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 명선이(써니)의 전화가 울렸을 때 나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새벽에 울린 전화벨 소리에 소스라쳐 깨어나자마자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손이 떨려수신 버턴도 제대로 터치하지 못해서곧바로 전화를 받지 못하고 끊긴 전화가 다시 울렸을 때 겨우 받을 수 있었다.
보름 전 상황과 너무나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보름 전 아이가 셋이나 있는 조카며느리의 죽음을 한밤중 다급한 전화로 전해 들었고 COVID(코로나)가 갓 시작된 시기라 모두가 허둥대던 때여서 한밤중에 이리저리 수소문하며 뒤처리를 도왔던 일이 생생했다. 조카며느리는 산후 우울증으로 폭식을 거듭하면서 뚱뚱해졌다. 비만은 그녀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어 집 밖을 나가지 않게 만들었고 운동 부족으로 체중은 점점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불어났다. 그녀는 온갖 성인병을 달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코로나에 걸린 지 일주일도 못 넘기고 세 아이를 남긴 채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보름도 지나지 않은 때에 걸려온 새벽 전화는 받기가 두려울 정도의 공포였다.
"여기 좀 빨리 와줄 수 있어? 너희 남편이랑 같이..."써니의 넋 나간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아들이.."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는 상황이 짐작되어 남편을 깨우고 집을 나서 20분 거리의 써니의 집으로 향했다.
'제발 죽음만은 아니기를...'기도하며 평소에 시큰거리는 무릎도 잊은 채 써니네 집 계단을 단숨에 뛰어 뛰어올라갔다.
써니와 그녀의 남편, 마흔이 훨씬 넘은 아들 셋이 한 덩어리가 되어 모두 쓰러져 있는 방안은 참혹했다.
코로나로 목숨을 잃은 아들을 위해 목숨도 두려워않고 숨을 불어넣고 있는 써니와 이성을 잃은 그녀의 남편은 우리 부부가 들어서자 "병원으로 연락해줘, 우리 아들 좀 살려줘."라며 울부짖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미국에서 살며 식당을 운영해왔지만 오로지 아들에게만 의지하며 지냈다. 영어도 미국 생활도 어렵기만 했다. 부부는 그저 식당에서 뼈가 부서져라 일만 하고 장보는 일, 은행 문제, 세금처리 같은 모든 일은 아들이 처리하며 지내와서 다급한 상황에서도 911이나 경찰을 부르지 못하고 우리 부부를 먼저 찾은 그들이 가엽고 안타까웠다.
장가도 못 가고 부모의 짐까지 모두 지고 살던 착한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써니네의 삶도 함께 무너졌다. 아들이 없이 식당을 운영할 수도 없었던 부부는 식당 문도 닫은 채 살아갈 길이 막막한 지경이 되었다.
그들을 돕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도 하고 도움도 청하며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주느라 남편은 이리저리 바쁘다.
나 역시 매일 써니네를 찾아 들여다보고 종교단체 같은 곳에서 도울 방법이 있는지 찾고는 있지만 워낙 코로나가 급속히 번지는 시국이라 쉽지가 않다.
오랜 시간 이민생활을 하면서 드라마 파친코나 미나리 같은 영화에서처럼 강인하고 억척스럽게 이민생활을 성공적으로 살아낸 사람들도 많이 보지만, 그들처럼 억척스럽게 열심히 오랫동안 애쓰며 살아도 이 낯선 나라가 힘겹기만 한 사람들도 주변에 많다.
오늘도 나는 써니네 먼저 들러 두 부부가 밥이라 먹나 어쩌나 살핀 후 조카네에 왔다. 일주일에 두어 번 엄마를 잃은 가여운 아이들을 돌봐줘야 해서이다.
모두 가엾고 가슴 아프다.
가까운 젊은 사람 둘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코로나가 뭔지 이 나이가 되어도 놀랍고 두려운 일이 많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