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처녀 은오는 늘 심심했다. 유튜브도 TV도 질렸다. 주변에 놀아줄 친구들은 애 보느라 바빴고 문화체험거리도 흥미가 없어졌다. 별천지 원두막에 누워 흰 구름 두둥실 떠다니는 걸 보다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친구 응준이한테 전화했다. 입이라도 털어야 했다.
"뭐 하냐?"
"그냥 집에 있어."
"이리 화창한 주말에 놀러 안 나가?"
"감금 중이야."
"왜? 또 사고 쳤냐?"
"사고는 무슨? 내가 애냐?"
응준이가 사고를 칠 때면 그는 부인에 의해 감금되었다. 외출 금지령이 떨어졌다.
"진경이 좀 바꿔봐."
응준이 진경이에게 전화를 건네주었다. 그녀는 아주 낭랑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언니~ 잘 지내지?"
"나야 잘 있지. 너도 잘 있지?"
"하하하. 그런가? 잘 모르겠네. 이게 잘 지내는 건지."
"함씨 뭐 사고 쳤어?"
"어우~ 뭐 말도 마요. 글쎄 세차비로 60만 원을 긁었다니까."
"뭐? 60만 원? 실화야?"
"제가 카드 알람보고 잘못 긁힌 줄 알고 확인해 보라고 전화했는데 제대로 계산된 거래.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말 안 되지. 안 되고 말고. 6천 원도 6만 원도 아니고 너무 심한데?"
"그치. 기가 막혀서 정말."
"그 세차장에서는 오늘 고기파티 좀 하겠는데?"
"아휴. 저리 물러터져 가지고."
"진짜 기가 막히긴 하다. 내부에 금가루 도포라도 했대?"
"아후 몰라 몰라. 곰팡이와 세균 제거 했다던데. 어휴."
"하~~ 걔가 갈수록 더하네."
"또 저번에는 자연산이라며 송이버섯을 1kg에 30만 원에 사 온 거 있죠?"
"익! 아이고 불로장생하겠다야."
"아후, 정말 나는 옷 한 벌 사입을 돈이 없는데, 어쩜 저리 여유로운지."
"그렇지. 너는 놀이동산 티켓도 지인찬스 쓰고, 거기 가서도 도시락 챙겨가서 돈 한 푼 안 쓰는 짠순인데..."
"언니, 나는 노지 무료 캠핑에 차박만 즐기는 여자야."
"잘 알지. 여행 가도 그 지역 경제발전에 도움 1도 안 되는 사람이지. 돈 한 푼 안 쓰지."
"그리 알뜰살뜰 아끼며 사는데, 저리 천하태평이니.. 속이 터져."
"사람이 고생을 좀 해봐야 철이 드는데, 걔가 너무 곱게 자란 서울남자라 그래."
"답답해요. 누가 내 속 좀 뻥 뚫어줬으면 좋겠네."
"시간 될 때, 셋이 한 번 내려와."
"그럴까? 바람도 쐬고."
"그래. 통영 사량도 한번 가자."
"사랑도? 거기 뭐가 있어?"
"사랑이 아니라 사량도. 삼규오빠가 거기에 집 하나 사놨대."
"진짜? 근데 잠을 잘 수 있는 곳일까? 오빠야가 새집 사놨을 리 없고."
"키키키 그러게. 헌 집 사서 새집으로 고칠 양반이라서 알 수는 없다."
진경은 삼규의 사촌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서울에 상경해서 살고 있었다. 그녀 역시 삼규처럼 없이 살아서 아주 생활력이 강했다. 응준 같은 허당에게 딱이라는 생각에 은오가 진경을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둘은 결혼했는데 매일이 투닥투닥 이었다. 결혼 전에는 여유와 낭만에 쏟아부었던 돈도 결혼 후에는 사치였다. 진경이 눈에는 응준이 하는 모든 것들이 낭비로 느껴졌다.
은오네 고향마을에 연예인이 떴나 보다. 하씨도 노씨도 놀라서 은오를 불렀다.
"니 여기 나와 바래이. 저 큰 차가 여기 무슨 일이고?"
시골마을에서도 트랙터나 포크레인, 공장들 왔다 갔다 하는 탑차 등 큰 차는 제법 볼만큼 보신 분들이었다. 뭔가 싶어서 은오는 밖을 나가보았다.
"익! 저게 뭐꼬? 연예인이 이 동네 웬일이고?"
그 차는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는 짙은 선팅에 윤기가 좔좔 흘러넘치는 검은색 밴이었다. 효자리를 운행하다가 나뭇가지에 긁히거나 개똥이라도 밟는다면 안될 것만 같은 웅장한 자태였다. 은오는 얼른 그 차를 찍어서 검색을 해보았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출력420hp 엔진 토크63.5kg.m 엔진 배기6,162cc 엔진V8 자연흡기
그런 것들은 은오가 봐도 모르는 것들이었고 가격만 눈에 들어왔다.
"동그라미가 몇 개고? 천만, 억, 억!!!"
억 단위였다. 분명 연예인이 효자리에 온 것이었다. 잘 나가는 연예인이 왔다고 직감한 은오는 찰나를 찍기 위해 휴대폰 거치대에 휴대폰을 끼웠다. 수면바지 차림에 짝짝이 슬리퍼를 급하게 신고 뛰쳐나갔다. 그 차는 은오네 앞마당에 주차했고 앞문이 열렸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그럼에도 아직 은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응준이 연예인 매니저처럼 반 바퀴를 돌아 뒷문을 열려는 순간 은오도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렀다.
어떤 아이돌이 내리나 자세히 보았는데 내리는 건 곰돌이 푸를 닮은 그냥 아이였다. 사방팔방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함씨 2세.
아이돌? No No. Just 아이.
뒤이어 자다가 깬 부스스한 파마머리에 치마가 반쯤 접혀 올라간진경도 함께 내렸다.
마를린 먼로? No No. Just 마눌.
"언니, 우리 놀러 왔어."
"어... 근데 이 차는 뭐야?"
"응준이 친구한테 빌렸어. 돈 많은 친구 있거든."
"헐. 굳이?"
"밴 타고 섬마을 투어하면 기분 좋잖아."
"삼규 오빠가 뭐라고 할지 예상되지?"
"푸하하."
은오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 삼규가 집에 왔다.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를 거실로 들고 와서 안에 있는 내용물을 쏟아부었다. 그것들은 여자 연예인들이 신고 다닐법한 아주 세련된 운동화들이었다.
"와~ 오빠야 이거 어디서 났어? 이거 다 내 거가?"
삼규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대충 봐도 10짝은 되어 보였다.
"내 지금 신어본대이."
신이 난 은오는 제일 마음에 드는 세련된 디자인의 신발을 골라왼쪽 발에 넣어보았다. 딱 맞아 들어갔다. 오른발에 넣을 다른 쪽 신발을 찾았다. 그런데 같은 컬러의 신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같은 색은커녕 남은 신발들은 디자인도 다른 신발들이었다.
"이 신발 짝이 왜 없지?"
"아, 그거. 요즘 부산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이다. 짝짝이로 신는 거."
삼규가 유행 좇는 스타일은 아닌데 신발로 유명한 부산에서 유행한다니 은오는 삼규 오빠가 주는 특별 선물인가 싶었다.
"맞나?"
"응. 10개 중에서 왼쪽, 오른쪽 다르게 골라서신고 댕기라."
배스킨라땡스 31 아이스크림보다는 적지만 골라 신는 재미가 있었다. 학교에 멋진 신발을 신고 가면 애들이 다들 물어보았다.
"야, 신발이 왜 짝짝이야?"
"촌스럽기는... 이거 부산에서 유행이거든!"
그렇게 은오는 짝짝이 신발을 6개월 이상 신었다. TV를 아무리 봐도 그렇게 신고 다니는 사람이 없다는 걸 자각했을 때 그것이 삼규의 거짓부렁임을 알게 되었다. 실속파 삼규가 짜놓은 각본이었다.
신발공장이 많은 부산에서 한 짝씩 만든 샘플이었는지, 한 짝씩 남은 폐기품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까워서 자신에게 가져온 게 아닐까 은오는 생각했다. 품질은 멀쩡해도 짝짝이 폐기품을 은오가 신지 않을 테니 유행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을 것 같았다.
은오는 생각에 잠겼다.
삼규가 그때 왜 그랬을까?
은오는 삼규가 전하는 삶의 지혜를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유행보다는 군더더기 없는 알맹이를 챙기는 삶의 중요성을 얼핏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