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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 Oct 11. 2024

08. Wailing Wall (2)

시즌1



모든 것들을 정리하자 책상이 몹시 단출해졌다. 나는 자주 빈 책상에 앉았고 곧 10살인 노트북은 음악 감상용이 됐다. 그리고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에 누군가는 뭉근한 공감을 할 수도 있겠다. 




나는 창작을 하는 모든 일이 계단을 오르는 일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타고난 재능이든 나처럼 무식하게 양으로 채우는 일이든 꾸준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러다 어떤 지점에 다다르면 계단을 한 칸 오르는 것처럼 경지가 상승하는 지점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자신의 노력이 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게 될 수도 있다. 굳이 따지자면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력만 보더라도 노력의 총량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작용할리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꼭 종교개혁의 면죄부 같아서. 




나 역시 내 앞에 주어진 계단을 힘겹게 올랐다. 이 정도면 더 나아졌을 까 하고 고개를 돌려보려 하다가도 정신이 아득해질까 무서워 차마 돌아보지도 못한 날이 많았다. 그저 앞으로 앞으로 잰걸음일지라도 계속 나아가고자 애만 썼다. 아마 어떤 계단은 다리를 질질 끌며 기어서 올랐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 또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노트북에 가득 쌓인 것들을 끄집어 내 쓰레기통에 밀어 넣으면서도 생각했다. 혹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는 건 아닌지.




정직하게 고백하건대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봤다. 시간도 노력도 방법도. 그러나 여전히 같은 벽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두께를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두껍고 단단하다. 차라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좋으련만 간간이 희미한 것들이 스쳤다. 어느 날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선명해지기도 했고 벽이 그리 높지도 단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희망을 느꼈던 순간도 있었다. 손 끝에서 느껴지는 완벽한 굴곡이 어떤 문양을 가졌는지 그 끝을 쫓아가고 싶단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나만 보이는 벽에 서서 사계절을 고스란히 느꼈으니 그럴만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하루를 고민했다. 지난하게 이어온 고민에 마침표가 필요한 순간이 된 거 같았다. 



지금은 멈춰야 한다.  




이따금씩 일부로 집 근처 공원에 나가 벤치에 앉았다. 그때도 완연한 가을이라 날카로운 바람이 부니 마른 낙엽이 비처럼 떨어졌다. 멍하니 하늘만 보고 앉아 있노라니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메마른 사람인 내가 어린아이처럼 흐느껴 울게 만들었다. 한참을 울다 오랜만에 함께 글을 쓰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에게 글쓰기를 잠깐 멈춰야겠다고 말하자 수화기 너머로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어색한 목소리가 뒤따라 들렸다. 꼭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에 나도 모르게 대답 대신 혼자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그때 녀석은 나의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 없었을 거라 짐작한다. 다만 나의 멈춤이 녀석이 보기에 꽤 위험해 보였으리라. 물론 나도 잘 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도박인지. 글과 그림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둘 다 손을 멈추는 순간 무섭게 퇴보한 다는 거였다. 이 두 가지를 모두 해본 내가 이 위험한 결정을 모를 리 없다. 솔직하게 영영 이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이라면 두 번 다시 글을 쓰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게 나의 마음이었다. 그러니 더 눈물이 났다. 내가 가장 사랑한 것을 직접 잘라내고 그럼에도 돌아올 것을 기약할 수 없음에.



어떤 하늘이 무너질 땐 무난한 위로조차 힘을 내지 못할 때가 분명 있다. 내겐 이 날이 그런 날이었다. 



짧은 통화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다시 일상을 보냈다. 엄마와 짧은 대화를 나눴지만 내가 품은 고민에 대해 모두 털어놓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침묵하기로 결정했고 오랜만에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열었다. 차라리 단순한 노동을 하며 몸과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했다. 많은 무명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우리는 버텨야 하는 시간들이 있지 않은가. 또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가까운 가게의 나이 많은 아르바이트 생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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