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선다. 하천을 따라 난 둑길에 아름드리 벚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다. 꽃의 산화를 고대하며 긴 겨울 추위와 기다림을 견디어온 나무들이다. 이른 봄 뽀송뽀송한 햇살을 모아 화산이 마그마를 분출하듯 연분홍 꽃잎을 일제히 터트린다. “타닥 타닥 타닥” 여린 꽃잎이 깨어나는 소리에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진다. 찬란한 절정의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울 때쯤, 하나 둘 자라나는 어린잎들은 매일 조금씩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계절이 변화하는 미묘한 시기 6월, 어디에선 청포도가 알알이 익어가고, 어디선가는 수국이 춤을 추는 초여름의 입구다. 봄의 끝과 여름의 초입에서 나뭇잎은 진초록으로 빛난다. 꽃핀 봄날에는 화사함으로 사람들을 부르더니 잎새 무성한 여름날엔 그늘과 바람으로 쉼을 내준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잎새들과 바람의 리듬에 맞춰 탱고라도 추나 보다. 쉼 없이 흔들리는 하늘빛은 언젠가 보았던 아드리아 해의 코발트빛이다.
바람의 향기가 콧잔등을 시리게 하는 가을날, 나무는 스스로 떠날 때를 아나 보다. 초록의 잎들을 울긋불긋 물들여 단풍이라는 이름으로 아쉬움의 작별인사를 한다. 마르고 갈라진 잎들은 차곡차곡 서로의 몸에 쌓여 나무를 위해 거름이 되기를 기꺼워한다.(나무를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된다) 나무는 추위와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몸을 웅크린다. 다가올 찬란한 봄날을 꿈꾸며…….
왕복 한 시간 남짓의 길을 걷는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 시간. 햇살의 재잘거림과 나뭇잎의 춤사위는 내 발걸음도 춤추게 한다. 송골송골한 이마의 땀이 얼굴에 또르르 흘러내리고 오늘 만난 바람은 내 몸의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간다. “아 시원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무야 고마워” 인사도 해본다.
일 년 내내 출근한 날은 늘 이 길을 걷는다. 마음이 즐거운 날도 걷고, 억울함과 자괴감으로 짓눌릴 때도 걷는다.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무거울 때도 걷고, 외로워 설운 날에도 걷는다. 삶의 무게를 오롯이 견디고 있는 나에게 나무는 그늘 밑에 와서 쉬라 한다. 나뭇잎을 흔들어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어릴 적 읽었던 어른을 위한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난다. 소년이 노인이 될 때까지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며 사랑한, 나무의 이야기이다. 소년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나무는 열매든, 가지든 아낌없이 선뜻 내어주었다. 빈털터리 노인이 되어 돌아온 소년을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무는 밑동이라도 내어주며 그를 쉬게 했다. 내게도 소년이 좋아했던 나무만큼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무 같은 분이 있다.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나에게 모든 것을 주는 나무다.
“저 왔어요”
문을 열면 그가 먼저 나왔다. 여름에는 선풍기를 서둘러 내 앞에 세웠고,
겨울에는 내 손을 끌어 아랫목 따듯한 이불 속에 넣었다. 엄마는 따듯한 밥에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였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걀부침을
하는 건 그였다.
눈 오는 날 세발자전거에 어린 손주를 태우고 놀아주던 그. 한 평 남짓 작은 구둣방에서 알밤과 고구마를
난로 위에 구워 손주가 하굣길에 들르면 입에 넣어주었다. 손주의 먹는 모습을 보며 그는 손주보다
더 아이처럼 웃었다.
아주 오래전에도 그는 그랬다. 어쩌다 밥상에 오른 달걀부침의 반을 뚝 잘라 엄마 몰래 내 밥그릇에
올려주었다. 학교 가는 길 동전 몇 개를 내 손에 쥐여 주며 등을 두드려 주기도 했다.
없는 살림에 식솔이 아홉이라 늘 허기졌던 시절. 그는 그 아홉의 가장이었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그는 수만 가지의 일거리를 전전하며 하루 24시간이 모자랐을 것이다. 피곤함에 지친 와중에도 졸린 눈을
치켜뜨며 어린 딸이 읽어주는 말도 안 되는 시 쪼가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고 손뼉을 치면서.
국민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그는 어깨너머로 배운 한자를 내게 가르쳐주었다. 딸에게 가르쳐줄 게 있다는 게 너무 좋다고 했다. 방바닥에 엎드려 그에게 한자를 배웠다. 그때 나는 한자를 배운 게 아니라 그에게서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대학을 가겠다는 나를 지지해준 건 여덟 명의 식구 중 단 한 사람 그뿐이었다.
내가 암으로 수술대에 올랐을 때 늙고 야윈 그는 가장 슬프게 울었다.
“내가 다 끌어안고 갈 테니 너는 어서 나아라.”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회복되어가고 있었지만, 그는 신장암으로 아파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을 떠났다. 먹고살기 위해 떠났던 고향산천과
부모의 묘지를 돌아보고 친지들을 만났다.
부모의 묘지 앞에 무릎 꿇은 그는 한참을 울었다. 그의 야위고 굽은 등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에게도 개구쟁이 유년 시절이 있었던가? 그에게도 꿈 많던 청년의 때가 있었던가? 내가 아는 그는 처음부터 식솔 아홉의 가장인 작고 볼품없는
노인이었던 것 같은데…….’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그는 더욱 가벼웠다. 샤워를 위해 벗은 몸은 병마로 인해 가죽뿐이었다. 그러나 내 볼을 만지던 그의 손은 늘 따뜻했고 그의 눈빛은 부드러웠다. 우린 매일 작별인사를 연습했다.
“손님처럼 죽음이 찾아온다 해도 놀라지 말고 담담하게 맞이하기로 해요.”
그래서 그랬을까? 어느 새벽, 깊은 잠 가운데 먼 길을 떠났다. 온기가 사라지는 그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내 아빠가 되어주셔서 자랑스러웠어요.”
“다시 태어나도 아빠 딸이 될 거예요.”
그는 나에게 가장 든든한 나무다. 그는 가난했지만, 사랑하는 법을 알았다. 배운 게 없었지만,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려 애썼다. 낙심과 절망의 순간에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 무엇인지를 삶으로 보여주었다.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받아들임과 인내를 가르쳐 주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영원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았다.
인생의 진창에 빠지고 허무와 우울함에 눌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가만히 나무 밑에 앉는다. 나무는 말없이 나를 안아준다. 세상살이에 휘청대고 사람으로 인해 진저리가 난 날엔 나무에 온몸을 기대어 선다.
“얘야, 천천히 살아라.”
그의 바튼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가 몹시도 그리운 날엔 나무를 꼭 끌어안는다.
“보고 싶어요.”
“곧 만날 거잖니.”
나무는 무한한 내어줌과 사랑으로 오늘도 나를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