가는 실적을 달성했다. 잘 살고 못 살고는 뒷일이고 일단 해치웠으니 삼규의 홀어머니는 속이 시원했다.


"내 얼굴이 시커머니 밤에 만나는 게 좋겠다 싶었지."

"와하하하. 오빠야 천재네."


시커먼 차군(삼규)소개팅 필승 전략을 듣고 은오는 이 사람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만나서 뭐 했는데?"

"부산 서면에 가서 국수 먹고 헤어졌지."


"끝이가?"

"며칠 후에 병원으로 전화를 해서 찾으니까 '임행선 선생님 없는대요.'라고 그라대."


"그라길래?"

"옆에서 자기네들끼리 뭐라고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일부러 안 바꿔주는가 싶어서 에이~ 치아뿌라 싶었지."


은오는 아마 차군이 외모 때문에 차인 경험이 많아서 단념도 빨랐나 추측했다.


"음..."

"그렇게 며칠 지난 후에, 공중전화박스에 50원이 남아있고 수화기가 올려진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병원으로 전화를 해봤거든. 이번엔 받긴 받았는데 쌀쌀맞게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밤에 병원 앞으로 세요."라면서 말을 하더라고."

"자꾸 전화해서 싫었나?"


"그때 오빠야가 낮에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했고 저녁에는 정비학원에서 강의를 했거든. 그래서 항상 10시쯤 마쳤는데 끝나고 병원으로 가봤지. 그랬더니 10시 30분쯤에 내려오더라고."

"그래서?"


"명함크기 반 정도 쪽지를 하나 주대."

"그게 뭐였는데?"


"D, E, N 이렇게 구분된 스케줄표. 거기 적힌 시간 보고 자기한테 연락하라 그라대."

"오올~ 마음이 있었나 보네. 근데 D, E, N이 뭐꼬?"


"간호사들은 Day, Evening, Night로 3교대로 근무하거든. 나는 3교대 근무형태를 그때는 잘 몰랐지. 여튼 10시쯤 끝나서 지하철 타고 병원 가면 10시 30분이고, 행선 씨도 일 끝나면 10시 30분이니까 매번 밤에 만나서 데이트했지."

"잘 됐네. 낮에 보면 얼굴 시커먼 거 표시 확 났을 텐데, 밤이니까 어두워서 그런갑다 그랬겠네. 크크크. 와 이리 웃기노?"


"그렇게 4개월 사귄 후에 결혼했지."

"여기까지가 차군의 러브스토리구만."


"와? 시시하나?"

"아니, 애 셋 낳고 잘 살면 됐지 뭐. 그때 못 갔으면 우짤 뻔했노?"


"와, 오빠야 인기 많대이."

"지금에서야 다 오빠야 좋아하지. 젊을 땐 아니었지. 크크"


"지금은 ~~~다칸다. 즈그 데리고 살 거 아니니까. 이거 고쳐달라, 저거 고쳐달라."

"와하하하하하하."


"같이 사는 사람은 싫지. 맨날 돌아다니니까."

"그러게. 여기서도 상구야, 저기서도 상구야 불러제끼니까."


그때 마침 삼규 오빠 전화가 울렸다.


"상구가? 어디 헌 밥솥 하나 없나?"


전화기에서 삐져 나오는 소리에 은오와 진경은 삼규 오빠가 잡아 온 회를 먹다가 뿜을 뻔했다. 또 주변인이 삼규를 찾았다. 그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너무 익숙했다.


"와?"

"덕규가 밥솥을 하나 산다 캐가."


"알았다. 내 구해주꾸마."


오늘도 삼규의 하루는 바빴다.




p.s > 차삼규 씨의 사주를 넣어보면 이렇단다. "천날만날 바쁘고 돈은 안 되는 팔자!"






이전 08화 실속파 삼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