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의 꽃일까?
마을마다 상춘객을 불러 모으던 벚꽃 한 잎 한 잎이 장렬히 산화하는 것으로 벚꽃 축제가 끝났다.
날은 바람이 불었다, 햇살이 곱다를 반복했다. 어디선가 달큰한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아카시아 꽃 향이다. 그 향기에 취해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른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웠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눈길 돌리는 곳마다 울타리를 벗 삼아 장미가 눈부시게 피어났다. 붉고 화려한 장미는 자태와 빛깔로 사람의 눈길을 유혹한다. 꽃의 여왕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여진 건 아닌가 보다. 핸드폰을 열어 울타리 가득 핀 장미를 찍는다. 장미를 배경으로 나도 한 장 찍었다. 지나던 여학생 둘이서 그런 나를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저들이 보기엔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우스워 보일 거다. 그것도 셀카로.
나도 저들만 할 때는 그랬다. 꽃은 그저 꽃일 뿐이었다. 색깔도 모양도 향기에도 관심 없는 그저 꽃일 뿐.
꽃의 이름도 제대로 몰랐다. 겨우 무궁화나 장미 정도만 알 뿐.
어느 시인이 .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 내려올 때 보았다.
나이 듦에 대해 단 두 줄로 어쩜 이리도 명쾌하게 정의했을까 싶다.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감탄한다.
이 나이가 돼서 읽으니 더욱 신랄하게 느껴지는 거겠지만.
오를 때는 그저 목적을 향해 앞만 보고 간다. 좌우를 살피지 않고 무작정 걷는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야만 볼 수 있는 꽃이 보일 리가 없다. 반대로 내려오는 길은 여유가 있고 편안하다. 주변의 풍광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젊어서는 꽃을 볼 수가 없다. 아니 보이지 않는다. 봐야 할 게 너무 많아 꽃을 위해
비워둘 정원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도 봐야 하고 일도 봐야 하고 부모님도 살펴야 한다.
오르기에만 바빴다. 이제 내려가는 나이가 되니 꽃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는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꽃을 좋아했다.
작은 베란다에 올망졸망 여러 개의 화분이 놓여 있었고, 이름 모를 꽃들이 계절 계절마다 노래를 불렀다.
어린 내가 보기에는 볼품없는 꽃들이었지만 엄마는 정성껏 키웠다.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화분에 물을 주며 꽃들과 대화하는 일이었다. 잠 많은 여고 시절 겨우 눈을 떠 부랴부랴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나를 엄마는 도와주지 않았다.
베란다에 있는 꽃들과의 수다 삼매경이었다.
“엄마 머리 따줘, 엄마 교복은? 엄마 도시락은?…….”
나의 짜증 섞인 요구에도 엄마는 급하지 않았다.
“거기 있잖니. 알았어. 갈게.”
속을 까맣게 태운 엄마가 짜증나 투덜거렸다. ‘학교 가기 바쁜 아침 나만 좀 봐줬으면 좋겠는데’하는 내 억지였다. 엄마가 없을 때 화분을 보며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나 참았다.
‘이깟 화분이 뭐라고, 이깟 꽃들이 나보다 더 소중한 거야?’하면서 잎사귀를 뜯어놓거나
꽃봉오리를 꺾기도 했다.
엄마는 이사하며 버린 화분과 거의 죽어가는 꽃들을 가져와 정성껏 보살피기도 했다.
어느새 꽃이 피고 싱싱한 모습으로 살아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했다.
학교 한번 못 다녀 글을 몰랐던 우리 엄마. 가난한 집에 시집와 온갖 일로 고생하며 자녀 여섯을 낳아 키운 우리 엄마. 엄마는 나보다 꽃을 더 좋아한 게 아니었다. 학교 한번 다녀보지 못한 엄마는
‘학교에 가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그게 왜 그렇게 급한 일인지 이해가 안됐겠다’
라는 생각은 나이 먹은 후에야 하게 됐다. 엄마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이 엄마의 전부였다.
글을 몰랐던 엄마는 엄마의 세상 속에만 갇혀 살았다. 그 엄마에게 딱히 취미라 할 것도 없고, 삶의 낙이라
할 것도 없는 고단한 세월 속에 큰 돈 들이지 않고 엄마의 마음을 다독여준 게
베란다의 화분들이 아니었나 싶다.
나이 먹은 자식들은 직장 다니느라 바쁘고, 공부한다는 자식들은 엄마를 무시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엄마는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누구 하나 말벗이 되어주지 못할 때 엄마는 꽃들에게 주저리 주저리 엄마의 외로움과 서러움을 토해내며 스스로를 다독였을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식물 테라피다. 심신을 편안하게하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준다는 반려식물. 그때 왜 엄마의 외로운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꽃과 얘기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보이지 않는 아픔을. 핑계를 댄다면 나는 어렸다.
생일이나 어버이날에도 엄마는 선물을 받는 것보다 꽃다발이나 꽃바구니 받는 것을 더 좋아했다. 변변한 꽃병 하나 없던 엄마는 음료수 병이나 긴 물 컵에라도 어디서 얻어온 생화 한 두 송이를 꽂아두곤 했다.
야박한 살림에 늘 쪼들리며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용돈을 해결하느라 난 힘들었다.
어느 날, 피곤함에 지쳐 늦은 시간 집에 돌아왔다. 내 방문을 여니 책상 위에 후리지아 몇 가지가 유리컵에 꽂혀 있었다. 방 안 가득 꽃향기가 퍼졌고 노란빛의 후리지아는 빛나고 있었다. 엄마는 빠듯한 살림에 시금치 한 단, 콩나물 한 봉지 값을 아껴 저 후리지아를 샀을 거다. 얼마나 망설이다 저 꽃을 샀을지 상상이 간다.
대학은 졸업했는데 아직 취업 못 한 딸을 위해 엄마는 봄의 전령인 후리지아 꽃으로 응원한 거다.
네게도 곧 봄날이 올 거라고.
늘 세련된 다른 집 엄마들과 엄마를 비교했다. 글을 모르는 엄마가 부끄러웠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난 엄마를 너무 몰랐던 거다.
그날 난 많이 울었다.
이제 나도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됐다. 비로소 꽃을 보는 눈이 열린다. 이름 있는 꽃도 보이지만 이름 모를 꽃들도 잘 보인다. 언젠가 티비에서 들었던 가수 김지호의 노래가 생각난다. 무심결에 노래를 듣다가
노랫말에 놀라 멈칫했다. 노래의 제목은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였다.
여행을 가는 게 옷 한 벌 사는 게 어색해진 사람
바삐 지내는 게 걱정을 하는 게 당연해진 사람
한 번이라도 마음 편히 떠나보는 게 어려운 일이 돼버린 사람
동네 담벼락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아직도 걸음 멈추는 사람
엄마의 사진엔 꽃밭이 있어.
꽃밭 한가운데 엄마가 있어.
그녀의 주변엔 꽃밭이 있어.
아름답게 자란 꽃밭이 있어.
티브이를 켜고 잠이 들어버리는 일이 어느새 익숙해진 한 사람
티브이 속에서 나오는 수많은 얘기에 혼자서 울고 웃는 한 사람
엄마의 사진엔 꽃밭이 있어.
꽃밭 한가운데 엄마가 있어.
그녀의 주변엔 꽃밭이 있어.
아름답게 자란 꽃밭이 있어.
초록빛 머금은 새싹이었지
붉은빛 머금은 꽃송이였지
나를 찾던 벌과 사랑을 했지
그 추억 그리워 꽃밭에 있지
나는 다시 피어날 수 없지만
나를 찾던 벌도 사라졌지만
나의 사랑 너의 얼굴에 남아
너를 안을 때 난 꽃밭에 있어.
라라라라 하라 라라라라라
라라라라 하라 라라라라라
라라라라 하라 라라라라라
라라라라 하라 라라라라
꽃밭 한가운데 엄마가 있어.
‘나는 다시 피어날 수 없지만 나를 찾던 벌도 사라졌지만 나의 사랑 너의 얼굴에 남아 너를 안을 때 난 꽃밭에 있다’는 가사 말이 너무도 사무치게 가슴에 저미어왔다. 그랬구나! 세상에 모든 엄마가 그랬겠지. 지금의 나도 그렇고…….
엄마도 한때는 꽃이었을 텐데. 엄마가 된 후에는 꽃 된 삶을 포기하고 우리를 꽃으로 피우기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된 거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울고 아파하고 버거워했으며 웃기도 하고 행복해 하기도 했을까? 이제서야 엄마의 사랑이 나의 얼굴에 남아 나를 안을 때 엄마는 꽃밭에 있다고 고백 할 수 있구나 싶다.
순간 ‘부족한 나도 엄마가 기뻐하는 꽃이었을까.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꽃으로 피었을까? 엄마는 내 꽃밭에서 행복했을까?’ 반성과 속죄의 마음으로 물어본다. 어느 날 거울 속에서 발견한 엄마의 얼굴.
난 엄마의 사랑스러운 꽃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니 엄마를 이렇게 쏙 빼닮았지.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혼자 생활이 어려운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요양원으로 가셨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를 찾아갔다. 침대에 누워 꼼짝할 수 없는 엄마는 창밖만 바라보며 내 이름만 불렀단다.
엄마와 함께 밥도 먹고, 얘기도 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도 불렀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웠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쌩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에 과수원 길‘
엄마와 함께 불렀던 노래 <과수원 길>은 먼 옛날의 노래가 되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꽃이 예뻐질수록 엄마는 더 많이 많이 그립다.
