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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선 최금희 Jun 19. 2022

푸슈킨의 문학세계

北女의 문학 서재 3

삶이 그대를 힘들게 할지라도 :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슈킨

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 1799~1837(Aleksandr Sergeevich Pushkin)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에는 참아라

기쁜 날은 반드시 올터이니


마음은 미래에 사니

현재는 항상 어두운 법

모든 것 한순간에 사라지나

지나간 것 모두 소중하리니

(1825)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대표 시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푸슈킨은 1799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외무성 관리로 근무했으나, 황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를 썼다는 이유로 좌천당했다. 사교계의 꽃인 콘차로바의 마음을 움직여 결혼까지 했으나 너무나 아름다운 콘차로바로 인해 수많은 남성들의 관심사로 괴로워했다. 급기야 아내와 염문을 일으킨 프랑스 장교 출신 조르주 당떼스와의 결투로 치명상을 입고 38세에 비명 했다.

푸슈킨은 러시아 근대문학에서 리얼리즘 문학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푸슈킨이 없다면 톨스토이도 도스토옙스키도 없었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렇게 허무하게 이른 나이에 세상을 하직했으나 그가 남긴 문학적 유산은 위대하다. 우리에게는 시인으로 알려진 푸슈킨은 시뿐만 아니라 소설, 희곡 등 모든 장르에서 러시아 근대문학의 토대를 마련한 작가이다. 대문호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고골, 나보코프 등 많은 러시아 작가들이 푸슈킨을 스승으로 삼았다.


우리나라의 강수진을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만들어준 작품도 바로 푸슈킨의 산문 '예브게니 오네긴'이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발레리나 강수진 덕분에 조금은 알려져 있기에 오늘은 푸슈킨의 짧은 단편 '장의사'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이 단편은 푸슈킨이 1830년에 발표한 첫 소설 "벨킨 이야기" 속에 나온다. "벨킨 이야기"는 '장의사'를 포함해서 다섯 개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당신의 망자들을 위해서 건배할까요?"


'장의사'에는 물질적인 탐욕 속에 갇혀 있는 장의사 아드리얀이 등장한다. 죽은 사람과 가까이하는 음울한 직업 특성상 갓 이사한 집에서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그에게 구두장인 이웃이 찾아왔다.


서로의 장사에 대하여 이말 저말 하면서 두 사람은 친해지고 서로를 집으로 초대하기까지 한다. 구두장인의 집에 초대되어 간 어느 날 장의사 아드리얀은 굉장히 기분이 상하게 된다.


독일 출신 구두장이, 핀란드 출신 제빵사 등 출신도 직업도 다른 사람들과 술 한잔에 인사를 주고받다가  "당신의 망자들을 위해서 건배할까요?" 하고 잔을 들던 한 사람의 건배사에 그만 모욕감을 느꼈던 것이다.


 "나의 고객들인 죽은 러시아 장교들을 초대할 거야"


화가 난 아드리얀은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와서 "내 직업이 어때서? 감히 나를 비웃어?" 하며 씩씩거린다. 산더미같이 음식을 차려서 집들이에 초대하려고 했던 마음이 식식어버린다. 홧김에 "그런 자식들을 초대할 필요 없고 나의 고객들인 죽은 러시아 장교들이나 초대해야지"하고 구시렁대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 초대된 죽은 자 들과의 재회


자신이 장의를 해주었던 죽은 자들이 한가득 몰려온 집안이다. 


"근위대 퇴역 중사 표트르 페트로비치 쿠릴킨을 기억하나? 자네가 1799년 첫 번째 관을 팔았던 사람 말이네. 그때 자네는 소나무관을 참나무관이라고 속였었지"


이 말과 함께 팔 뼈다귀를 내뻗으며 그를 안으려는 죽은 사람이 있는 반면, 귀족 출신 장교, 자신이 걸친 누더기가 부끄러워서 나서지 못하고 구석에 있는 해골도 있었다. 그 죽은 자는 얼마 전 무상으로 매장한 사람이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자라 아드리얀은 대충 묻어주었던 것이다.


독자 여러분, 어떻습니까. 죽은 자의 가치를 오로지 유족이 내는 장례비용만으로 받아들이는 드리얀, 그러한 물질적 탐욕이 그로 하여금 죽은 자들과 파티까지 하게 하는 내용이 코미디 같지 않았나요? 푸슈킨은 삶과 죽음을 혼동하는 장의사의 의식의 도착성을 리얼하게 묘사했습니다.


자기 삶의 위선을 깨닫는 장의사 아드리얀의 모습은 어쩌면 인류가 가진 보편적 탐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삶에 욕심이 없으면 그것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요? 인간의 욕심과 위선에 대하여 작품으로 남긴 푸슈킨도 정작 작품 원고료 문제에서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푸슈킨도 작가 이기전에 사람이었으니깐요.


하지만 푸슈킨은 펜으로 고위직 사람들의 음모로부터 신랄하고도 엄격하게 자신을 지켰다고 합니다. 자신이 귀족이었지만 짜르의 발밑에서 신음하는 민중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대관식에 희망을 걸고 있소. 사형당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만, 120명이나 되는 친구, 형제, 동지들을 유형 보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1826. 8. 14.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어쩌면 인생의 단계 단계마다 그럴듯한 계획과 꿈을 가지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욕심이기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적절한 계획과 욕심(목표)은 가져야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오늘도 글을 열심히 쓰겠다는 "작심삼일"의 욕심을 또 부려봅니다. 하하하

  

모스크바 푸슈킨 박물관(2011.5)

한국에 정착한 지 3년 만에 전 재산을 들고 37살에 모스크바로 공부하러 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마침 제가 찾아간 날이 디올전시회가 열린 날이라 무려 뙤약볕에 40분이나 긴줄로 기다려서야 입장할 수 있었답니다. (참고로 그날 '디올'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구요. 아직도 저는 브랜드에 대해 무지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게 되리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고 단지 푸슈킨이 유명한 작가이니 박물관 한 번 가본 거구요. 그러던 제가 이렇게 러시아 문학에 대해 강의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죠.


인생은 그래서 아이러니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삶은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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